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왠지 병원에 너무 가고 싶어 오전에 사무외출을 달고 근처 병원으로 나가기로 마음먹었다. 전날 아침 7시 30분부터 밤 11시까지 근무하면서 집까지왕복 1시간을 했더니 몸이 아주 축났더랬다. 날이너무 추워각목인양 딱딱하게 다닌 것도 한몫했다. 어떤 핑계를 대서라도 잠시 나갔다 오고 싶은 마음에, 아토피가 심해진다는 적절한 변명으로어느 정도 합리화를 해봤다. 피딱지가 얹히기 시작한 지 두 달이나 지나 아문 상처도 많았지만 말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지금까지 30년간 아토피를 앓았고, 주기적으로 피부과 또는 피부비뇨기과를 내 집 드나들듯 참도 많이 왕래했었다. 그 병원은 직장 근처로 급하게 가느라 처음 가 본 병원이었고, 나는 몸 구석구석, 두피까지 참을 수 없이 가렵다고 말했다. 처음 본 의사니까 내 증상을 더 빨리 설명하려고 '아토피'라는 병명을 덧붙이면서.
"오이씨는 병원에 가면 진료를 받나요, 처방을 받나요?"
공주시 작은 동네에 있는 병원에 친절하다는 후기를 보고 방문한 의사 선생님의 첫마디였다. 머리가 희끗희끗한데 직모인 머리카락을 대충 방치한 행색으로, 밖에서 보면 직업이 의사래도 믿지 않을 것 같은 모습이었다. 후기에서는 친절하다 했는데 어디가 친절한지 모를 짝눈으로 흰자가 보이게 나를 똑바로 응시하며 말했다. 아니, 약간은 실망한 듯한 표정이었던가. 무서웠다. 가끔 혼내는 의사 선생님도 있었던지라 대답을 뭐라고 해야 할지 일할 때보다 더 머리를 굴려봤다. 내가 심기를 건드린 건지 화가 난 건지 정말 궁금한 건지 무슨 대답을 듣고 싶어서 환자한테 저런 질문을 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이제부터 머릿속에 '아토피'라는 말을 지워요."
아? 30년 동안 아토피를 앓아온 환자한테 할 말인가 싶었다. 하지만 요지는 이랬다. 한국에서만 피부가 간지러운 것을 '아토피'라고 정의해 버린다는 것이다. 피부과가 아닌 비뇨기과, 소아과, 가정의학과에서 피부가 가렵다는 증상을 아토피라는 핑계대기 좋은 질병을 들먹여서 생긴 현상이라고 의사 선생님은 강력하게 주장했다. 살면서 '아토피 때문에 왔어요.'가 아닌 '피부가 간지러워요.'라고 의사한테 말해본 적이 있냐고 물었다. 내가 몸을 긁은 것은 '아토피'때문이 아니고 '피부가 간지러운 것'때문이라는 것이다. 나를 의아하게 쳐다보던 의사의 표정이 나를 안타까워하는, 진심으로 환자를 생각하는 표정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생각해 보니 그랬다. 나는 항상 병원(그것도 피부과 전문의가 있는 병원이 아닌 의원이나 소아과, 비뇨기과에서)에 가서 내입으로 아토피라 말했고, 의사 선생님은 긁은 자국을 보며 약을 처방했을 뿐이었다. 약을 먹고, 발랐지만 일시적이었다. 처방으로 받으러 병원에 간 거였다. 근본적인 치료가 된 적이 없으니 30년 동안 병원을 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갑자기 새로운 이견에 납득이 되면서, 처음으로 나는 의사에게 '진료'를 받는 기분이 들었다. 1분 만에 끝나는 의사와 면담이 아니었다. 흡사 30분짜리 개인 강의를 듣는 것 같기도 했지만, 환자 맞춤 진료와 상담이었다.
피부는 장기다. 외부 자극으로부터 나를 보호하는 가장 중요한 장기. 피부의 강도를 10이라고 했을 때, 나는 선척적으로 5 정도만 가지고 태어난 거라고 한다. 약한 거다. 그래서 외부자극이나 스트레스 같은 자극을 받을 때, 다른 사람들보다 예민하기 때문에 내 몸을 보호하려고 긁는 행위로 나온다는 것이었다. 또 생각해 보니 그랬다. 스트레스받을 때, 건조할 때, 운동하고 열이 올랐을 때 나는 긁고 있었다. 의사는 앞으로 '이것'만 지키면 병원에 오지 않아도 증상이 완화될 거라고 호언장담했다.
"습도, 열, 외부자극"
외부자극은 모기에 물리거나 긁혀서 부풀어 오르는 것이므로 잠시 논외로 두고 우리가 스스로, 공짜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습도와 열, 두 가지였다. 집에 가자마자 습도 최소 40%로 맞추기. 열받지 말기.
자세하게 말하자면, 건조해지는 겨울에 피부에 좀 더 신경을 쓰자는 거였다. 가습기를 틀고 보습을 철저히 하고. 샤워와 비누칠을 하면 몸이 건조해지니까 냄새가 발생하는 겨드랑이와 항문 주변만 씻고 나머지 몸 부분은 일주일에 한 번만 씻으라고 했다. 머리 감는 것도 건조해서 간지러운 거니 일주일에 두 번만 샴푸하고 나머지는 물로만 헹구란다. 일리가 있었다. 씻을 때마다 간지러운 것이 더 심해져서 조금은 꺼려졌기 때문이다. 열받지 말라는 것은 스트레스받지 말고 과로하지 말라는 것도 있지만, 전기장판 틀지 않기, 술 먹지 않기와 같이 열이 발생되는 행위를 하지 말라는 거였다. 이 말에 과로를 안 하고 싶으니 퇴사를 할 수밖에 없는 정당한 이유를 찾은 것 같았다.
눈, 신장, 위 이런 거는 없어도 살 수 있는 액세서리다. 그런데 피부가 없으면? 없으면 사람은 죽는다. 외부로부터 보호할 수 없으니까. 그런데도 피부를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못해 아껴 쓰지 못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옷도 자주 빨면 금방 해지는데, 피부는 왜 그렇게 매일같이 빨고 막 썼을까. 등잔밑이 어둡다고 가장 가까운 피부를 잊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아토피가 아니라 그냥 간지러운 거였다. 퍼즐조각이 맞춰지는 것 같았다.
당연히 정말 심한 아토피를 가진 분들은 약을 처방받고 극심한 관리가 필요하다는 건 안다. 하지만, 나는 얼굴만 보면 상처하나 없어 아토피인지도 모를 정도로 심하지 않다. 그냥 간지러웠고, 그만 긁고 싶었다. 그동안 받아온 약과 다르게 근본적인 해결책이 반가웠다. 연신 의사 선생님께 감사하다고 꾸벅였다. 진짜 먹힐지 모르는 이론이었지만, 그래도 한 줄기 빛이 보이는 듯했다.
의사는 후기처럼 친절했다. 밑져야 본전이니, 시골 의사 선생님 말대로 해볼 요량이다. 샴푸도 덜 쓰니까 괜스레 환경도, 내 텅장도 생각한 것 같아 기분부터 좋다. 경과는 앞으로 차차 올려보도록 하겠다. 나와 같이 일평생 아토피를 앓아온 사람들에게도 이 글이 닿아 조금이라도 희망을 얻었으면 좋겠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