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인의 애인에게

by 인터파크 북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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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는 그가 읽다 만 책들을 찾아 읽었다. 그가 밑줄을 친 곳은 두 번 더 읽었고, 그가 모퉁이를 접어놓은 곳의 글은 노트에 필기했다. 밤에는 그녀가 뜨다 만 스웨터를 떴다. 오후 두 시에 의자에 앉아 서울의 심야 라디오 방송을 연결해 듣기도 했다. 뜨개질이 잘 되는 날에는 낮밤이 바뀌었고, 그런 날엔 낮에 읽던 책들의 구절이 밤에 짜다 만 뜨개질 위에 노곤한 잠처럼 꾸벅꾸벅 쏟아져 내렸다.


뜨개질을 하다가 메이에게 전화가 오면, 그녀가 만나고 있는 대만인 남자친구에 대해 들었다. 굽다가 실패한 레드벨벳 치즈 케이크 얘기도 들었고, 오븐에 구울 수 있는 100가지쯤 되는 파이 얘길 듣는 중간에 메이의 사촌언니 소식도 들었다. 수영이 내년 봄이면 남편을 따라 대만의 한 미술대학에서 강의를 맡게 될 것이란 얘기였다.

12월 셋째 주, 윌리엄스버그의 밤은 조금씩 길어졌다.



나는 점점 더 많은 시간을 뜨개질하며 보냈다. 새로 뜬 디자인 도안을 바라보다가 맥주를 마셨고 의자에 앉아 짧게 잠들었다. 아침이면 Cage free 달걀을 삶았고, 저녁이면 그것을 두 개씩 먹었다. 쌉쌀한 브루클린 맥주가 목을 적실 때마다 그녀를 생각했다. 잠이 오지 않는 밤, 그녀가 스웨터를 뜨면서 떠올렸을 그의 뒷모습을 그렸다.


나는 헤어질 것 같은 오래된 연인들을 생각했다. 코와 코 사이에 털실을 끼워 넣으며 혼자서 누군가를 좋아하는 일에 대해 생각했다. 사람들은 짝사랑이 한 사람을 혼자서 좋아하는 일이고, 그렇기 때문에 어떤 결과 없이 허망하게 사라져 버린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게 아니다. 짝사랑은 '너는 누구인가'라는 진지한 질문이지만 그것은 자신을 혼란스럽게 만들지 않는다. '너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그렇다면 나는 누구여야 하는가'라는 잘못된 질문으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마음을 얻기 위해 소요되는 혼란이 이 적요한 사랑 앞에선 어느덧 무의미해진다.



핸드폰 배터리는 메이와 짧은 통화를 할 수 있을 만큼만 충전되어 있었다. 핸드폰을 켜면 그제야 부재 중 전화를 확인할 수 있었다. 서울에서 온 세 통의 부재 전화 중, 두 통은 전남편의 번호였다. 그의 번호를 아직 기억하고 있다는 게 놀라웠다.



스웨터를 짜다가 창밖을 내려다보며 시간을 헤아렸다. 건너편 창틀에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여전히 길가를 내다보고 있었다. 나는 그 누구의 사랑도 이어지지 않는 저녁 속에 앉아 있었다. 그런 것들이 더 이상 서글프지 않았다. 누구도 기억하지 않기 때문에 누구도 상처받지 않는 것이란 점에서 짝사랑은 선한 인간들이 선택하는 자학이며 자책이니까.



스웨터를 다 뜨려면 두꺼운 털실처럼 밤이 더 길어져야했다. 나도 모르게 그들을 위해 몇 년 동안 밤잠을 아껴둔 것처럼 졸리지 않았다. 배가 고프지도 않았다.



"삶은 달걀과 맥주라고? 뭐야! 탄수화물과 단백질의 균형식이었잖아."



맥주가 보리빵이라고 믿는 메이에겐 맥주는 알코올이 아니라 변형된 탄수화물이었다.



"일주일 후면 돌아오는 거야? 네가 그리워."



나는 이제 그립다는 말이 자신의 이야길 들어줄 귀가 필요하다는 말로 이해한다. 메이에게 크리스마스 저녁을 그녀와 그녀의 대만 남자친구와 함께 먹겠다고 약속했다. 메이는 전화를 끊기 직전, 돌아오면 브루클린 라거를 원 없이 마시자고 말하곤 했다.



스웨터는 그들이 돌아오기로 한 전날, 아침에 완성되었다. 완성된 스웨터를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나는 그것을 그녀의 옷걸이에 걸어 두었다. 분홍색 하트와 작은 리본이 달린 스웨터를 내 몸에 대보았다. 피식, 웃음이 났다. 난롯가에 앉아 엄마가 겨울 내내 짜주었을 법한 예쁜 스웨터였다.



그와 나는 2주에 한 번 같은 강의실 안에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한 번도 함께인 적이 없었다. 그녀와 나는 서로의 얼굴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스웨터를 짜는 동안 씨실과 날실처럼 시간의 조직들이 그들과 나를 단단히 엮어 매듭짓고 있었다. 스스로 커다란 스웨터가 되어 누군가의 어깨를 감싸 안는 기분이었다.



나는 옷걸이에서 스웨터를 꺼내 침대 위에 가지런히 내려놓았다. 내가 이 집에서 해야 할 일이 있었다면, 그건 그녀가 놓고 간 이 스웨터를 원래의 주인에게 온전히 되돌려주는 것이었다. 한때 그의 몸이었을 실을 풀어, 그녀의 몸에 다시 입혀주는 일이었다. 나는 왼쪽 가슴에 예쁜 하트가 그려진 여자 스웨터를 바라보았다. 스웨터를 입는 대신 스웨터 사진을 찍었다.



그날, 슈퍼에 들러 냉장고에 브루클린 라거를 채워 넣어두었다. 내가 빌린 맥주의 숫자를 세어보니 모두 11병이었다. 흰색 달걀도 숫자를 맞춰 넣었다. 집 안의 먼지도 깨끗이 청소했다. 창틀에 묶어 놓은 리본도 원래의 매듭으로 묶었다. 잠시 빌렸던 컵과 식기들도 형태와 색깔대로 찬장 안에 넣어 두었다. 이 집에 들어서기 전, 내가 보았던 원래의 풍경이 내 눈앞에 놓여 있었다.



마지막으로 그가 책에 밑줄 친 문장을 적어놓았던 노트를 태웠다. 나는 웅크리고 앉아 불붙은 종이가 까만 재로 흔적 없이 사라지는 걸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가 ??순수 박물관?? 앞장에 적어놓은 쉼보르스카의 '끝과 시작'의 첫 구절과 마지막 구절만은 쉽게 잊혀지지 않았다. "지나간 옛 사랑이여, 새로운 사랑을 첫사랑으로 착각한 점 뉘우치노라. 먼 나라에서 일어난 전쟁이여, 태연하게 집으로 꽃을 사 들고 가는 나를 부디 용서하라." 그 시의 마지막 구절은 "모든 전쟁이 끝날 때마다 누군가는 청소를 해야 하리"였다. 나는 마지막으로 책상 옆에 있던 그들의 휴지통을 깨끗이 비웠다.



스웨터를 뜨고 있는 동안, 메이가 수영이 서울로 돌아가는 걸 기뻐한다는 얘길 전해주었을 때, 나는 한 번도 그녀가 뉴욕에 살지 않았다는 걸 직감했다. 그녀는 잠시 뉴욕에 체류한 것뿐이었다. 서울은 그녀에게 언제든 '돌아가야 할 곳'이었고, 그녀의 정신적 고향이었다. 하지만 그에게 그것은 '뉴욕을 떠난다'라는 말로밖엔 설명할 수 없는 충격적인 사건이었을 것이다. '돌아가는 것'과 '떠나는 것'이 이토록 다른 것이라면, 그것은 서울과 뉴욕 사이에 생긴 14시간의 시차만큼 돌연한 것이었을 것이다.



나는 지하철에서 그가 ??순수 박물관??을 읽으며 흘렸던 눈물을 떠올렸다. 그는 어떤 장면에서 그렇게 눈물이 났던 걸까. 침대 위에 놓인 스웨터를 바라보았다. 스웨터를 입고 편안하게 침대 위에 앉아 있을 그 여자가 떠올랐다. 스웨터를 들어 올려 가슴에 꼭 안았다. 내 어깨 위에 올려진 스웨터의 팔을 토닥거리자 이상하게 눈물이 났다. 나는 그에게 작별의 편지를 쓰듯 중얼거렸다.



나는 당신의 집을 떠나는 게 아니에요.


나는 이제 나의 집으로 돌아갑니다.


크리스마스이브 오전이었다.


브루클린에 늦은 첫눈이 내렸다.



위 글은 인터파크 북DB 기사 [애인의 애인에게]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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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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