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라이언은 <소림 축구>의 주성치처럼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일찍 일을 시키고 싶었겠지'라고 말한다고 해도 라이언 스틸은 나를 조금도 비난하지 않았을 거다.
"라이언! 잘 지냈어요?"
나는 그에게 악수하듯 손을 내밀었다. 라이언은 두 손에 들고 있던 백장미 대신, 내게 서류 뭉치를 건네주며 말했다.
"자기가 지금부터 읽고 검토해야 될 서류! 3개월이 꼭 3년 같더라!"
그가 활짝 웃었다.
"장 마리, 홍콩에 온 걸 환영해!"
그는 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내가 꼭 메시라도 된 것 같네요."
"당신이야 늘 내 메시아지! 마리, 일단 7시까지 미드레벨 근처까지 가야 돼. 퇴근 시간에 홍콩 시내는 주차장이니까 택시를 타고 미리 움직이자. 별명이 '백장미'인 아주 사납고 까탈스러운 여자를 만나야 하니까 잘 준비해줘."
나는 1시간 동안 짐을 풀고, 메이크업을 새로 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회사는 홍콩 센트럴 페더 건물 안에 갤러리를 입주시킬 예정이었다. 몇 년 전부터, ‘가고시안’과 ‘리먼 머피’ 같은 갤러리들이 이곳으로 들어올 것이란 소문이 돌았다. 세계에서 가장 ‘돈’ 냄새를 잘 맡는 부류들이 홍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라이언은 해외 교두보가 될 홍콩 시장을 총괄 지휘하기 위해 직접 이곳에 들어왔다. 물론 그의 새 애인이 홍콩 출신의 국제변호사란 소문이 더 우세했지만 말이다.
홍콩은 주류와 예술품에 대한 세금이 이미 폐지되었고, 해외 기업들을 유치하기 위해 법을 개정하는 전투력을 발휘해 왔다. 전 세계 어디를 가든 6시간 이내로 이동할 수 있는 지리적 장점도 있었다. 무엇보다 홍콩은 중국인들의 출입과 언어가 자유롭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시장이었다.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큰 예술품 시장이었고, 자국의 경제력을 바탕으로 많은 현대 작가들을 배출하고 있었다. 중국의 부자들은 엄청난 가격을 지불하고 자국 작가들의 작품을 닥치는 대로 사들였다. 세계의 돈이 아시아로 몰려들고 있었다. 홍콩에 자리 잡은 크리스티와 소더비 같은 대형 경매 회사들이 그걸 모를 리 없었다.
홍콩에 도착한 날부터 나는 하루도 쉬지 못했다. 완차이의 고급 프랑스 식당에서, 레이디 가가의 '포커 페이스'가 흐르는 소호의 쥬스바에서, 미드레벨 옆 허름한 얌차 가게 안에서 15센티미터 마놀로 블라닉을 신고 연유를 듬뿍 넣은 라이차를 마시며, 나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샤토 마고 같은 와인을 생수처럼 주문하는 싱가폴 콜렉터와 중국 시장을 좌지우지한다는 몇몇 큐레이터, 홍콩과 싱가폴에 전혀 다른 스타일의 레스토랑 일곱 개를 소유하고 있다는 프랑스인을 만나기도 했다. 모두 라이언과 함께였고, 업무의 연장이었다.
그러니까 이 '핑크 돌고래 투어'가 내가 홍콩에서 처음 갖게 된 업무 외 자유 시간이었다. 만약 라이언이 예정보다 1시간 일찍 호텔에 도착하지 않았다면, 지금 이 투어 버스엔 나 혼자 타고 있었을 것이다. 백발 남자의 말대로 슈퍼문이 뜬 신비로운 하늘 아래에서 말이다. "여기 온 후로 5시간 이상을 잔 적이 없는 것 같아."
라이언은 피곤해 보였다.
우리는 버스의 맨 뒷좌석에 앉아 있었다. 가이드가 투어에 참가하는 사람들을 위해 튜나 샌드위치와 오렌지주스를 나누어 주었다. 버스는 이제 막 홍콩의 거미줄처럼 복잡한 도심을 통과하고 있었다. 샌드위치를 먹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교통 혼잡 때문에 거의 움직이지 않던 버스가 고속도로로 진입해 달리자, 조금씩 날씨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하늘의 먹구름이 하나 둘 사라지더니, 곧 햇빛이 창문 쪽으로 비스듬히 스며들었다. 손가락을 창문 커튼 쪽으로 기울이자 길고 가는 그림자가 나비같이 날아들었다. 손바닥을 부드럽게 펴서 구부리자 꼭 악어의 입 같은 그림자가 만들어졌다.
"피터라는 이름의 큰 돌고래가 있었어."
라이언이 나를 바라보았다.
위 글은 인터파크 북DB 기사 [애인의 애인에게]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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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영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