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우다'와 '꾸미다'는 어울릴까. 얼핏 모순처럼 보이는 두 단어가 주거생활의 새로운 흐름으로 자리 잡고 있다. 집 안에 물건들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비워냄으로써 집을 꾸미는 이 흐름은 단순히 인테리어의 측면이 아니라 단순한 삶을 지향하는 삶의 방식에서 비롯된다. 이름 하여 미니멀 라이프다.
'최소의 삶'을 꿈꾸는 이들이 사는 집은 어떨지. 정말 아무 것도 없는 방에서 사는지 궁금하던 차에 이 책이 내게 왔다. <처음 시작하는 미니멀 라이프>(앵글북스/ 2016년).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홈스타일리스트인 선혜림 작가가 직접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하면서 시행착오를 거듭한 끝에 깨달은, 비우면서 집을 꾸미는 '깨알 같은 팁'을 담고 있는 책이다.
인터뷰 장소를 잡기 위해 통화할 때 선혜림 작가가 먼저 "어떻게 사는지도 볼 겸 집으로 오세요"라고 제안했다. 손님 한번 초대하려면 집 치울 걱정에 머리부터 아픈 기자로서는 엄두가 안 나는 일이 선혜림 작가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상처럼 느껴졌다. 미니멀 라이프여서 가능한 일인지 홈스타일리스트라는 직업 때문인지 궁금해 하며 서울 잠실로 향했다.
그가 일러준 주소는 온 동네 스카이라인을 장악한 123층 제2롯데월드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지은 지 30년이 넘은 복도형 아파트 단지가 눈에 들어왔다. 최신 기술을 장착한 고층 건물 근처에 있는, 역사를 간직한 아파트라. 그 자체가 하나의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다가왔다. 그 속에서 선혜림 작가는 어떤 이야기로 집을 채우고 있을지 궁금해 하며 초인종을 눌렀다.
선혜림 작가가 문을 열고 조심스럽게 손님을 맞았다. 예상이 빗나갔다. 세련되고 멋지게 꾸민 여성을 상상했는데 그는 화장기도 잘 느껴지지 않는 수수한 차림이었다. 디자이너, 홈스타일리스트는 그럴 거라는 선입견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집에 들어서자 화이트톤의 깔끔한 집이 기자를 반겼다. 20평쯤 되는 결코 크지 않은 집이 작게 느껴지지 않았다. 거실엔 선반 장식장과 테이블 세트, 에어컨만 달랑 놓여 있었다.
선혜림 작가와 커다란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마치 친구와 커피숍에 앉아 차 한 잔 마시는 것처럼. 선혜림 작가의 어깨 위로, 거실창으로 들어오는 햇빛이 내려앉았다. 억지로 꾸미지 않는 자연스러움이 더 아름다울 수 있음을 이 광경은 이야기하고 있었다. 말 한 마디 하지 않고도 인터뷰가 끝난 느낌. 하지만 기자에겐 이 모습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그 과정을 밝히는 과제가 아직 남아 있었다. 커피 대신 주스를 홀짝이면서, 선혜림 작가에게 미니멀 라이프를 처음 시작하게 된 계기를 물었다.
"남편과 저 둘 다 디자이너예요. 예쁜 걸 되게 좋아해요. 불편한 건 감수하더라도 시각적으로 예쁜 게 1순위죠. 그래서 첫 신혼집을 꾸밀 때 예쁘다고 생각하는 소품들을 몇 백 개씩 사서 집을 가득 채웠어요. 그런데 이게 처음에는 예뻐 보일지 모르지만 거기에 먼지도 끼고 매일 보다보면 질리더라고요. 청소도 힘들어지고. 남편과 누가 이걸 관리하는지를 두고도 많이 싸웠어요. 그런 일을 겪으면서 이렇게 사는 방식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깨달음을 얻었어요."
깨달음은 항상 결정적 순간을 동반한다. 선혜림 작가 부부에게 그 순간이 이사였다. 첫 신혼집의 전세기간이 끝나서 2015년 봄 지금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를 왔다. 이전 집보다 3평쯤 넓어졌는데 그 차이가 크게 느껴졌다. 물건이 가득 찼을 때보다 빈 공간이 있으니 훨씬 더 예뻐 보였다. 그때부터 집 안을 하나둘씩 비우기 시작했다. 마침 미니멀 라이프가 떠오를 때다. 작년에 미니멀 라이프 열풍을 일으킨 책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도 읽었다. 그 책을 읽으면서 선혜림 작가는 미니멀 라이프에 대한 자신만의 정의를 찾았다고 한다.
"그 책을 보면서 깔끔하고 좋아 보이기는 하지만 이렇게 아무 것도 없는 방에서는 못 살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렇게 살려면 있는 물건들을 다 버려야 하는데 그것도 낭비 같았고요. 남편과 우리에게 맞는 미니멀 라이프는 뭔지 많은 얘기를 나눴어요. 그래서 내린 정의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물건만으로 예쁘게 살아가는 최소한의 삶이죠."
미니멀 라이프에서도 '예쁘게'를 포기 못하는 천생 디자이너 부부다.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결정 장애를 안고 있는 기자는 '예쁘게'에 앞서 '꼭 필요한 물건만'을 골라내는 노하우가 궁금했다. 선혜림 작가는 "비움노트를 활용하세요"라고 답했다. <처음 시작하는 미니멀 라이프>에는 집 안에서 비울 물품들을 찾아내는 비움노트 사용법을 안내하고 있다. 1. 전체 공간의 사진을 출력한다. 2. 사진 속 불필요해 보이는 물건들을 찾아 과감하게 '이별' 표시를 한다. 3. 표시된 물건을 실제 공간에서 비운다.
"우리 부부도 버림을 결심하고 나서 처음부터 잘 버렸던 건 아니에요. 둘 다 시각적인 것에 예민하니 한번 사진을 찍어서 보자고 했는데 사진을 찍으니 꽉 차 보이는 부분도 보이고, 필요한 것과 아닌 것의 경중도 나눌 수 있겠더라고요. 그에 따라 '비워도 될 것', '소중한 것' 하는 식으로 분류를 했어요. 직접 이미지를 보면 버리는 것도 쉬워져요."
책에서는 '처음 시작하는 미니멀 라이프 3가지 약속'을 제시해 비움과 수납의 기준도 알려주고 있다. 1. 6개월 이상 사용하지 않은 제품은 버린다. 매일 사용하지 않는 제품은 무조건 수납한다. 2. 추억이 없는 소품은 버린다. 추억이 담긴 물건 중 5개 이하만 장식하고 모두 '추억함'에 수납한다. 3. 수납공간이 부족하다고 절대 수납공간을 추가로 만들지 않는다. 선혜림 작가는 "물건 정리를 위해 산 건 집이나 공간이 바뀌면 쓸모 없는 물건이 돼 오래 쓰지 못한다"며 3번 조항을 유념하라고 일렀다.
요즘 온라인에는 블로거들의 미니멀 라이프 실천기들이 올라오고 있다. 누구는 매일 한 개씩 버리기를, 누구는 1일차 한 개, 2일차 두 개 하는 식으로 버리는 개수 늘리기를 하면서, 버리기를 게임이나 미션처럼 가볍게 접근하면서 집 안도 가볍게 만드는 방법이다. 이처럼 미니멀 라이프가 바람처럼 불고 있는 것에 대해 선혜림 작가는 어떻게 생각할까.
"삶의 흐름이 의-식-주의 방향으로 변한다고 하잖아요. 작년까지만 해도 '쿡방'(요리방송)이나 음식에 대한 관심이 광풍처럼 불었는데 이젠 자연스럽게 집의 단계로 넘어온 것 같아요. 자기가 있는 공간의 가치를 높이 사게 된 거죠. 특히 요즘 경제나 나라도 불안정하니까 사람들이 더 가족이나 집 안의 가치를 높이는 방식을 고민하면서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하는 거죠."
그렇게 미니멀 라이프로 삶의 방식이 바뀌면 삶의 모습은 어떻게 바뀔까.
"공간이 이대로 유지되는 시간이 길어졌죠. 어지러워져도 치우는 시간이 예전에 비해 절반 이하로 줄었어요. 또 집이 안정되니까 남편과의 대화 시간도 늘어나고 삶에 집중할 수 있게 됐죠. 예전에는 물건을 사는 데만 집중하다보니 돈도 많이 썼는데, 지금은 예쁜 걸 봐도 이게 우리 집에 놓을 데가 없다는 생각이 드니까 사고 싶은 마음을 참게 돼요. 지출이 준 것도 확실히 느끼죠. 그렇게 미니멀 라이프로 우리 집의 질서를 하나둘씩 만들어가면서 지금 당장의 삶이 아니라 조금 더 먼 미래를 보게 됐어요."
먼 미래를 보면서 선혜림 작가는 직업도 바꿨다. 신혼집 셀프 인테리어를 블로그에 올린 뒤 인기를 얻었다. 부업 삼아 홈스타일링 일을 하다가 지금은 직장까지 그만두고 아예 업으로 삼고 있다. 그의 블로그 이름은 ‘레브드홈’. 프랑스어로 꿈을 뜻하는 ‘레브’와 집을 뜻하는 영어 ‘홈’을 합쳤다. 자신의 집을 꿈의 집으로 만들다가 다른 이의 집까지 꿈의 집으로 변신시키기 위해 나선 셈이다. 그가 작업하고 있는 미니멀리즘에 기초한 홈스타일링이 일반 홈스타일링과 다른 점이 궁금했다.
"홈스타일링이 페브릭(침구)이나 가구, 소품을 활용해 최소한의 시공으로 집을 돋보이게 만드는 건데요. 미니멀 홈스타일링은 거기에 더해서 그분의 라이프 스타일에 맞춰 꼭 필요한 물건만 놓아드리는 걸로 생각해주시면 돼요. 미니멀 홈스타일링을 내세우지 않을 때도, 저희 집에 소품들이 많았음에도 고객들은 필요 없는 장식품은 원하지 않더라고요. 그런 데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았는지 저도 그 집에 필요한 것 위주로 추천하게 되더라고요."
셀프 홈스타일링에 도전하는 사람들을 위한 조언도 부탁했다.
"첫 베이스가 중요해요. 벽지나 바닥, 조명을 할 때 처음에 너무 화려하거나 패턴이 많은 걸로 하면 다른 가구들과 매치할 때 되게 어렵거든요. 그런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 처음 시작할 때 단색 위주의 모노톤을 선택해서 집 안을 꾸미면 도움이 될 거예요. 또 하나 제가 늘 얘기하는 건데 조명은 예쁜 걸로 선택하세요. 조명이 집 안의 화룡정점이거든요. 그리고 가구 같은 것도 무조건 싸다고 사지 말고 집 안에 꼭 필요하고 오래 쓸 걸 구입하는 게 좀 더 미니멀에 가깝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위 글은 인터파크 북DB 기사 [비울수록 예뻐지는 ‘최소한’의 삶... 선혜림의 미니멀라이프]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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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 신정임(북DB 객원기자)
사진 : 남경호(스튜디오2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