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인의 애인에게

by 인터파크 북DB

애인의 애인에게 못한 말

1.


"돌고래가 자살한다는 거 알아?"


그때, 라이언은 내게 그렇게 말했었다.


"포유류 중에 유일하게 자살하는 동물일 거야."


우리는 오전 8시 50분, 홍콩 침사추이의 구룡 호텔 앞에 서 있었다.


라이언의 눈은 충혈되어 있었다. 지난밤 호텔 바에서, 내가 맥주 한 병을 마시는 동안 혼자 보드카 한 병을 다 마신 흔적이 얼굴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었다. 급히 나오느라 머리는 말리지 못한 것 같았다. 아열대성 몬순기후이긴 해도 1월 홍콩 아침의 날씨는 제법 서늘했다. 라이언은 곧바로 가방에서 검정색 비니를 꺼내더니 머리에 뒤집어썼다. 홍콩에서 생활한 지 이제 3개월 된 남자의 준비물로 적당해 보였다.


하늘엔 먹구름이 가득했다. 곧 비가 쏟아진다고 해도 이상할 것 같지 않은 날씨였다.


홍콩의 1월은 습하고 축축했다. 같은 계열의 방수 재킷을 입은 일본인 단체 관광객 5명이 배낭을 멘 채 버스가 도착할 동그란 표지판 앞에 줄을 맞춰 서 있는 게 보였다. 나는 배낭 뒤에 접이식 우산을 꽂은 여자의 빨간색 배낭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캐나다인 노부부와 한국인 남자와 여자 두 명, 20대로 보이는 스웨덴 커플이 천천히 걸어오는 게 보였다.


외국에 나가면 국적을 알 수 있는 사소한 요소들을 나는 금세 알아차렸다. 유독 줄을 잘 서고 조용히 얘기하는 일본인들이라거나, 어느 스팟이든 가장 먼저 도착해 고급 사양의 DSLR 카메라를 들고 인증 사진을 찍기 바쁜 한국인이라던가, 빨간 단풍 마크가 달린 열쇠고리를 여기저기 달고 다니는 캐나다인이라던가, 스웨덴 사람 절반이 입거나 메고 다니는 하그로프스나 칸켄 배낭 같은 것들이 내 눈에 금세 포착됐다.


"버스 도착이 9시 맞죠?"


푸른 눈의 노부인이 내게 물었다.


나는 손목에 찬 시계를 가리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란타우 섬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핑크 돌고래 투어'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출장 첫날, 짐도 풀지 않고 로비에서 라이언을 기다리다가 호텔 컨시어지에 꽂혀 있던 투어프로그램의 안내서를 발견했다. 프로그램에는 '란타우 섬'이라는 곳에서 페리를 타고 한 시간 정도 바다로 나가면 세계에서 가장 희귀한 핑크색 돌고래를 볼 수 있다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핑크 돌고래는 옛날부터 홍콩에선 큰 행운을 상징한다고도 했다. 프로그램 맨 뒷장에는 '행운에 자신을 맡겨보세요!'라는 문장이 크게 적혀 있었다.


나는 '행운'이란 단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중국인들은 시내 곳곳에 있는 다양한 사원에서 새해 운세를 볼 뿐만 아니라, '포춘 쿠키' 같은 걸 만들어 식당에서 음식을 기다리는 시간에도 운명을 점친다. 홍콩에는 다양한 소원을 빌 수 있는 ‘신’들이 존재했다. 부과 건강, 행복, 심지어 글을 잘 쓸 수 있게 해주는 신까지 있었다. 소원을 빌 때 향로에 꽂는 향의 길이나 굵기도 제각각이라 한 번 불을 붙이면 한 달에서부터 1년이나 타는 향까지 있었다.


길이가 어느 정도 돼야 1년 동안 불이 꺼지지 않고 향이 타오를까?


라이언은 노호에서 멀지 않은 '맘모템플'에서 고객과 마주치는 일이 가끔 있다는 말을 하다가, 홍콩 비즈니스에 성공하려면 그들의 기저에 깔린 이런 정서를 잘 이해해야 한다는 말을 했다. 맘모템플은 삼국지의 관우를 신으로 모신다.


나는 '행운, 복' 같은 떠돌듯 부유하는 말들을 언제나 '노력, 의지' 같은 단백질 가득한 말들로 치환시키며 살았다. 사원이나 기도는 그러므로 내 성향과 전혀 맞지 않았다. 충동적으로 관광 투어 프로그램의 신청란에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는 것 역시 평소 생활과는 거리가 멀었다. 설혹 섬까지 들어간다고 해도 핑크 돌고래를 볼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돌고래 투어의 성패 여부는 날씨였다. 하지만 날씨가 좋다고 해서 변덕스런 돌고래들이 꼭 바다 위로 출몰하는 것도 아니었다. 밴쿠버의 빅토리아 섬으로 가는 대형 페리에서 나는 이미 돌고래들의 예민한 성향에 대해 들었다.


"아마…… 볼 수 없을 거야."


이런 쪽으로 나는 늘 운이 없는 편이었다. 나는 투어 안내서를 보다가 프로그램 카탈로그를 안내 데스크 옆에 다시 끼워 놓았다.


"약간의 운이 필요하긴 하죠."


그때, 호텔의 컨시어지 직원과 눈이 마주쳤다. Sam Chang. 오른쪽 가슴에는 그의 이름표가 붙어 있었다.


위 글은 인터파크 북DB 기사 [애인의 애인에게]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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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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