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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Nov 29. 2016

세계 최강 기업의 뼈를 깎는 자기 혁신

왜 다시 도요타인가

         

2010년 2월 24일 미국 의회 청문회장. 증인석에 앉은 도요타자동차 사장이 사과 발언을 하던 중 급기야 울먹이는 모습을 보였다. 도요타의 창업주의 손자인 도요다 아키오(豊田章男)였다. 도요타가 일으킨 사상 초유의 1,000만 대 리콜 사태에 대해 미 의원들의 호통에 가까운 책임 추궁이 쏟아진 직후의 일이었다. 이 광경을 많은 일본인이 지켜봤다. 위기 앞에 눈물을 보이는 창업가 3세 사장을 보며, 도요타와 일본 제조업의 미래를 걱정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도요타 본사가 있는 일본 나고야 현 도요타 시 근교에는 도요다 기이치로의 옛 자택이 있다. 지금은 창업자 기념관으로 쓰이는데, 집 앞 정원에 벚나무 한 그루가 심어져 있다. 이제 제법 자리를 잡아가는 그 나무 앞에는 '2011년 2월 24일, 도요타 재출발의 날'이라는 엽서 크기의 푯말이 있다. 아키오 사장이 미국 의회 청문회에서 눈물을 흘린 뒤, 정확히 1년이 지난 날 심은 것이다. 추적추적 내리는 겨울비 속에서 아키오 사장이 직접 심었다. 

이곳에서 만난 오기소 이치로 기념관 관장은 "아키오 사장이 품질 문제로 고객에게 피해를 입혔던 일을 절대 잊지 않겠다는 마음을 담아 식수(植樹)한 것"이라고 했다. 그는 덧붙였다. '재출발의 날' 이후 도요타에서 2월 24일은 모든 부서가 고객제일주의를 제대로 실행하고 있는지 되돌아보는 날이 됐다. 

아키오 사장이 '도요타 재출발'을 맹세한 이후로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의 맹세는 이미 지켜진 것으로 보인다. 2015년 도요타는 연간 매출 약 310조 원, 연간 영업이익 약 31조 원을 기록했다. 도요타 79년 역사상 최대 실적이며, 세계 자동차 역사에서도 처음 있는 일이다. 2008년 리먼 쇼크, 2010년 1,000만 대 리콜, 2000년대 후반의 엄청난 엔고,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등 메가톤급 위기를 딛고 어렵게 어렵게 다시 쓴 왕관이다. 세계 최대 자동차회사의 창업자 손자가 이뤄낸 멋진 부활 스토리라 할 만하다. 

최고의 순간에 회사를 7개로 쪼개다 

그런데 스토리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아키오 사장은 '이제까지는 맛보기, 본편은 지금부터'라고 선언하는 듯한 일대 사건을 일으킨다. 회사의 근간을 흔드는 조직 대수술에 나선 것이다. 2016년 4월 단행한 도요타 신 체제 개편이 바로 그것인데, 개편 규모가 워낙 커 제2의 창업이라 불릴 정도다. 간단히 말하면, 회사를 7개 독립경영 컴퍼니로 쪼개고, 각 컴퍼니 사장들에게 막강한 결정권을 부여함으로써 효율성은 높이고 쓸데없는 에너지 소모는 차단했다. 

아울러 "다음 CEO는 절대 도요다 성을 가진 사람이 아닐 것"이라고 선언, 7개 컴퍼니 사장들 가운데 차기 CEO가 나올 것을 예고하며 차기 리더를 육성하고 있다. 

세계 어디를 봐도, 온갖 위기를 극복하고 사상 최대 실적을 올린 직후에 이런 일을 하는 기업은 없다. 샴페인을 터뜨리진 않더라도, 대부분은 일단 공로를 보상하고 조직을 다독거리려 할 것이다. 

그렇다면 도요타는 '왜' 그리고 '지금 이 시점'에 조직을 손본 걸까? 현재 조직으로도 사상 최대 수익을 냈는데 왜 완전히 뜯어고쳤을까? 그 이유는 '최대 실적을 낸 지금이 회사의 최대 위기'라고 봤기 때문이다. 

'대기업병'을 고치지 않으면 미래는 없다 

무엇이 그렇게 위기였을까? 바로 '규모'다. 최근까지 아키오 사장은 "규모가 너무 큰 것이 도요타의 최대 약점"이라고 반복해서 말해왔다. 조직이 성장하고 규모가 커짐에 따라 오히려 효율이 떨어지는 '규모의 불경제', 업무가 지나치게 복잡해져 한순간에 제어하기가 어려워지는 '복잡성의 폭발', 더불어 조직 내 의사소통의 저하로 발생하는 비효율, 조직원의 동기나 목표의식 상실 등이 구체적인 현상이다. 이른바 ‘대기업병’으로 일컬어지는 이런 현상들은 어떤 글로벌 우량기업도 피해 갈 수 없는 고질병이다. 

이를 고치지 않으면 도요타 역시 지속적인 성장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아키오 사장 이하 도요타의 최고 경영진이 아주 심각하게 받아들였다는 얘기다. 그리고 그들은 장기적 관점의 해결책을 준비하고, 고통을 감내하고라도 그 해법을 추진하는 길을 걸어갔다. 도요타가 2016년 4월 단행한 신체제 개편은 대기업병을 극복하기 위한 총체적 고민의 산물이었다. 

신간 <왜 다시 도요타인가>는 이 같은 도요타 회사의 지난 7년에 걸친 고민과 변화들을 집중적으로 해부한다. 이것이 위기의 한국 기업들에 좋은 해법이 될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구글, 애플 같은 미국 기업들이 언제나 능사는 아니다. 지금 같은 때는 우리와 가장 닮은 모델인 도요타를 타산지석으로 삼을 때다. 

※ 본 연재는 <왜 다시 도요타인가>(최원석/ 더퀘스트/ 2016년) 내용 가운데 일부입니다.


위 글은 인터파크 북DB 기사 [세계 최강 기업의 뼈를 깎는 자기 혁신]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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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칼럼니스트 최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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