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적으로 카페에 앉아 따뜻한 아메리카노와 새하얀 종이, 펜 한 자루를 펼쳐놓고 과거를 곱씹으며 생각을 정리하곤 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기도 하고 꼭 필요한 시간이기도 하다. 펜을 잡은 손을 쉬지 않고 머릿속에 있던 모든 생각을 끄집어내어 적어본다. 그림이기도 하고 계획이기도 하다. 갑자기 궁금한 게 생기면 나의 무한긍정 추진력으로 정신없이 인터넷 검색을 한다. 어쩐지 머릿속이 정리가 되면서 계획이 생기고 미래가 그려지는 기분이다. 아무튼, 새해가 밝았으니 새해다짐, 버킷리스트를 정리가 할 때가 되었다. 그럼 몇 자 적어보도록 하겠다.
나에겐 취미가 많다. 퇴근하면 너무 바빠서 저녁 먹고 방에서 나오질 못한다. 잠들기 전까지 개인적인 취미생활에만 몰두하다 보니 남자친구가 자기 좀 신경 써달라고 애타게 찾기 일쑤니 말 다 했다. 예를 들면, 책 읽기, sns에 서평 쓰기, 에세이 등 글쓰기, 요가하기, 유튜브 영상 만들기, 제페토 아이템 만들기, 그림 그리기, 란제리 디자인하고 만들기, 생각한 물건 만들기 등이 있는데 아마 생소한 것도 있을 것 같다. 그런데 그 많은 것들을 진심으로 좋아하고 몰입해서 하고 있다. 아마도 적성이 맞지 않는 회사일 때문에 회피성으로 또는 전직 준비를 위해서 더욱 몰입하는 건지 몰라도 일단 재미있다. 잠시 앉아서 조금 했을 뿐인데, 서너 시간은 훌쩍 지나있다. 시간이 아주 야속하다 못해 취미를 위해 사표를 써야 할 판이다.
덕분에 나는 그동안, 수많은 책을 협찬받고 읽으며 생각을 넓힐 수 있었다. 글을 쓰며 작가 커뮤니티에 소속되어 뉴스레터 발간도 해보고 소소한 용돈을 벌었다. 요가 강사 자격증을 취득해 언제든지 요가강의를 할 수 있게 되었고, 란제리 디자인 기본을 알고 있으니 마음만 먹으면 속옷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영상제작을 하면서 일기장 대신 기록한 영상을 보며 스스로 힐링을 할 수 있었고, 제페토 아이템을 만들면서 '블렌더'라는 3D 제작 프로그램을 다룰 수 있게 되었다. 그림을 그려 이모티콘을 제작이나 패턴 디자인을 하면서 아이패드와 프로크리에이트를 조금 더 능숙하게 다룰 수 있게 되었다. 제작한 이모티콘이나 패턴은 아직 승인이 되진 않았지만, 부족한 실력을 향상하고픈 의욕이 생겼다. 의욕이 생기면 잠이 없어진다. 하루종일 졸지도 않고 하루를 꽉 채워 살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나는 많은 것들을 얻었다. 겨우 3년 반 동안 있었던 일이다.
최근에 재미를 붙인 취미는 '미싱'이다. 5년 전 타지에 발령이나 외로움을 달래고자, 미싱학원에서 잠깐 재봉틀 기초반을 수강했었다. 그 당시에 선생님과 같이 만든 에코백을 아직도 잘 쓰고 있다. 한 달간의 짧은 강의가 끝나고 나는 재봉틀과 다양한 원단, 부자재를 대량으로 구입해 그대로 창고에 넣었다. 아마 발령 문제와 우울증 때문에 잠시 접었던 것 같다. 그것들이 잊힐 때즈음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올랐다. 먼지가 짙게 쌓인 재봉틀이 구석에 처박혀있었다. 조심스럽게 따뜻한 방 안으로 들여 코드를 꼽았다.
머리로는 기억은 안 나는데 손이 기억하고 있었는지, 실을 금세 제자리에 끼워 넣었다. 발로 발판을 살짝궁 밟으니 드르륵- 재봉이 되는데 속이 다 후련했다. 가지고 싶었던 가방이 있었는데, 천 쪼가리가 5만 원이나 해서 못 산 가방이 있었다. 분홍색 골덴 천으로 된 가방이 손바닥만 한 것이 참 귀여웠다. 똑같진 않지만 비슷한 모양의 원단을 사뒀었다. 오랜 시간 같은 자세로 접혀 꼬깃한 원단을 다리미로 곱게 다려, 이렇게 붙이고, 저렇게 꿰매면 이런 모양이 나올까-하고 요리조리 상상을 해보며 재단을 한다. 큼지막한 가위로 숭덩숭덩 잘린 천 쪼가리가 재봉틀에 올라가면 뚝딱 가방이 된다. 완벽하진 않지만 내가 생각한 모양으로 만들어지는 게 요놈 참 재밌다. 재봉틀로도 삐뚤빼뚤한 선이 아쉽지만, 아쉬워서 욕심이 생긴다. 다음엔 더 잘해야지-하고 말이다.
추진력 하나만 있는 나는 바로 유튜브 강의를 들으면서 옷 만드는 방법을 찾아 공부하고 있다. 사람 몸은 입체적이라 어느 부분은 길게, 반대쪽은 짧게, 어떤 부분은 곡선으로 그려내는 것이 꽤나 어렵다. 소매 하나를 재봉하는데도 그냥 재봉하면 안 된단다. 말아 박기, 바이어스 처리, 고무줄처리 등 박는 방법이 또 왜 그렇게 다양한지 모르겠다. 그렇게 10만 원어치 원단을 또 샀다. 나의 취미생활로 꽉 찬 창고 때문에 제발 집 좀 나갔으면 좋겠다는 엄마한테 또 등짝 스매싱을 맞게 생겼다.
이쯤 되면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내 버킷리스트가 뭔지 알 것 같다. 옷을 만들 거다. 내가 자르고 붙여 만든 옷을 입고 거리를 활보해보고 싶다. 조심스럽게 너도나도 입고싶다는 옷을 만든 나를 상상해본다. 그렇담 올해도 열심히 살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