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자신을 사랑하라.'라는 책을 29살에 떠난 평범한 여성의 281일 동안의 세계 여행 일기이다. 작가의 소개는 이렇게 시작한다.
"20대의 마지막. 나를 사랑하기 위해 떠났다."
이 책은 한동안 여행 카테고리에서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켰던 책이다. 여행 에세이에 관심이 없던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참 운명이었다.
2022년 한 해 마무리 겸, 23년 새해맞이 겸, 아니 우리 아빠의 오랜 꿈 해외에서 오래 머무르기, 갖가지 이유를 대고는 치앙마이 여행을 떠났다. 코끼리 체험과 태국 음식 요리하는 원데이 클래스를 미리 예약하고는 설레면서 12월 30일 저녁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 그 인연은 1월 2일, 태국 쿠킹 클래스에서 시작되었다.
유난히 향신료에 관심이 많고, 비싸 보이는 카메라로 이곳저곳 열심히 담아내는 한국인 커플이 눈에 띄었다.
처음 만든 음식인 똠냥꿍이 입에 맞지 않는 나에게 향신료 못 드시냐며 본인도 그렇다며 말을 트게 되었다. 한 요리가 끝날 때마다 점차 편해졌고 뭔가 통하는 게 있는, 나와 비슷한 사람인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아니나 다를까, 여자분은 이미 2권의 책을 출간한 작가님이셨다! (내가 작가는 아니지만, 책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이랄까)
우리는 클래스가 끝나고 저녁에 다시 만나기로 약속했다. 어쩐지 현지인만 갈 것 같은 훠궈 집이 있었고, 그곳에서 우리는 두 번째 만남을, 나와 작가님은 첫 번째 훠궈를 경험했다. 입맛이 까다로웠던 나와 작가님은 왠지 모르게 젓가락질이 드물었고, 내 남자친구와 작가님의 남자친구는 냄새가 난다면서도 잘도 먹었다. 어색함 없이 한참을 떠들던 우리는 갑자기 통성명도 하지 않을 채 한 시간이 지나있다는 걸 깨달았다.
여행을 되돌아보면, 사람이 생각이 나더라. 우리도 치앙마이 하면 서로가 생각날 거다. 큰 인연을 얻었고 큰 추억이 되었다.라고 작가님이 말했다. 하는 말마다 주옥같았다. 그래서 작가님이 더 궁금해졌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책을 사서 볼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사람을 먼저 만난 다음, 책을 접한 건 또 처음이었다. 책을 펴니 더 신기한 느낌이었다. 여행 에세이다 보니 사진이 절반이라 간간이 비치는 작가님의 모습에 오랜 친구를 만나는 느낌이었다. 간결하게 쓰인 그녀의 여행을 보며 왜 나와 비슷한 사람으로 느껴졌는지 알 수 있었다. 역시 여자 혼자서 하는 해외여행은 쉽지만은 않았고, 281일간 외로움을 느껴 면서도 혼자만의 여유를 즐길 줄 아는 사람이었다. 다양한 경험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무엇보다 도시보다 자연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관광 같은 여행이 아닌, 그곳의 일상에 내가 녹아들 수 있는 여행이었다. 내가 좋아하고 동경하는 사람이었다.
나보다 2살 많았던 작가님은 하고싶었던 일은 해내는 사람이었다. 코로나때문에 계획했던 여행이 중단되고, 혼자 뭐하지? 하고 생각하던 중 책을 출간했다. 그런데 나를 되돌아보니 나는 막연히 생각만 하고있었다. 책 내고 싶다- 하고 실제로 행하는 것은 없었다. 비슷하다고 느꼈지만 멋있다고 느꼈던 건 이 다른점 때문이었지 싶다.
하고싶은 걸 하는 사람들은 끝을 매듭짓는 힘이 있다. 그런 힘이 있는 자에게만 '자유'가 주어지는 것 아닐까. 나도 내 힘으로 살아가보기로 결심했다. 올해까지만 회사를 다니기로 마음먹었다. 우연히 만난 인연이지만, 우연이 아니었다. 책으로만 접했다면 알 수 없었던 작가님의 힘이었다. 일을 벌리기만 하는 내가 그 기운을 한 번 받아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