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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이 Mar 08. 2023

푸릇한 풀이 들어오며, 우리집 강아지는,

내 옆방에 사는 동생이 언젠가부터 푸릇푸릇함을 집에 들여놓기 시작했다. 택배 상자가 줄줄이 쌓이더니 식물 더미가 점점 늘어갔다. 요즘은 식물도 배달이 된단다. 택배로 조금씩 배달된 식물들은 굉장히 작았다. 모종이라고도 하는 것 같은데, 대부분 손바닥만 했다. 나무 선반에 주먹만한 작은 화분을 하나둘씩 모아두니 그럴싸했다.


주말부부이신 부모님, 회사에 다니는 동생과 내가 있는 집은 꽤나 적적했다. 오랜 시간 함께 지낸 강아지 한 마리가 그 고요한 공간 속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었다. 따사롭게 들어오는 햇빛 한줄기를 이불 삼아 낮잠을 청하는 강아지 ‘복이’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적막한 공기가 우리집이었다. 아늑했지만 사람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어딘가 회색빛의 차가운 우리집. 그런데 동생 방이 초록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집에서 대충 키워도 잘 자라는 풀, 손이 많이 가는 풀, 온도, 습도에 엄청 예민한 풀 등 종류도 다양했다. 이름까지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지만, 회사에 있는 식물도 말려 죽여버리는 나에게는 그저 외계어로만 들렸다. 그나마 예쁘다고 생각된 몇 가지는 이름이 기억이 나는데, 스투키, 테이블야자, 오렌지자스민, 고무나무, 몬스테라 같은 것들이 있었다. 사실 이름이 쉬워서 예뻐보인 걸 수도 있지만 말이다.


이제 와 생각해보니 그 방을 가장 많이 들락거린 건 복이었다. 틈만 나면 작은 식물들을 구경하러 그 방에 들어갔다. 바닥에 놓인 풀들의 냄새를 킁킁 맡으며 관찰했고, 나무 선반에 놓인 식물은 복이 눈높이에 딱 맞는 높이라, 얼굴에 풀잎을 스치며 걸어 다녔다. 노견이 된 복이는 산책하러 나가면 금방 집으로 돌아오고 싶어 했고, 치매가 왔을 땐 한 방향으로 뱅글뱅글 돌면서 걸었지만, 주 목적지는 동생 방이었다. 풀 내음이 참 좋았었나 보다.


나이가 많이 든 복이는 대소변 실수도 점점 잦아져 동생 방에 싸고는 일어나지 못해 그 위를 뒹굴곤 했다. 어쩌면 동물이기에, 자연 속에서 대소변을 처리하고 싶었던 걸까 싶다. 우리는 간간이 화분도 엎어버리는 복이를 많이 혼냈었던 것 같다. 자꾸 자기 방에서 훼방을 놓는 복이가 귀찮았을 수도 있다. 쓸쓸한 집구석에서 복이의 힐링 공간이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복이가 떠난 집은 텅 비어버렸다. 적적했던 집이었지만, 더 스산하고 쓸쓸해졌다. 그나마 복이라는 존재 하나로 우리집에 온기가 들었던 거다. 회색빛의 우리 집에 햇살 같았던 복이의 빈지리가 크다. 따뜻한 온기로 우리 가족을 순찰돌던 복이가, 동생 방을 지나칠 때마다, 초록초록한 풀들을 볼 때마다 사무치게 그리워진다. 풀들 사이로 비치던 복이의 뒷모습이 아른거린다. 그저 푸릇한 풀을 보는데, 가슴이 미어진다. 사랑을 줘도 모자랐던 강아지에게 너무 많은 사랑을 받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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