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작가 꼬닐리오 작가 인터뷰
그러니까 나만 몰랐던 것 같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녀를 만나기 전까지, 그녀의 존재를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으니까. 음,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좀 억울한 일이다. 최근 온라인에서 주목받고 있는 그림작가 꼬닐리오에 대한 이야기다.
네이버 '그라폴리오'에서 연재 중인 꼬닐리오의 그림은 조회수만 700만. 그녀의 그림은 순수회화도 아닌, 웹툰과도 거리가 먼 '일러스트'다. 보통 일러스트라고 하면 책 속에서 조연이나 감초 역할을 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이제는 당당히 주연으로 나서며 자신의 존재감을 톡톡히 드러내고 있다. 온라인을 통해 혜성처럼 등장하며 대중들과 소통을 넓혀가는 일러스트. 그 열풍의 중심에는 소녀와 토끼 이야기로 사람들을 매료시킨 꼬닐리오가 있다.
앞으로 펼쳐질 얘기를 조금 과장해서 이렇게 정의해봐도 될까. '일러스트의 신분상승에 관한 이야기'. 일러스트는 그동안 책의 삽화 정도로만 여겨져왔다. 글을 보충해주기 위한 보조수단으로 그 고유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높은 인기를 얻으며 웹툰이나 영화, 공연 못지않게 새로운 대중문화의 축으로 떠오르고 있다. 네이버의 일러스트 플랫폼 그라폴리오에만 8000여 명의 작가가 활동하고 있을 정도. 그라폴리오에서 활동 중인 그림작가 꼬닐리오 역시 단숨에 인기작가로 부상했다.
꼬닐리오의 <그래도 너를 사랑한단다>(예담/ 2016년)는 네이버 그라폴리오에서 선보였던 동명의 연재 작품을 엮은 그림책이다. 책을 펴는 순간, 소녀와 토끼를 중심으로 따뜻하고 귀여운 느낌의 그림이 펼쳐진다. 어릴 적 누구나 한 번쯤 겪어봤을, 작지만 반짝이는 순간들에 대한 이야기다. 섬세하고 소박한 연필그림과 추억 가득한 글이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요즘 말로 치면 소녀와 토끼, 이 둘은 특유의 ‘케미’가 넘친다. 꼬닐리오라는 말 역시 이탈리아어로 ‘토끼’라는 뜻. 소녀를 주인공으로 하는 그림에 친구를 만들어주고자 그려 넣었던 것이 계기였다.
"곁에 항상 누가 있다는 건 참 좋은 일 같아요. 소녀에게 토끼가 있고, 토끼에게는 소녀가 있듯 어떤 일이 생겨도 항상 응원하고 사랑하는 존재가 있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현실의 제게 이런 존재가 있다면 저의 일란성 쌍둥이 동생이에요. 한 살만 차이 나도 서로 다름을 느낄 수 있을 텐데 저희는 쌍둥이다 보니 보통의 자매 이상으로 많은 걸 공유하거든요. 요즘에는 자주 만나지 못해서 그런지 같이 지낼 때보다 더욱 애틋해졌어요."
꼬닐리오는 현재 이탈리아에서 4년째 생활하고 있다. 대학에서 인테리어를 전공하고, 졸업 후 인턴십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 이탈리아로 떠났다. 처음으로 이탈리아 땅을 밟았던 것은 쌍둥이 동생과의 배낭여행. 이탈리아가 주는 분위기에 흠뻑 빠져들었던 꼬닐리오는 그 뒤로 이탈리아어도 제대로 익히지 않은 채 무작정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현재 그녀는 밀라노에 거주하며 국립 미술원 브레라(Accademia di belle arti)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하고 있다. 그녀가 이탈리아로 떠났던 것은 다소 무모해 보이는 모험이었다.
"하고 싶은 일을 직업으로 삼은 것 자체가 정말 행복해요. 벌이가 크지는 않지만 자부심을 느끼고 만족하고 있어요. 그래서인지 친구들의 부러움을 살 때가 많죠. 부모님께서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응원을 해주시는 편이에요. 어머니가 무조건 지지해주신다면, 아버지는 좀 더 현실적인 편에서 고민해주시죠. 쌍둥이 동생에게도 참 고마운데요. 아무래도 동생이 전공에 맞춰서 평범하게 직장 생활을 하고 있다 보니 제가 다른 길을 향해 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예전에는 그림 그린다고 하면 일단 '그림 그려서 뭐 할 거냐', '그림 그리면 얼마나 버냐'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잖아요. 그런데 요즘에는 세상이 첨단화되고 인간 사이에 소통이 줄어들면서 오히려 그림 그리는 작업이 빛을 발하는 것 같아요. 인간미가 느껴지니까요."
사실 꼬닐리오의 그림은 여타의 일러스트에 비해 화려하거나 강렬한 느낌은 없다. 웅장하거나 장엄한 느낌과도 거리가 멀다. 하지만 특유의 소박하고 정겨운, 수수하고 담백한 꼬닐리오의 그림을 좋아하는 이들이 많다. 그녀는 대학 시절에만 해도 주로 컴퓨터를 이용해 정확하고 냉철한 작업을 해왔다. 한데 자신의 그림에서 따뜻한 위로를 받는다며 좋아해주는 팬들이 생겨나면서 지금의 그림 방식을 고수하게 됐다. 아무래도 그림의 분위기가 주는 특성상 여성 팬이 많고, 그중에서도 아기 엄마들이 많다.
꼬닐리오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평소 밑 작업을 많이 해두는 편이다. 순간순간, 영감이 떠오를 때마다 수첩에 적어 놓는 것은 물론 쌍둥이 동생과도 많은 대화를 나눈다. 동생과의 이야기 끝에 어릴 적 추억이 등장하면 곧바로 그림의 소재로 이어지기도 한다. 오랫동안 일기도 써왔다. 최근에는 그림일기를 그려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리고 있다. 어릴 적의 그림일기는 아직도 소장하고 있다. 어머니의 세심한 배려 덕분이었다. 그림 속의 소녀처럼 늘 아침마다 머리를 땋아주신 것도 어머니였다고.
"어머니가 서양화를 전공하셨어요. 늘 어머니가 그림 그리시는 모습을 보면서 컸기 때문에 아무래도 영향을 받은 것 같아요. 어릴 적 강화도에서 자랐는데 시골 동네라 놀거리가 별로 없었거든요. 다행히 집에는 항상 스케치북과 물감이 있어서 자연스럽게 그림을 그리면서 놀았죠. 그래서인지 저와 동생 모두 미대를 가게 됐고요. 사실 동생은 제 그림에 대해 가장 엄격한 사람이에요. 그림을 올리기 전에 동생에게 많이 보여주는데, 굉장히 냉철하게 지적을 하죠."
위 글은 인터파크 북DB 기사 [비밀스러운 뒷모습의 소녀와 토끼... 그림작가 꼬닐리오의 세계]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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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 윤효정(북DB 객원기자)
사진 : 신동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