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칼럼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인터파크 북DB Dec 01. 2016

[환해장성] 죽지 않기 위한 제주인의 몸부림

                  

섬에는 돌이 있다. 검고, 구멍이 숭숭 뚫린 돌이 널려 있다. 바닷가로부터 마을을 지나 한라산까지 끝도 없이 존재하는 그들은 이리저리 굴러다니기도, 한 곳에 자리를 트고 웅크려 있기도 하지만 늘 우리와 함께 하고, 함께 해야 할 벗이었다. 그래서 그 돌은 제주를 가리키는 상징이 됐고, 제주 역시 그 돌을 벗어나서는 얘기하지 못한다.

산담이 있었고, 밭담도 그렇고, 프라이버시를 지키려는 올레도 있다. 제주를 왔다간 사람들은 그 돌에 푹 빠져버린다. 돌에 환장을 해버린다. 그래서 제주에 몰려오는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산에서도 놀라고, 밭에서도 놀라고. 어떻게 그 많은 돌이 뛰쳐나와 마치 생명체처럼 꿈틀거리는지는 모른 채 자기네들과 전혀 다른 색다른 풍경 자체에 감탄사를 내보낸다. 그러나 감탄사만 던지다간 제주를 다 보지 못한다. 아파야만 했던 제주인들의 숨소리도 듣고 볼 줄 알아야 한다.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있는, 바닷가를 빙 둘러선 돌무더기인 환해장성을 찾아보자. 지금은 파괴절차가 다 진행된 상태여서 얼마 남아 있지 않고, 혹은 밭담을 닮은 존재로 치부되기도 하지만 애초엔 제주 바닷가 300리를 휘감던 건축물이었다.

멋있지만 멋있다고 불러도 좋을까. 멋있다고 부르면 환해장성이 좋아하려나? 환해장성엔 남모를 아픔이 숨겨 있기에 어쩐지 멋있다는 표현이 어색하다. 성(城)이란 무엇인가. 적과의 대치를 위해 필요한 군사 방어시설이지 않은가. 우린 살기 위해 돌을 나르며 이것저것을 만들었다면 환해장성은 죽지 않으려 몸부림 친 결과물이었다. 환해장성은 밭담이나 올렛담처럼 경계를 나누기 위한 작업도, 바람을 이기려 한 것도 결코 아니었기 때문이다.

꼿꼿이 바다를 응시하는 환해장성은 이렇게 들려준다. "그대들 할아버지·할머니들의 가슴 저민 숨소리가 내 품에 있다"고.

 
김상헌은 <남사록>에서 환해장성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바닷가 일대는 돌로 성을 쌓았는데, 연달아 이어지며 끊어지지 않는다. 섬을 돌아가며 곳곳이 다 그러하다. 이것은 탐라 때 쌓은 만리장성이라고 한다."

김상헌이 살았던 17세기엔 제주 해안가 곳곳이 환해장성으로 둘러 있었다는 말일테다. 하지만 지금은 제주시 화북, 애월, 행원, 한동 등 10곳 가량만이 당시 존재했음을 흔적으로만 말한다.

김상헌은 누구에게서 들었는지 모르지만 탐라 때 것이라 했다. 이원진이 쓴 <탐라지> ‘고장성(古長城)’조에는 삼별초의 제주 진입을 막기 위해 쌓았다고 한다. <탐라기년>에는 헌종 11년(1854) 영국 선박이 1개월동안 우도 연안의 수심을 측정하자 권직 목사가 크게 놀라 그해 겨울 도민을 총동원해 환해장성을 쌓았다고 한다. 지금 남아 있는 환해장성의 흔적들은 그 당시 만들어진 자취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삼별초의 진입을 막기 위해 환해장성이 처음으로 쌓인 건 아니다. 김상헌의 말처럼 오래전(탐라)부터 바다를 두르는 성은 있어왔다. 탐라국을 지키던 제주인들이 제주성을 만들었듯 지배층에 의한 축성 작업은 바다라고 없진 않았다. 더욱이 제주도엔 외세의 침입이 늘 있어왔기에 죽기 않기 위해 해야 했던 일은 성을 쌓는 것이었다. 무너지면 쌓고, 또다시 무너지면 쌓아 올리는 일을 해오며 우리는 제주라는 섬을 지켜왔다. 그래서 지금을 사는 이들은 멋진 제주도를 감상하는 행복을 누리는 것이다.

성은 아무렇게나 지어지는 것도 아니고, 성격이 모두 같지도 않다. 읍성과 진성은 통치를 위한 권위적인 요소와 행정적 편의를 갖춘 성이라면, 환해장성은 행정적인 목적은 전혀 없는 단순히 적을 막기 위한 군사적 목적만이 있는 성이다.

성을 쌓는 방법도 다르다. 읍성과 진성을 쌓는 데는 인공미가 가미된다. 돌을 잘 가다듬어 쌓기에 쌓는다는 의미보다는 붙인다는 의미가 더 맞을 듯하다.

환해장성은 그렇지 않다. 거기엔 인공미란 애초에 없다. 주변에 널린 자연석을 엇갈려가며 만든 허튼 층 쌓기 방식이었다. 돌의 크기는 일반적으로 성 아래쪽이 크며, 위로 갈수록 작아진다. 단순하게 안쪽과 바깥쪽을 돌로만 쌓는 것도 아니었다. 여장(女墻)이라고 부르는 성가퀴를 만들기도 했다. 성가퀴는 적의 침입을 효과적으로 관측하고, 몸을 숨겨 적을 공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성 위에 덧쌓은 낮은 담이다.

환해장성은 밀물 때면 바닷물이 닿기도 할 정도로 바다와 바짝 붙어 있다. 그러나 잇따른 개발로 환해장성은 온전히 보전되지 못했다. 제주바다를 빙 둘러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겠다는 원대한 해안도로 개발로 인해 환해장성은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져갔다. 비지정 문화재로 수모를 겪던 환해장성은 지난 1998년에야 제주도기념물 제49호로 지정돼 보호되고 있을 뿐이다.

환해장성이 위치한 곳은 으레 군사시설이 웅크리고 앉았다. 그런 곳에 있는 환해장성은 현대의 전투배치용 참호로 둔갑, 환해장성의 원형이 어떤 것인지를 헷갈리게 만들고 있다.

파괴는 그 뿐만이 아니다. 해안도로 개발에 따른 1차 파괴에 이어, 또 다른 파괴를 당하고 있다. 복원이라는 문화재정책이 바로 그것이다. 복원은 사실에 바탕을 둬야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점이 문제다. 

복원된 환해장성은 제주시 화북동 등지에서 볼 수 있다. 아주 늠름한 모습으로 복원됐다며 자신감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복원된 환해장성은 자연석을 잘 다듬어 쌓았고, 돌의 크기도 위·아래 제멋대로 갖다 붙였다. 원래 환해장성은 그 지역 바닷가에서 나온 돌을 그냥 쌓아 올렸는데, 새로 쌓은 환해장성은 그 지역에서 나는 돌이 아니라 다른 지역의 돌을 옮겨다 쌓기도 했다. 그리고 얼마나 잘 다듬었는지, 너무 잘 다듬어져 환해장성이 아니라 새로운 진성인 듯 착각하게 만든다. 

그런 곳에 가걸랑 "아! 문화재 파괴라는 게 이런 것이구나"라고 읊으면 된다. 더군다나 제주시 화북동 환해장성은 제주올레 18코스의 일부이다. 올레꾼들은 걸으며 단순히 "이게 환해장성이다"라고 바라보지만 말고 "그렇지, 아주 잘못된 문화재 복원 현장을 지나고 있어." 이렇게 생각하라.


※ 본 연재는 <제주는 그런 곳이 아니야> (김형훈/ 나무발전소/ 2016년) 내용 가운데 일부입니다. 


위 글은 인터파크 북DB 기사 [[환해장성] 죽지 않기 위한 제주인의 몸부림]의 일부입니다.  
☞ 전문보기


글 : 칼럼니시트 김형훈


매거진의 이전글 인사 잘하는 아이가 엄마 기를 살린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