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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Dec 08. 2016

[올레] 열리면서도 닫힌 공간 건축의 백미

제주는 그런 곳이 아니야

                            


옛 놀이터들은 다 어디로 갔나. 거기엔 미끄럼틀도, 시소도 없었다. 단지 애들의 웃음소리만 가득했을 뿐이다. 늘 위엄을 갖춘 팽나무와 돌담에 기대 말타기를 즐기는 사내들의 외침, 간혹 리어카와 자전거도 등장하곤 했다. 표준어로 고샅이라 불리는 올레의 흔하디흔한 모습들이었다. 그렇지만 이는 한갓 기억속의 풍경일 뿐이다. 


기억 속에 묻힌 보따리를 훌훌 풀어내지 않는 한 그 풍경들은 이젠 제주 어디에서도 만나지 못하는 옛 것이다. 마치 흑백사진의 그것처럼 말이다. 왜 그렇게 됐냐고 말을 할 필요는 없겠다. 모두 잘 먹고 잘 살자고 외친 이유 하나였다. 단지 그 옛날이 그리워질 뿐이다.


도시개발은 어쨌거나 기존의 문화를 살리기보다는 파괴하는 방향으로 틀어졌다. 또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던 게 사실이다. 아우성치며 도시개발을 해달라고 요구한 건 우리였으니 말이다. 길이 생기면 무조건 좋아라 했다. 그것도 구불구불한 길이 아니라 곧장 뻗은 길을 원했다. 


격자형의 도시개발은 필연적으로 기존 마을의 파괴를 불렀다.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건 도시개발을 원한 우리였고, ‘삼춘’으로 통하는 마을공동체의 파괴가 뒤따랐다. 한참 돌아보고서야 옛 추억이 어린 공동체가 그리워졌으나 되돌릴 수는 없었다. 마을공동체의 근원이던 올레는 개발로 끊어지고 사라지고 난 뒤였다. 현대 도시개발은 아직까지도 공간의 멋이나 운치보다는 효율성을 추구한다. 또한 거기엔 거대함이 뒤따르면서 작고 아름다운 것들의 퇴보를 담보로 삼고 있다.


제주도라고 하면 올레를 떠올리는 사람이 대다수가 아닐까 한다. 그만큼 올레는 많이 알려졌다. 하지만 올레를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올레를 안다는 사람들은 그냥 걷는 길로 여기고 있다. 그건 사단법인 제주올레의 역할이 컸다. 그런데 제주올레에서 말하는 올레와 필자가 쓰고 있는 올레는 개념이 전혀 다르다. 제주올레는 ‘걷는 길’을 말하는 브랜드이지만, 올레는 그와는 다르다. 올레는 단순한 길이 아니라,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공간이다.


건축은 공간을 다루는 예술이라 한다지만 도시개발은 아직 멀었다. 오히려 옛 사람들이 건축 공간을 이해하고 즐길 줄 알았다. 삭막하기만 한 회색빛의 도시와 답답한 벽돌담에 의지하는 사람들은 모른다. 올레는 많이 사라지기는 했으나 한번쯤 올레를 찾아 떠나보라. 돌담 사잇길을 걷는 멋의 여유가 “이것이구나”하고 느낄테니까.



올레는 공유공간이기도, 사유공간이기도 하다. 고샅과는 골목길이라는 점에서 같지만 속성은 다르다. 다른 지방에서 말하는 골목길은 이웃이 함께 하는 도로의 개념을 지니지만 올레는 그같은 공유개념에다 자신의 집마당에 진입하는 사유공간을 진입도로로 삼을 때도 포함된다.


제주의 마을공간은 한질(큰길)에서 갈려나온다. 한질에서 뻗어서 동네를 이어주는 거릿길, 거릿길에서 올레와 올레를 이어주는 먼올레가 나오며, 공유공간과 사유공간이 모두 포함된 올레로 나뉜다.


올레는 제주 자연이 만들어낸 산물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바람이 드센 제주이기에 올레라는 공간 건축이 가능했다. 구불구불하기에 강한 바람의 힘을 분산하고, 마당의 먼지날림과 널어놓은 곡식의 흐트러짐도 막을 수 있었다.


게다가 애초에 곧지 못한 올레는 역설적이게도 대문 없는 제주도에서 프라이버시를 지키는 효과가 있었다. 대문 없는 집을 갖추고도 프라이버시를 지킨다는 말이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올레의 능청맞은 구부러짐은 집 안을 직접 볼 수 없게끔 시선을 차단하는 효과가 있다.


올레를 얘기하려면 ‘벽’도 빼놓아서는 안되는 단어이다. 벽이란 무엇이던가. 무언가를 구분짓고, 닫히게도 하는 역할을 하는 게 벽이다. 바로 벽은 공간을 구분하는 대표적인 장치로, ‘담’이라는 표현과도 맞닿는다.


일반적인 건축에서 벽이나 담이라는 구분이 있다면 그같은 구분된 공간과 공간의 연결고리는 문이 해낸다. 이건 건축의 일반론이며, 제주의 실정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담이 공간을 확실하게 구분할 때는 눈높이에 비례할 때다. 그러나 올레에서만은 그렇지가 않다. 올레의 울담은 안을 바라보고자 하면 언제든지 가능하다. 구멍이 숭숭 뚫린 현무암으로 쌓은 울담 사이로 내부가 보일 듯 안보일 듯 다가온다. 감추려고 하지만 감춰지지 않는 속성이 올레엔 있다. 올레를 구성하는 울담에 쓰인 돌은 네모반듯하게 가공처리하지 않고 돌과 돌의 친화력을 의지 삼아 쌓아올렸다. 돌담 사이로 드문드문 보이는 풍경 때문에 올레의 돌담은 벽이면서도 담이지만 답답함을 느낄래야 느낄 수 없다.


현대 건축은 사라져가는 올레를 벤치마킹하기도 한다. 현대와 예전의 건축은 다르지만 좋은 공간에 대한 인식은 매한가지여서 그런 모양이다.


위 글은 인터파크 북DB 기사 [[올레] 열리면서도 닫힌 공간 건축의 백미]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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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칼럼니스트 김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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