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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Nov 24. 2016

[용눈이오름] 어머니의 품을 닮았다

제주는 그런 곳이 아니야

                             

제주가 주는 멋은 '딱 이것이다'라고 표현하기 어렵다. 하나만을 딱 고른다면 사실 제주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않나.

제주는 바다에 가도 산에 가도 다른 지방의 그것과 차별되는, 나름대로의 멋이 있다. 그런데 산도 아니고, 바다도 아닌 정말 제주만의 것이 있다. 오름이다. 산이나 바다는 뭍사람들 곁에 존재하는 것일지 몰라도 오름은 오직 제주 사람 곁에만 머물러 있다. 오름은 한라산이 주지 못하는 감칠맛이 있다. 뭍사람들은 한라산을 아주 쉽게 오른다. 단숨에 한라산에 올라 남한의 최고봉을 밟았다는 사실에 만족한다. 그렇지만 제주를 진정 느끼려면 오름에 올라야 한다. 한라산이 주지 못한, 아니 한라산이 줄 수 없는 그 무엇인가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건 제주 민중의 삶이다. 오름, 그것은 한 마을의 구심점이기도 하며, 신앙의식의 터이기도 하다. 제주인은 그런 오름 자락에서 살을 붙여왔다.

오름은 민중의 것이었기에 친근하고 넉넉함이 있다. 그 친근함과 넉넉함을 느끼려면 한라산 정상까지 갈 때처럼 발걸음을 재촉하지 않아도 된다. 오름은 우리더러 몸을 낮추라고 한다. 허리를 낮출 때만 보여주는 것들이 있다.

오름은 거대한 무덤을 닮기도 했으나 실은 우리 어머니다. 우리 어머니들은 오름을 숱하게 오르며 거기서 아픔을 쓸어내렸고, 우리에게 희망을 얘기했다. 그래서 오름을 파괴하는 행위를 우리는 용서하지 못한다. 1990년대 중반, 한국전력이 당시 북제주군(현재는 제주시가 됐다) 구좌읍 일대를 지나는 송전탑을 시설하려하자 대대적인 반대 운동이 일어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오름의 왕국. 제주도를 그렇게 부른다. 제주도 어디에서나 마주할 수 있는 한라산 정상처럼, 오름도 어딜 가나 만나게 된다. 그 가운데서도 제주시 구좌읍은 유별나다. 오름이 집단적으로 봉긋봉긋 솟아 있다. 구좌읍 일대의 오름을 오르면 우리가 그렇게 부르는 '오름의 왕국'이 그야말로 가슴에 와 닿는다. 

그런 수많은 오름 가운데 용눈이오름을 찜하겠다. 용눈이오름은 구좌읍의 끝지점이면서 '오름의 왕국'의 시작을 알리는 오름이다. 이 오름은 잔디가 넓게 깔려 있어 오르기에는 그만이다. 마치 용의 등을 따라 오르락내리락 하는 기분이다. 그래서 용의 이름이 붙었는가. 한자로 용와악(龍臥岳)이라고 한 것을 보면 그 말이 맞는 모양이다. 누워 있는 용, 용눈이다. 그나저나 용은 바다의 왕인데 웬일로 땅에 서 있게 되었나. 참 착한 용이다. 하늘 맑은 날에도 날아오르지 않고 어머니같은 이 땅을 지키고 있으니.

오름의 포인트는 한라산과 다르다. 정복을 위해 나선다면 집어치우라고 말하고 싶다. 오름은 정복하는 데 맛이 있는 것이 아니라 느끼면서, 자기화 내지 오름과의 동질화에 있기 때문이다. 천천히 지르밟아 가다 보면 아름다움에 푹 빠진다.

오름은 작다. 그래서일까. 오름에는 정말 작은 것이 아름답다. 숱하게 아름다운 작은 것들이 있다. 산담을 두른 무덤군을 지나면 발 아래 야생화들이 펼쳐진다. 흰 솜털이 보송보송한 할미꽃, 5개의 노란 잎을 피워 올린 양지꽃, 6개의 하얀 손가락을 내민 이름 모를 들꽃, 자줏빛 제비꽃도 눈에 들어온다. 제비꽃을 알아도 봄은 오고, 제비꽃을 몰라도 봄은 간다고 했다. 모르는 들꽃들이 널려 있으나 중요한 사실은 이름을 알든 모르든 허리를 낮춘 사람에게만 들꽃들은 자신을 보여준다.

등성이를 오를 때 많은 들꽃이 마구 발에 밟힌다. 메마른 대지에서 한 방울도 안 되는 이슬을 모아 피워낸 꽃이 할미꽃이라는데 오름을 오르는 이들의 발아래 수없이 짓눌려도 살아 있다.

야생화의 매력에 푹 빠져 등성을 오르면 '지치다'는 단어는 너무 과한 표현이라는 느낌이 든다. 지칠 새가 없다. 오름이야 크지 않기 때문에 자세히 관찰하며 오르더라도 시간은 넉넉하다. <오름나그네>라는 책을 펴낸 자칭 타칭 '오름나그네'로 불렸던 고(故) 김종철 어른은 용눈이오름을 이렇게 표현했다. "너울거리는 능선의 기복에도, 굽이치는 굴곡선에도 생동감이 흐른다."

용눈이를 밟다보면 오름나그네가 표현한 말이 사실임을 알게 된다. 오르락내리락 하는 재미가 으뜸이다. 남쪽과 북쪽 봉우리 사이에 움푹 파인 분화구가 있다. 세어보니 3개나 된다. 그런데 귓바퀴를 훑고 지나가는 바람이 매섭다. 귀가 따가울 정도이다. 바람을 피하기에는 분화구가 제격이다. 거친 바람도 여기서는 잦아든다. 누군가가 분화구 안에 돌을 하나 둘 모아 탑을 쌓아뒀다. 4·3을 기억해 낸 독립영화 ‘지슬’의 장면장면이 고스란히 보인다.


위 글은 인터파크 북DB 기사 [[용눈이오름] 어머니의 품을 닮았다]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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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칼럼니스트 김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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