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31살로, 25살 취직하던 때부터 엄마한테 줄곧 들어오던 '시집이나 가.'라는 말을 졸업하게 되었다. 감사하게도 재작년에 만난 남자친구와 올해 9월, 백년가약을 맺기로 했다. 어쩐지 우리 엄마는 시원섭섭한 모습이다.
엄마는 평생을 나와 내 동생만을 살피며 살았다. 간간이 전공인 미술을 살려서 일을 하긴 했지만, 내가 고등학교에 들어간 이후로는 그만두었다. 온전히 주부로만 지내오셨기에 나는 30년 내내 아침, 점심, 저녁 모두 엄마가 손수 차려주는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있었고, 빨래도 밖에 내놓기만 하면 각 잡힌 옷들이 고대로 내 옷장에 들어와 있었다. 아침에도 정신없이 잠옷을 방바닥에 던져두고 머리를 말리느라 떨어진 긴 머리카락이 구석구석 흘려도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호텔방이 정리되어 있듯 먼지 한 톨없이 깨끗했다. 그래서인지 엄마는 매일같이 제발 좀 결혼해서 나갔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나는 결혼을 하고 집을 나가면 엄마가 좋아할 줄 알았다. 30년간의 육아에서 해방이나 마찬가지라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엄마가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상상도 못 했던 말들을 한다. 나에게서 벗어나고 싶다던 엄마가 자꾸만 약한 소리를 한다.
"신혼집에 엄마방은 있나?"
귀농이 평생 꿈이었던 아빠가 3년 전 작은 과수원을 인수하면서 엄마와 아빠는 꽤나 바빠졌다. 본격적으로 수확한 과일을 파는 건 아니지만, 모종을 한 두 개만 심어도 아낌없이 주렁주렁 열리는 야채와 과일들로 초보 농부인 엄마아빠는 틈만 나면 농장으로 출근해야 했다. 줄곧 주말부부였던 엄마와 아빠는 오히려 농장이 생기면서 생기있어졌다. 이번엔 이걸 심을까, 저걸 심을까. 이 나무는 꽃이 예쁘대, 저 나무는 과일이 맛있대. 잠자는 시간을 빼고는 유튜브로 농사를 공부하면서 둘의 사이는 점점 더 가까워졌고 행복해 보였다. 둘의 문제는 아니었다. 차로 한 시간 반 거리인 남자친구 직장 근처에서 살기로 한 나와 멀리 떨어지는 게 이상했던 것 같다.
"내일 엄마도 너희 데이트하는데 같이 밥 먹으면 안 돼?"
주말커플인 우리가 오랜만에 만나는데, 마침 아빠도 동생도 일이 있었던 터라 혼자 집에 있게 된 엄마가 심심했나 보다. 맛있는 초밥집을 가기로 했는데, 초밥을 좋아하는 엄마가 그저 초밥을 먹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아직 결혼도 안 한 남자친구와의 데이트에 와서 같이 밥을 먹고 싶다는, 난생처음 보는 엄마 모습에 살짝 목구멍이 메였다. 결국 바(한 줄로 앉아서 먹는 테이블)로 된 식당에 가서 나와 남자친구 가운데 앉혀드리니 어쩔 줄 몰라하시다가 세상 행복한 표정으로 식사를 하셨다.
"얘가 잘 안 치우고 지저분하게 사는데, 너(남자친구)도 그런 편이니 싸울 일은 없겠다."
내가 지저분한 게 걱정인 건지 둘이 싸우지 않을 거라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건지, 꽤나 중의적이지만, 나를 누군가에게 넘겨주는 엄마의 얼굴에 쓸쓸함이 스쳐지나갔다. 어차피 평생 엄마는 엄마고, 그 사실이 변치 않을 건데, 죽을 때까지 볼 건데, 왜 저런 말을 하는지 생각할 때마다 코끝이 찡해진다. 큰일이다. 이러다가 결혼식날 처음부터 끝까지 울다가 끝날 것 같다.
평생을 품에 품어왔던 자식을 보낸다는 게 와닿지도, 상상도 안되지만, 자꾸만 약한 소리를 내보이는 새로운 모습의 엄마가 낯설기도, 슬프기도 하다. 결혼하면 남자들이 효자가 되어버린다는 말이 이해가 될 것 같다. 결혼이 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