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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Dec 22. 2016

[산담] 죽음마저도 예술로 만든 제주인

제주는 그런 곳이 아니야

                 


제주인은 돌에서 태어나 돌 속에 묻힌다. 현재 제주를 사는 우리들에게는 그다지 다가오지 않는 이야기이지만 30~40년 전까지는 그러했다. 제주는 온통 돌 세상이었다. 큰 돌을 괴어두고 그 위에 차근차근 정성을 다해 쌓은 골목길(우린 '올레'라 부른다)을 따라 가면, 돌이라는 주제로 만들어진 우리네 집이 존재한다. 우린 거기서 태어났다.

그런 제주인은 죽어서도 돌에 갇힌다. 오름 주변에, 밭 한가운데에 돌로 담을 두른 무덤이 바로 우리가 죽어서 살아야할 공간이다.


무덤을 만드는 제주인들은 무덤을 단순한 봉분으로 여기지 않았다. 무덤을 만들며 '산을 쓴다'고 표현할 정도로, 죽음은 큰 사건이었다. 그 무덤을 두른 돌담은 그래서 '산담'이라 부른다. 산담은 흔히 네모난 장방형이나 사다리꼴 형태를 띤다. 밭담이나 올렛담은 돌을 하나씩 위로만 쌓는 외겹 형태이지만, 산담은 4~5겹을 두른다.



죽는다는 것, '죽는다'는 그 말에 우린 으레 '결별'이라는 단어를 떠올린다. 그래, 죽으면 세상과의 결별이다. 우리는 그렇게 결별을 꺼내지만 산담을 그렇지 않다. 산담은 죽은 자와 산 자간의 결별을 말하지 않는다. 죽은 자의 흔적을 완전히 없앤 곳이 아니라는 뜻이다.


산담은 형태만 잘 읽으면 비(碑)가 없더라도 죽은 자의 모습을 찾게 된다. 죽었지만 죽지 않는 이가 있다. 결별이 아닌, 죽은 자와의 만남을 가지게 된다. 바로 산담엔 죽은 자의 출입문이 나 있다. 출입문은 남녀에 따라 위치가 다르다. 남자인 경우는 왼쪽에, 여자는 오른쪽에 출입문을 만들어뒀다. 출입문 위에는 판석을 서까래처럼 얹혀 마치 죽은 자가 자신의 집인 무덤을 드나들도록 배려했다. 출입문이 없는 곳은 발을 디딜 수 있는 계단을 만들어두기도 한다. 그 출입문은 삶과 죽음은 서로 떨어질 수 없다는 제주인 특유의 내세관이다.


그런 산담을 이젠 예술작품이라 칭한다. 산담의 꼭짓점을 잘 보라. 네 꼭짓점의 끝점으로 갈수록 솟아올라 있다. 기와집 처마 끝이 부드럽게 치켜 올라간 모습을 닮았다. 유홍준 교수는 "20세기 최고의 설치미술가인 크리스토도 제주의 산담 앞에서는 오금을 펴지 못할 것이다"라고 했다. 죽음이 예술이 될 줄이야.

문화란 죽음을 인식한 삶이다. '나도 저렇게 묻혀야 할텐데….'라 생각하며 우리 조상들은 산담을 둘렀던 것이다. 그것도 정성스레. 바로 죽음이 예술이 될 수 있었던 이유다.


※ 본 연재는 <제주는 그런 곳이 아니야>(김형훈/ 나무발전소/ 2016년) 내용 가운데 일부입니다. 


위 글은 인터파크 북DB 기사 [[산담] 죽음마저도 예술로 만든 제주인]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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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칼럼니스트 김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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