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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Jan 02. 2017

자기반성 - 도요타 문제 해결 능력의 근원

왜 다시 도요타인가

                            

일본의 메모리반도체산업은 1980년대까지 세계 최고였다. 그러나 이후 한국 등에 자리를 내주면서 급격히 몰락했다. 그 원인에 대해 <일본 반도체 패전>의 저자인 유노가미 다카시(湯之上隆)는 이렇게 말했다.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제일 먼저 병이 들었음을 자각할 필요가 있다. '일본이 기술에서는 지지 않았다'는 식의 변명만 하는 동안에는 병이 나을 수 없다. 두 번째로, 병을 자각했다면 병을 고치려고 하는 강한 각오가 필요하다. 자신에게 병을 고치려는 결의가 없으면 병은 결코 낫지 않는다. 단지 연명 처치를 하고 문제를 유보하는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리 뛰어난 기술과 인력과 공장과 기계를 보유한 회사도 위기에 대해 스스로 '소울 서칭'을 하고 거기에서 해결책을 찾지 못한다면, 모든 것이 사상누각일 수 있다는 뜻이다. 도요타의 가장 큰 강점은 바로 이런 소울 서칭, 즉 자기반성 능력, 그리고 반성을 통해 문제를 확실하게 개선하는 실행력이라고 할 수 있다.

2009년 취임한 아키오 사장은 그해 말 터진 리콜 사태 이후 재발을 막기 위해 조직체계를 크게 바꿨다. 리콜 사태가 커진 데에는 조직체계에도 원인이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업무 담당과 지역 담당 등 책임자가 여러 갈래로 나뉘어 있었고, 그 탓에 현장 보고가 상층부로 전달되는 과정에서 정보가 왜곡되고 속도가 늦어졌다는 분석이다. 아키오 사장은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하고 본사의 품질본부에서 모든 결정을 하는 본사 통합 체제를 만들었다. 또 홍보팀도 사장 직속으로 바꿨다. 

고객과의 커뮤니케이션 상황이 곧바로 최고 경영진에게 전달되어, 이 정보를 바탕으로 최고 경영진이 직접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했다. 대량 리콜 사건 때 '기술적 문제가 없다'는 엔지니어들 말만 믿고 대응을 미뤘다가 사태를 키웠는데, 그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또 아키오는 리콜 사태를 통해 잘잘못을 따지는 것보다 고객의 마음을 거스르지 않는 일이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후 도요타에서는 문제가 터지면 선제 대응과 고객 사과가 최우선시됐다.

2011년 일본 대지진 이후 부품 공급망의 문제점도 개선했다. 대지진과 같은 천재지변이 일어날 경우 부품 공급망 어디에서 차질이 빚어지는지 재빨리 파악한 뒤, 늦어도 2주 안에 다른 지역으로 부품 생산기반을 옮겨 공급을 재개하도록 하는 백업 시스템을 완비했다.

도요타가 컴퍼니제 조직 개편을 하면서 의사결정의 속도도 훨씬 빨라졌다. 차량개발의 대부분은 각 컴퍼니 사장이 곧바로 결정했다. 또 의사결정에 관계된 이들이 대부분 한 회사 내에 집중돼 있기 때문에 실시간·원스톱 의사결정이 가능해졌다. 그동안 빠른 의사결정은 한국 기업의 장점으로 꼽혀왔는데, 최근에는 오히려 도요타 쪽의 속도가 더 빨라진 듯하다.

일본 자동차산업의 최고 분석가 중 한 명인 도쿄대 대학원 후지모토 다카히로 교수가 도요타의 자기반성 능력에 대해 설명한 내용도 흥미롭다. 다음은 필자가 일본 도쿄대에서 후지모토 교수를 인터뷰해 정리한 내용이다. 

― 도요타가 조직 개편으로 제2의 창업에 나섰다. 도요타가 아키오 사장 취임 전과 전혀 다른 회사가 된 것 같은데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도요타에는 진화하는 능력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언제나 진보한다'는 그런 멋진 뜻이 전혀 아니다. 결과적으로 '생존한다'는 뜻이다. 도요타가 이렇게 했다, 그래서 이렇게 성공했다 같은 얘기를 할 수 있으면 아주 멋있겠지만 그런 게 아니다. 현대자동차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도요타나 현대차의 성공 스토리만 보면 멋져 보이겠지만, 실제로는 실패가 엄청나게 많이 있었다. 역으로, 의도하지도 계획하지도 않았지만 잘된 경우도 있었다." 

― 지금까지의 현대차가 바로 그렇지 않은가?  

"그렇다. 현대차는 계획대로 된 게 많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도 많다. 예를 들어 노조가 너무 강경해 국내 공장의 생산성을 높이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자 부품 자회사인 현대모비스를 통해 (밖에서 이미 완성된 부품 덩어리를 공장 라인으로 옮겨 조립하는) 모듈화를 추진했는데, 이것이 결과적으로는 좋았다든지 하는 식이다. 그런 일은 현대차에도 있고 도요타에도 있다. 그것을 전부 합쳐 마지막 단계에서 보면 조금씩 발전하고 있다는 그런 얘기다. 

도요타에서 품질 문제가 커지는 대실패가 있었다. 그러나 사태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노력하고 지혜를 모았다. 리콜이 처음 터졌을 때는 대실패·대반성이었지만, 불과 반년쯤 지난 다음에는 이 문제가 쑥 들어갔을 정도로 해결이 되었다. 그런 일 처리 방식을 보면 도요타가 아주 뛰어나다고 할 수 있다. 위기의 과정을 통해 배우는 능력이 매우 탁월하다고 생각한다. 문제가 끝난 다음에는 뭔가 배워서 좀더 앞으로 나간다. 뭐가 터지더라도 거기에서 학습한다는 것이 도요타의 장기다."

― 도요타의 독자적 기업 문화 때문인가?  

"예전에 <생산 시스템의 진화론>을 썼는데 그 얘기를 다뤘다. 결론은 '뭔지 잘 모르겠다'이다(웃음). 일본말로 '고코로가마에(心構え)', 즉 마음가짐에 달려 있다는 것이었다. 어쨌든 다른 회사들은 신경 쓰지 않는 부분까지 세심하게 신경 쓴다든지, '어떤 일이 일어나도 거기에서 배워서 좀더 힘이 붙는다'는 식의 진화를 한다. 왜 그게 가능한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도요타에는 그런 능력이 있다. 

대실패도 있고 위기도 많았다. 그런데 끝나면 이상하게 더 힘이 붙는 게 도요타다. 미국의 리먼 쇼크와 리콜이 터지고, 동일본 대지진이 나고, 태국 대홍수로 엉망이 되는 등…, 그 전까지 수십 년간 계속 성공을 거둬온 것처럼 보였는데 갑자기 2중 3중의 강펀치를 맞았다. 그런데 끝나고 보면 역시 배워서 강해진다. 도요타의 역사가 다 그런 과정의 연속이다. 그런 능력이 남아 있다면 계속 성공할 것이고, 만약 그런 능력과 정신이 사라져버린다면 도요타도 보통 회사가 되어버릴 것이라고 생각한다."

― 리콜 사태 이후 도요타 홍보 조직도 크게 바뀌었다.  

"최초 대응은 매우 미숙했다. 거기에서 배운 부분도 있고, 수습하는 과정에서도 많은 것을 배웠다. 어떤 타이밍에 어떻게 여론을 다뤄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많이 배웠다. 도요타는 기본적으로 진지하게 열심히 노력하는 회사이기 때문에 반성할 것은 하고 리콜도 전부 하겠지만, 그렇게 나쁜 짓을 하는 회사는 아니라는 메시지를 전할 타이밍을 생각했다. 

미국 매스컴을 일본으로 불러 이렇게 철저하게 테스트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도요타는 그렇게 나쁘지 않습니다. 도요타가 새로 시작했습니다' 그런 점을 설명하는 타이밍이 아주 좋았다. 초기 단계의 실수에서 배운 것이다. 실력을 과신하면 안 된다는 것을. 일단 문제가 생기면 타이밍을 잘 맞춰서 대응해야 한다는 점까지 전부 배웠다. 2010년 초 아키오 사장이 미국 청문회에서 ‘이상한 짓을 한 것처럼 보이지만, 도요타는 그렇게 나쁜 짓을 하지 않았다’고 얘기했다.

그때 미국 기자가 '이렇게 중대한 일이 발생했는데 그럼 누가 잘못한 것인가'라고 물었다. 아키오 사장은 이렇게 대답했다. '고객의 잘못은 아닙니다.' 미리 준비를 해뒀던 답변이 아니라 순간적으로 나온 말이다. 이 얘기가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아키오 사장의 입에서 '고객의 잘못이 아닙니다'라는 말이 곧바로 나왔으니 역시 도요타의 문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자기반성에 대해 참고할 다른 기업이 있을까?  

"예전에 비슷한 상황에서 어떤 독일 회사는 '그것은 미국인의 운전이 미숙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1980년대 아우디였다. '우리는 아무것도 잘못한 게 없다'고 얘기했다. 설사 잘못한 게 없더라도, 외교적이지는 않았다는 거다. 틀린 말은 아니었을 것이다. 독일인에 비해 미국인의 운전이 미숙하다는 게. 하지만 그런 말은 그런 타이밍에서 하면 안 되는 거였다. 그 후 아우디는 미국 시장에서 오랫동안 크게 고생했다. 현대차도 장기 품질 문제로 고민하고 있지만, 마찬가지로 고객 책임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도요타도 처음 미국에 '크라운'이라는 승용차를 수출했을 때 품질 문제로 차가 팔리지 않았다. 현대도 1980년대 미국에 처음 수출했을 때 실패를 겪었다. 모두가 여러 가지 실패를 하고, 그 과정에서 배우면서 그런 문화를 만들어나갔다고 본다. 도요타에 그런 문화가 남아 있다는 것이다. 수십 년의 단위, 50년 또는 60년의 단위로 도요타의 역사를 보면 '역시 이 회사는 진화 능력이 있다'라고 말할 수 있다. 근사한 느낌의 진화 능력이 아니라 흙냄새 나고 촌스럽지만, 어쨌든 어떤 실패가 있어도 끝나면 좀더 공부를 하게 되고, 좀더 지식과 능력이 생기는 것이다. 성공이든 실패든 항상 배운다는 점이 도요타의 능력이라고 본다."

※ 본 연재는 <왜 다시 도요타인가>(최원석/ 더퀘스트/ 2016년) 내용 가운데 일부입니다.


위 글은 인터파크 북DB 기사 [자기반성 - 도요타 문제 해결 능력의 근원]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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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칼럼니스트 최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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