회사 경력 햇수로 6년 차, 곧 6년을 꽉 채우게 된다. 이제는 아침에 눈을 뜨기가 끔찍하다.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모든 사람들은 이렇게 살고 있는 걸까? 우리 아빠들은 이렇게 살아온 걸까?
나는 대게 아침 6시 반에 기상하여 10분 만에 고양이 세수를 하고 나온다. 바닥이 반짝일 정도로 꽁꽁 언 빙판길을 쌩쌩 달려 30분 만에 대전 근교 작업장으로 출근하고, 바로 식품을 보관하는 영하 냉장고에 들어가 한 시간 가량 품질을 체크한다. 그다음부터 3명으로 구성된 사무실 직원들과 교대로 라인에 들어가 품질을 체크한다. 당일 물량에 따라 퇴근시간이 정해진다. 보통 겨울과 명절 전 한 달가량이 성수기인데, 아주 죽을 맛이다. 12월 중순 벌써 명절 전 물량이 시작되었다. 아침 7시 반부터 저녁 7시 반까지 근무를 하기 시작했다. 출퇴근 시간과 앞 뒤로 근무 준비를 위한 시간을 합치면 13시간 회사를 일해 내 시간을 쓴 거였다. 말이 되나. 하루 24시간 중 13시간이라니.
업무 내용을 봐서는 생산직 같아 보이지만, 나는 공공기관에 속해 일하는 준공무원으로 현장일을 하지만 사무일까지 전부 다 해내야 하는 만능 슈퍼맨 같은 일을 하고 있다. 돈도 많이 못 받는다는 말이다. 심지어 인건비는 전년도에 책정이 되기 때문에 발생된 초과근무가 예상치를 벗어나면 돈도 못 받는다. 이게 현실이다.
공공기관이라는 간판과 특정 전공과목을 이수한 학생들만 입사할 수 있는 전문직 구조라 학생들에게는 신의 직장으로 비치기도 한다. 6년 동안 지원을 해도 떨어지는 사람도 본 적이 있을 만큼 생각보다 입사하기 치열한 직장이다. 그런데 신입직원들에게 만족하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하는 친구는 거의 없다. 대부분의 친구들은 몰래 이직 준비를 하고 있다. 이런 상황인 걸 간부나 상사들은 알고 있을까?
나 때는 회사가 커질 때라 엄청 열심히 일했어! 나 때는 초과수당도 못 받았어! 나 때는 지금보다 얼마나 열악했는지 알아!?라고 말하는 간부들은 곧 임금피크제에 들어간다. 그만큼 대부분 나이가 꽤 있으신데, 얼마 전 내가 있는 부서에 40대 부장님이 발령받아 오셨다. 우리 회사에서 가장 젊은 간부였다. 나를 보자마자 하신 첫마디는 정말 깜짝 놀라게 했다.
"초과 발생하면 다 달아요. 돈으로는 못줘도 대체휴무라도 가야지. 절대 덜 달지 말고."
돈이 없어서 발생된 초과도 달지 말라는 지시를 뒤엎어버렸다. 이런 말씀하신 간부는 처음이었다. 갑자기 희망의 빛 한줄기가 보이는 듯했다. 누군가가 밥 먹을 땐 업무이야기는 하지 않는 거랬는데, 부장님이 말하는 업무이야기는 아주 솔깃했다. '그동안 불가능했던 여러 가지 사업을 성공시킨 이력이 국가에 신뢰를 주어 우리 기관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다 직원들이 열심히 해준 덕분이다. 그러니 앞으로 이런 방향으로 회사가 나아가야 한다. 그래서 현재는 이런 사업을 진행하고 있고, 저런 사업을 따오려고 노력하고 있다.'와 같은 회사에 전반적인 이야기였다. 현장에서 기계같이 일만 하던 우리에게 새로운 세상이었다.
"나는 따아(따뜻한 아메리카노). 담배 좀 피고 올게."
라고 말씀하시면서 개인카드를 주셨다. (법인카드가 아니었다!) 편하게 비싼 음료 시키라며 자리를 일부러 비켜주신 부장님은 우리들이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걸 보면서 한탄하셨다. 다음에 비싼 음료 사주러 다시 오겠노라고 말씀하셨다. 신기했다. 젊어서, 일찍 승진을 하셔서, 다른 회사를 다니다 오셔서, 고학력(박사 출신)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뭔가 달랐다.
죽을 것 같이 힘들던 회사생활이 환기되는 것 같았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똑같은 날이, 숨 막히게 각박하던 하루가 조금은 따뜻해지는 것 같았다. 살면서 이렇게나 애사심이 가득하고 회사에 대한 프라이드가 충만한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모두가 당장이라도 때려치울 것 같이 지쳐 보였고 슬퍼 보였는데, 부장님의 희망가득한 비전, 당당하고 배려 넘치는 통솔력에 감동을 받아버렸다. 단 1시간 만에 말이다.
지난 6년을 이런 사수 아래서 일했다면 회사에 대한 내 생각이, 업무능력이, 비전이 달라졌을까? 오늘도 나는 여전히 12시간을 근무하고 있지만, 부장님과 같은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회사 분위기는 많이 달라질 것 같다. 그래서 오늘은 사직서를 대신 희망을 조심히 품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