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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Nov 24. 2016

사라진 개... "나는 개도둑이 아닙니다!"

산골독서가의 세상읽기

                   


이것은 어느 지리산 견공에 대한 슬프고도 쓸쓸한 이야기다. 사진은 특정 개와 상관없음. 


OO댁 엄니의 개, 누렁이가 사라졌다. 엄니가 밭에 다녀온 잠깐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목줄이 풀려 동네 한 바퀴 마음껏 뛰어놀다 들어올 줄 알았다. 누렁이는 해가 저물고 어둠이 내려도 오지 않았다. 작년 여름이 끝날 무렵의 일이다. 


다음 날 엄니는 동네를 돌아다니며 "누렁아!" "누렁아!"를 외치고 다녔다. 지리산 골짜기는 "누렁아~" 메아리로 한동안 가득했다. 그래도 누렁이는 돌아오지 않았다. 누렁이가 자동차 도로로 진출했다가 사고를 당한 걸까? 동네 주변 도로에 그런 흔적은 없었다. 하루가 더 지나서 엄니가 내가 사는 집 현관문을 두드렸다. 


"누렁이 못 봤어?"
"못 봤는데요."
"그려…."
"좀 더 기다려 보세요. 예전에 우리집 개는 일주일 만에 들어오기도 했어요."
"잉, 그려…."


엄니는 나의 말을 듣고도 한동안 우리집 마당을 몇 바퀴나 도셨다. 동전이라도 찾는 것처럼 풀밭을 살짝 헤집기도 했다. 다음 날에도 엄니는 우리집 마당에 또 올라오셨다. 나는 그냥 그러려니 했다. 잠시 뒤 깨달았다. 


'이런, 엄니가 개 뼈다귀를 찾고 있구나!'


매화가 한창이던 무렵, 엄니 집 마당에서 나눴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지리산 산골마을 신입생이던 나는 엄니에게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어디에서 뭘 해서 먹고살았는지 주저리주저리 이야기했다. 말동무가 많지 않던 엄니는 좋아하셨다. 나는 이런 말도 했다. 


"엄니, 제가 보신탕집 막내 아들로 자랐어요. 내가 고3 때까지 아버지가 보신탕집을 했어요. 도시락 반찬으로 개고기를 싸갔다니까!"
"잉, 그러믄 힘이 엄청 좋것네!"
"아이고, 그거 소문이에요. 그런 거 믿지 마세요."
"뭐래? 딱 봐도 힘 좋게 생겼구만!"


봄날에 나눈 대화가 생각나자, 나는 아차 싶었다. 엄니는 '누렁이 납치범'으로 날 의심하는 거다. 우리집 마당을 살피는 엄니에게 한마디 거들어야 했다. 


"엄니, 아직 누렁이 안 왔어요?"
"여직도 안 왔어. 누가 잡아서 먹었나봐."


말을 하면서 엄니는 눈으로 마당 곳곳을 살폈다. 날카로운 매의 눈으로 기필코 개 뼈다귀를 찾고 말겠다는 집념이 보였다. 


"여름도 다 끝났는데, 누가 보신탕 먹으려고 개를 훔쳐가겠어요?"
"묵는 사람들은 사시사철 묵어! 잘 알 거 아녀? 보신탕집 했다매?"
"……"
"개 좋아하는 사람들은 노상 개만 묵어."


어떤 말을 해도 엄니의 의심을 막을 수는 없을 듯싶었다. 우리집 마당을 천천히 도는 엄니를 가만히 바라봤다. 농담이랍시고 내가 한마디 툭 던졌다. 


"엄니, 저 개 끊었어요. 개 안 먹은 지 한 10년이 다 돼가네요."
"잉…. 그려. 근데 그게 뭐 그렇게 쉽게 끊어지나…."


엄니는 느린 걸음으로 집으로 돌아가셨다. 정말이지 미국 CSI 요원들을 불러 사라진 누렁이의 행방을 쫓고 싶었다. 나는 누렁이를 훔지지 않았고, 잡아서 먹지도 않았다. 하지만 내 억울함을 엄니에게 설명하는 것도 참 이상하고 구차한 일이었다. 


가만 생각해보면, 엄니의 생각과 처지도 이해된다. 


어느 날 낯선 놈이 동네로 이사를 왔다. 서울에서 오래 살았다고 하는데, 그런 비주얼이 아니다. 얼굴을 딱 보면 개도둑(?)처럼 생겼다. 엄니가 노상 틀어 놓는 TV 프로그램에 나오는 '잡범'과 비슷하게 생겼다. 게다가 출신 성분이 보신탕집 막내아들이고, 고3 때까지 개고기를 도시락 반찬으로 싸갔다. 남들이 껌 씹을 때, 저놈은 개 살코기를 씹고 다니는 모습이 쉽게 그려진다. 아마도 누렁이는 저 놈의 배 속에 들어 있을 거다!


필자의 프로필 사진. 엄니의 의심이 영 터무니없는 것만은 아닌 듯하다.


"판단은 진실을 파악한 다음에 내려도 늦지 않다"


의심은 쉽고 증명은 어렵다. 엄니만 그러겠는가. 우리 모두는 쉬운 의심의 길에 들어서고, 확인되지 않은 소문에 흥미를 느끼며, 미확인 음모론을 열심히 타인에게 퍼트린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어려운 증명을 하느라 힘쓰기보다는, 의심만 갖고 확신을 하는 게 쉬우니까.


'익산 택시기사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10년을 교도소에서 살았던 최아무개씨에게 최근 법원이 무죄를 선고했다. 범인으로 아닌 것으로 여겨졌던 다른 사람이 체포됐다. 자세한 맥락을 보면, 과거 경찰이 아무 관련이 없이 엉뚱한 최씨를 잡아 가둔 건 아니다. 


최씨는 택시기사가 살해된 즈음에 현장을 지나갔고, 용의자로 의심할 만한 사람을 목격했다고 경찰에게 말했다. 몽타주를 그렸는데, 엉뚱한 얼굴이 나왔다. 그 뒤 곧바로 최씨는 이런저런 사정으로 익산을 떠났다. 


'엉뚱한 몽타주를 그려놓고, 익산을 빠져 나가다니. 게다가 그는 택시기사 사망 즈음에 현장을 지나치지 않았나. 혹시, 최씨가 범인인가?'


사건이 꼬이고, 꼬인 건 이런 의심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그 뒤 경찰은 최씨를 잡아다가 '족쳤다'. 의심이 확신으로 이어졌으니, 과학수사는 필요도 없었다. 그렇게 엉뚱한 범인이 탄생했다. 경찰만 오판을 한 게 아니다. 검찰, 판사도 오판에 빠져 한 사람의 인생을 망쳤다. 


살인범이 뒤바뀐 사례까지는 아니어도, 실제로 경찰-검찰-사법부의 오판 사례는 생각보다 많다. 글 잘 쓰는 검사에서 이제는 글 잘 쓰는 국회의원이 된 금태섭 의원이 쓴 <디케의 눈>(궁리/ 2008년)은 진실을 밝히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잘 보여준다. 


책은 저자가 검사 시절 직접 수사했던 경험, 역사적 사건, 해외의 사례까지 두루 다루면서 실제 사례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시공간이 다른 여러 사건은 공통적인 주제와 화두를 던져 준다. 


바로 "선입견을 가지고 사건을 바라보"지 말아야 한다는 것, "판단은 객관적인 증거에 의해서 진실을 파악한 다음에 내려도 늦지 않다"는 것이다. 


요즘 밤마다 산책을 한다. 산골에는 가로등이 없어 밤길이 먹물처럼 어둡다. 나는 전등 없이 그냥 산책을 한다. 조용하고 시원한 맛이 좋다. 어느날 갑자기 이런 생각을 했다. 


내가 산책을 한 다음 날 아침, 내가 걸었던 그 길에서 시신이 발견된다면? 수사기관은 확실한 단서를 찾지 못한다면? 아마 내가 첫 번째 용의자가 될 거다. 옆집 여인은 "개도둑처럼 생긴 옆집 남자가 하는 일도 없이 밤마다 산책을 나간다"고 증언하고, 또 다른 이웃은 "전등도 없이 날마다 밤길을 걷는 그 남자가 사실은 좀 의심스럽고 무서웠다"고 진술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나는 의심의 올가미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만약 수사기관이 범인을 잡지 못하면 문제는 더 꼬인다. 이웃들에게 나는 계속 의심되는 남자로 남을 테니까.  


나는 어떻게 알리바이를 입증할까? 사실 엄밀히 따지면 알리바이는 내가 입증할 일이 아니다. 수사기관이 내 죄를 입증해야 한다. 그런데 현실에서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인간은 신이 아니어서 완벽하지 않다. 앞서 말한 대로, 의심은 쉽게 확신으로 이어찌만, 입증과 증명은 어려운 법이니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내가 걷는 산책 길에, 시신이 발견되는 일이 없길 바랄 뿐이다.


위 글은 인터파크 북DB 기사 [사라진 개... “나는 개도둑이 아닙니다!”]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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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칼럼니스트 박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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