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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이 May 28. 2023

난생처음 집계약

야속하면서도 다행이게도 2018년보단 비싸고 2022년보단 조금 싼 가격으로 부동산 가격이 형성되었다. 그래도 어쩐지 올해 1, 2월보단 5천이나 뛴 느낌이다. 반등했다는 뉴스가 이렇게나 피부로 와닿는 일일줄이야.  

9월 결혼을 앞두고 슬슬 남자친구와 같이 살림을 꾸릴 아파트를 알아보기로 했다. 남자친구의 회사 통근버스가 다니는 동네여야 했고, 나는 기차를 타고 출퇴근하기로 하여 기차역과 가까운 곳이어야 했다. 왜 사람들이 역세권, 역세권 하는지 바로 알 수 있을 만큼 집값이 차이가 많이 났다. 우리는 현실에 굴복하며 점점 구석 아파트로 밀려났고, 버스 5 정거장이면 괜찮네, 버스만 오면 됐지, 하며 합리화를 할 수밖에 없었다. 집이라는 거액의 돈을 들여야 해서 너무 무서웠지만, 점점 아쉬운 소리밖에 못하는 처지에 짜증이 날 뿐이었다. 


처음엔 매매도 잠시 생각했었지만, 매매는 무슨, 평생 빚 갚다가 인생이 끝날 판이라 0.1초 만에 마음을 접었다. 전세로 알아보기 시작하니 집에 참 정이 안 갔다. 어차피 떠날 집인데, 어차피 있는 인테리어 그냥 쓸건데, 하고 집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저 부동산 아주머니와 돌아다니면서, 여기에 곰팡이가 있다, 벽지가 운다, 하며 트집잡기에 바쁘기만 했다. 급기야 아주머니는 그럴 거면 신축으로 가라며 입을 비죽거렸다.   


그러다 마지막 집을 남겨두고 부동산 아주머니는, 6시에 세입자가 오라고 했지만 2시간이 남은 터라 둘이 이야기해 보고 시간 맞춰 본인 없이 집만 보고 오라 했다. 나와 남자친구는 알겠다며 의도치 않게 우리 둘 만 동네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어쩐지 아주머니와 다닐 때완 다른 풍경이었다. 폭신해 보이는 바닥 위의 놀이터에서는 아이들이 뛰어놀았고, 유모차를 끈 신혼부부들이 평온한 표정으로 아파트 단지 내를 여유롭게 산책하고 있었다. 주차장이 단지 내 지하주차장으로 바로 연결되어 있어 몰랐지만, 지상은 생각보다 푸릇푸릇한 동네였다. 작은 연못이 있었고 풀과 나무가 빼곡히 심어져 있어 선선한 바람이 이곳저곳 누비고 있었다.  

 

그저 500세대 밖에 안 되는 단지였지만, 1층을 구석구석 산책로로 꾸며두어 쾌적한 느낌이었다. 남자친구와 시간 가는지 모르고 아파트 단지구경을 다녔다. 길가에 몇몇 아주머니들은 돗자리를 깔고 무언가를 나눠드시고 있었다. 정겨운 느낌이었다. 그러다 보니 6시가 되어 집을 방문하게 되었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이 집에 아기가 사는 집이라는 걸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아저씨 혼자 우리를 맞이했지만, 집은 아기 혼자 사는 집이라 해도 믿길 만큼 아기용품밖에 없었다. 신혼부부의 물건이라곤 퀸사이즈의 침대 한 개뿐이었다. 소파도 티브이도 없는 온 바닥엔 쿠션이 깔려있는 아기를 위한 집이었다.  

 

"3년 살았는데요, 집주인도 괜찮고, 방음이 잘되는 건지 윗집아랫집이 안 사는 건지 아무 소리도 못 들었어요. 동네도 너무 좋고 앞에 마트도 있고, 있을 거 다 있어서 살기 너무 좋아요. 저는 여기 너무 만족해서 옆에 큰 평수로 이사 갑니다." 


집주인도 아니고 세입자일 뿐이었는데, 그냥 믿음이 가는 한마디였다. 내가 필요한 한 마디였다. 눈앞에 남자친구와 함께 꾸린 우리의 첫 집이 눈앞에 펼쳐졌다. 따뜻한 집에 아이와 함께 뒹굴다, 몸이 찌뿌둥하면 문밖을 나서 자연 속을 산책하는 그런 모습말이다. 이렇게 간단한 문장을 듣기가 그렇게 어려웠고, 들을 수가 없어서 괜히 구경 다녔던 집을 다 퇴짜 놓았다. 세입자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들어가 보면 알겠지만, 그냥 그날 바로 계약했다. 집계약을 이렇게 하는 건지 모르겠다. 그냥 이렇게 한 걸음 한걸은 천천히 어른이 되는 건가 싶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 무섭고, 맘에 드는 집이 없어 짜증이 났지만서도, 어쩐지 순조롭게 난생처음 집계약이라는 한 걸음을 떼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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