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중단됐던 얘기를 계속 하려는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라이언은 지금 핑크색 돌고래 투어에 가장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버스에 탄 여행객들 모두가 세계에서 가장 희귀하고 아름다운 핑크색 돌고래를 보겠다는 열망으로 똘똘 뭉쳐 있을 때, 돌고래의 자살을 얘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내가 만든 그림자에 짓궂은 장난을 치는 어린아이처럼 자신의 손을 포갰다. 악어는 사라졌고, 기이하게 돌고래와 비슷해진 그림자가 버스 앞좌석 앞에 나타났다.
"피터는 1965년 버진 제도에서 몇 개월 동안 영어를 배우는 대형 프로젝트에 투입됐었대. 그때 피터를 훈련했던 여자가 있었는데, 그 여자의 이름이 마가릿 하우 러밧이야. 그녀는 동물학자였지. 하지만 이 프로젝트는 얼마 못 가서 중단되고 말아. 프로젝트 중간에 자금 지원이 끊겨버리거든. 워낙 많은 돈이 들어가는 프로젝트였으니까. 그렇게 피터는 마가릿과 헤어지게 돼. 그리고 마이애미의 거대한 물탱크로 돌아갔지. 피터는 그곳에서 깊은 우울증에 빠져. 피터는 잘 먹지 못했어. 마가릿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지. 평소 활동적이었던 피터는 물탱크 속에서 거의 움직이지 않았대. 방문을 닫고, 침대 위에 누워 꼼짝도 하지 않는 히키코모리처럼 말이야. 그러던 어느 날에 피터는 스스로 숨 쉬기를 거부했어. 명백한 자살이었지. 피터는 그렇게 종을 초월하는 사랑 때문에 목숨을 끊은 돌고래가 됐지."
라이언은 말을 멈추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이 비극적인 스토리에서 가장 기묘한 부분이 여기에 숨겨져 있어. 이 프로젝트를 담당했던 사람은 미국 나사(NASA)의 한 신경학자였는데, 그는 마가릿과 친밀한 시간이 길어질수록 피터가 영어를 배우는 데 관심이 없어진다는 걸 알게 됐어. 피터는 점점 훈련을 거부하기 시작했거든. 그래서 그들은 피터를 프로젝트에 몰두하게 만들기 위해 방법을 고안해내야만 했어. 피터를 훈련 중인 마가릿에게 완벽히 굴복시킬 수 있는 방법 말이야. 프로젝트의 성패는 마가릿이 피터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컨트롤하고 그에게 영어를 가르칠 수 있느냐는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녀가 쓴 방법은 상상을 뛰어넘었어."
라이언은 말없이 창밖을 바라봤다. 하려던 말을 일부러 멈춘 것이다. 라이언 스틸은 언제나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만드는 재능이 있었다. 그는 이야기의 쉼표가 어디에 찍혀야 하며, 마침표는 어디에 놓여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대화 중 효과적으로 침묵을 사용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능통했다.
"무슨 방법이었어요?"
나는 라이언을 바라보며 물었다.
"잠시 생각해볼 시간을 줄게. 어떤 방법이었을지 천천히 상상해봐."
라이언이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사람을 바라볼 때, 그는 단 한 번도 눈을 깜빡이지 않았다. 매일 수백 번씩 같은 동작을 연습이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그는 내 어깨에 아주 잠시, 자신의 손을 내려놓았다가 사뿐히 거두었다.
라이언 스틸은 특별한 사교술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의 80퍼센트는 그가 가지고 태어난 유전자 때문이었다. 미스 체코 출신의 어머니는 자신의 막내아들에게 곱슬거리는 금발의 머리카락과 신비로운 회색 눈동자를 선물했다. 그는 사람들에게 친절했지만 헤프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 낮고 강한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라이언은 여자들과의 스캔들로도 유명했다. 릴리의 경고대로 '스틸의 여자들'이라는 소문이 사실일 가능성은 점점 더 높아졌다. 사람들은 잘생긴 이 금발의 호색한에게 늘 호의적이었다. 더구나 그가 '올로프 팔메상'을 받았던 안나 폴릿콥스카야의 애인이었다는 믿기 힘든 소문은 그를 더 비밀스럽게 만들었다. 온갖 이익 단체와 테러리스트들로부터 살해 위협에 시달렸던 러시아 출신 여기자의 숨겨진 정부가 라이언이라는 말은 내가 들었던 어떤 농담보다 우스웠다. 국제 엠네스티나 아웅산 수치 같은 세계적인 인권 운동가들에게 주어지는 올로프 팔메상과 탐욕스러운 뉴욕 미술계의 진공청소기 라이언 스틸은 가장 극적으로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다. 하지만 믿기 힘든 그 소문이 그를 더 매력적인 남자로 만든 건 사실이다. 특히 호기심 왕성한 사교계의 여자들에게는!
"그래서, 그 방법이 뭐였죠? 어서 말해 봐요."
그의 목소리가 그리 크지 않았는데도, 캐나다 부부가 어느새 고개를 돌리고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다음 이야기가 정말 궁금하네요. 이 나이쯤 되면 기다릴 시간이 별로 없답니다."
백발의 노부인은 창백하게 푸른색 눈을 반짝이며 라이언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른 아침부터 서둘러 나오느라 아침잠이 부족했던 일본인 관광객의 코고는 소리가 버스 안으로 조금씩 밀려 들어왔다. 라이언은 쉽게 이야기를 시작하지 않았다. 그는 조금 더 나른하게 한숨을 쉬더니 창밖을 바라보았다.
"마가릿 하우 러밧은 피터의 자위행위를 도와줬어."
라이언은 나를 바라봤다.
"그녀는 암묵적인 피터의 섹스 파트너였지."
햇볕이 그의 얼굴에 깊은 음영을 만들었다.
갑자기 노부인이 울기 시작했다.
위 글은 인터파크 북DB 기사 [애인의 애인에게]의 일부입니다.
☞ 전문보기
by 백영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