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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Dec 15. 2016

[밭담] 지극히 현실적인 행동의 결과물

제주는 그런 곳이 아니야

                          


인간은 죽음을 통해서 삶의 방식을 발견했다. 가장 기초적 건축술인 쌓기를 통해서였다. 아이러니이긴 하지만 죽은 자의 영혼을 영원히 간직해 두기 위해 우리네 먼 조상들은 돌 쌓기에 매달리며 건축을 배워갔다. 그런 결과물은 앞에서 얘기한 산담이다.


그토록 죽음에 매달린 이유는 어느 시인의 말처럼 죽음은 마침표가 아니라 영원한 쉼표였기에, 돌을 쌓으며 무덤을 만들며 삶의 방식을 체득했으리라.


산담이 죽음을 표현한 극치라면, 밭과 밭 사이의 경계를 나누는 밭담은 현실의 삶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그야말로 지극히 현실적인 행동의 결과물이다.


산담과 밭담. 각각의 생존방식은 다르다. 산담은 무덤방식의 변화로, 수많은 사자들을 채울 공간부족으로, 자리를 잃고 있다. 그와 달리 흔하게 널린 밭담은 제주에 밭이 있는 한 영원한 삶을 이어갈 유산으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세계중요농업유산이 된 것도 그와 무관하지 않다.


돌이 많은 곳, 바람이 많은 곳엔 으레 밭담이 존재한다. 밭담은 제주의 어느 곳을 가든지 만날 수 있는 풍경이다. 밭담의 생명은 얼마나 될까. 역사는 이렇게 얘기하고 있다. <탐라지>에서는 13세기 당시 제주판관으로 부임한 김구가 돌을 이용해 밭의 경계를 표시하려고 밭담을 쌓았다고 전한다. 그건 지배를 위해, 지배계층이 그들의 영역을 표시하기 위한 방책이었으리라. 때문에 제주판관 김구 이전에도 밭담은 있어왔던 것이다.
 



더욱이 제주는 돌이 널려 있다. 밭을 일구다보면 나오는 건 돌이다. 캐도 캐도 나오는 게 돌이다. 캐낸 돌은 밭 중심에 놓일 리 없다. 밭가에 놓이게 되고, 자연스레 밭담이 된다. 지배층인 김구는 그런 밭담에 대한 명확한 경계를 해줬다는 게 더 정확한 해석이라 본다. 때문에 제주는 아주 오래전부터 밭담을 둘러 농사를 지었을 것이다.


밭담은 사람의 손이 덜 가해진다. 올레를 형성하는 담들이야 일부러 다듬어 얼기설기 뒤얽히게 만들지만 밭담은 눈에 보이는 돌을 그냥 그대로 이용한다. 제주시 내도에 있는 밭담은 주위에 있는 돌을 그대로 이용했음을 또렷이 보여준다. 둥근 돌 위에 다시 둥근 돌을 올린다. 두 겹이라면 안정감이 있을텐데, 한 겹으로 어린애 키의 갑절만큼 쌓는 일은 여간한 기술이 아니면 안 될 듯싶다. 그것도 끝 간 데 모르고 이어진다. 중국의 만리장성을 ‘황룡만리(黃龍萬里)’라고 한다면, 검은 돌로 끝없이 쌓인 돌담은 '흑룡만리(黑龍萬里)'라 부를 만하다.


위 글은 인터파크 북DB 기사 [[밭담] 지극히 현실적인 행동의 결과물]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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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칼럼니스트 김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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