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그해 겨울, 너는 에스프레소 잔에 각설탕 하나를 녹이며 중얼거렸다. 너는 설탕 조각이 녹아 사라질 때까지 작은 스푼을 시계 방향으로 천천히 돌렸다.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그때 네 눈은 설탕이 아니라 건너편 그랜드 스트리트 쪽으로 지나가던 낡은 자전거 한 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자전거는 금방이라도 눈길에 미끄러져 넘어질 것같이 위태로워 보였지만 균형을 잡고 빠르게 브루클린의 거리를 질주하고 있었다.
"매년 1월에 분명 첫눈이 내렸을 텐데 사람들은 왜 그때의 눈은 까맣게 잊은 것처럼 지금 내리는 눈을 첫눈이라 말하는 걸까? 난 늘 그게 이상했어요."
우리는 윌리엄스버그의 카페를 나와, 너의 표현대로라면 보통의 사람들이 '첫눈'이라고 말하는 그 눈을 맞기로 했다. 눈이 오는 거리는 춥지 않았다. 거대한 담요처럼 거리를 감싸고 있는 흰 눈을 밟았다. 우리는 Graham 역까지 걸었다. 그때, 너의 손에는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가 들려 있었다. 표지가 조금 찢어지고, 밑줄이 그어져 있는 30퍼센트 세일 마크가 그대로 찍힌 헌책이었다. 들고 다니기에는 무거운 책이었지만 너는 얇은 문고본을 들고 서 있는 것처럼 가뿐히 그것을 들고 있었다.
우리는 건널목 앞에 서서 신호등이 바뀌길 기다렸다. 눈발이 조금씩 굵어지고 있었다. 눈은 이제 사선으로 빗발치지 않고 자로 잰 듯 수직 낙하하며 곧바로 떨어졌다. 나는 건너편에서 갈색 코기 네 마리를 동시에 산책시키는 남자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럼 첫눈은 일 년에 두 번씩 내리는 거였네."
지나가는 차 소리 때문인지 너는 내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길 사이에 만들어진 깊은 웅덩이를 밟고 검정색 폭스바겐 한 대가 빠른 속도로 지나갔다. 함박눈이었다가 소낙눈이 되어 생긴 길가의 구정물이 우리 쪽으로 크게 튀어올랐다. 갑자기 네가 내 어깨를 반대 방향으로 돌려세웠다. 넘어지려는 순간 내 몸을 자신 쪽으로 돌려세운 탓에 너의 검정색 외투와 바지는 흙탕물에 젖었다. 벌어진 외투 사이 얇은 티셔츠에 너의 온기가 느껴졌다. 나는 고개를 젖혀 너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당신, 손이 참 따뜻하네요. 여자들은 대부분 손이 차던데. 특히 겨울에는……."
네 코트에 걸려 있던 단추 하나가 내 왼쪽 뺨에 와 닿았다. 네 손이 그 금속 단추보다 더 차갑게 느껴졌다. 여전히 손을 잡은 채 너는 나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너는 가지런한 이를 보이며 웃고 있었다. 시간이 정지한 것처럼 갑자기 눈이 멈추었다. 차양처럼 긴 너의 속눈썹 위에는 작은 눈 알갱이가 묻어 있었다.
"당신이라고 부르는 거, 이제 그만하면 안돼요? 내 이름, 성주인데. 조성주."
문득,
따뜻한 내 손이
싫어졌다.
위 글은 인터파크 북DB 기사 [애인의 애인에게]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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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영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