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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이 Dec 21. 2022

커피콩 갈리는 소리로 맞이하는 아침

주말마다 아버지가 커피콩을 분쇄하는 소리로 아침을 맞이합니다. 수동으로 오도독 가는 소리라면 조금 더 감성 있는 아침이겠지만, 현실은 전동 그라인더로 위이잉하고 갈리는 소리죠. 믹서기같이 생겨서는 10초만 갈아도 산산조각이 내버리는 그 전동 그라인더요. 덕분에 침대에서 벌떡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소리에 놀라고 커피향기에 놀라서 말입니다. 


조금 차가운 아침공기지만 따끈한 커피 향을 따라 눈도 못뜨고 주방으로 향합니다. 아일랜드 식탁 앞에서 머리에 까치집을 세 채는 지으신 아버지가 왼손으론 눈곱을 떼고, 오른손으로는 종이필터에 커피가루를 살살 담어냅니다. 그리고 전기포트로 빠르게 끓여낸 뜨거운 물을 커피 주전자(드립포트)로 옮겨요. 주전자 입이 길죽한 게 참 얄밉게 생겼다만, 물줄기를 얇고 길게 야무지게도 만들어냅니다. 아버지는 어디서 본 게 있는지, 손목 스냅을 이용해 동그라미를 그려내며 천천히 붓습니다. 커피가루는 링겔을 맞듯이 한 방물씩 커피를 흘려보내죠.


커피 물이 어느 정도 채워지면, 어머니와 동생도 부엌으로 눈 비비며 나옵니다. 따땃한 커피를 두 손으로 감싸고 호호 불어가며 한 모금 홀짝이다 보면, 자연스레 한 주간 쌓였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됩니다. 각자의 삶을 살아내느라 한 집에 살아도 얼굴 한 번 보기 힘든 가족이, 아버지가 내려주는 핸드드립커피 하나로 여유를 가져봅니다. 원산지가 어딘지도 모를 커피콩과 보리차 마냥 슴슴한 커피지만, 그 시간이 참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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