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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Jan 09. 2017

영원한 승자도 영원한 패자도 없다

왜 다시 도요타인가

                    


핀란드 수도 헬싱키 시내에서 서쪽으로 4km 떨어진 이테메렌카투 지역의 7층짜리 대형 유리 건물. 오후 3시였지만 북극에 가까운 헬싱키의 겨울은 벌써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건물 맨 위쪽으로 2개의 기업 간판만 밝게 빛났다. 슈퍼셀과 욜라(Jolla)라는 이름이었다. 한때 '노키아'라는 간판이 크게 걸려 있던 자리다.


노키아는 2014년 마이크로소프트에 휴대전화사업부를 매각하고 스마트폰 시장에서 철수했는데, 이 일은 핀란드인들에게 엄청난 충격이었다. 하지만 희망적인 것은, 핀란드가 노키아의 몰락에서 중요한 교훈을 얻었다는 사실이다. 이후 노키아의 폐허 위에 벤처 창업 붐이 일어 노키아의 공백을 메워오고 있다.


2013년 12월의 일이었다. 헬싱키 근교 에스포에 있는 노키아 본사를 방문하기 위해 택시 기사에게 '노키아 본사에 가자'고 했더니, 기사가 "아! 노키아의 집(Nokia House) 말이죠?"라고 했다. 노키아는 핀란드인에게 집과 같은 존재였던 걸까. 1998년부터 2007년까지 10년간 노키아는 핀란드 전체 법인세의 23%, 수출의 20% 가까이를 차지했을 만큼 절대적인 위치에 있었다.


한때 혁신의 상징이었던 노키아의 기업 문화는 노키아가 거대기업으로 성장함에 따라 관료적이고 안정 지향적인 문화로 바뀌어갔다. 핀란드 젊은이들의 입사 1순위가 노키아였던 것은 이 회사에 들어가 혁신을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월급이 많고 안정적인 삶을 누릴 수 있어서였다. 혁신과 모험을 통해 휴대전화 시장을 평정했던 노키아는 가장 모험을 싫어하는 기업으로 변해갔다. 슈퍼셀의 일카 파나넨 창업자 겸 CEO는 "노키아의 몰락이 그동안 외부 환경 변화에 대해 눈감고 싶어 했던 핀란드 경제에 강력한 자명종 역할을 했다”며 “모두가 깜짝 놀라 잠에서 깨어났고, 생존에 대한 절박함과 위기의식을 느끼기 시작했다"고 했다.


한국의 기업들, 지금부터가 문제다


함께 성장하는 동안에는 문제가 생겨도 덮을 수 있다. 그러나 성장이 멈췄을 때 그 모든 문제가 한꺼번에 불거진다. 한국이 위기에 둔감해 있는 동안, 사상 최고 실적을 내 성공을 자축해도 될 것 같은 도요타는 오히려 대수술이라 할 만한 신체제 조직 개편을 단행하고 TNGA라는 설계 혁신 전략을 밀어붙이고 있다. 물론 도요타가 만능은 아니다. 신체제나 TNGA가 꼭 정답인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도요타처럼 거대한 글로벌 기업이 스스로 도전에 나서고 있다는 것이다. 모험을 마다치 않고, 끊임없이 반성하고 고민하고 진화하며, 거기에서 더 나은 무엇인가를 내놓으려고 발버둥 친다는 것이다. 그 모험이 실패할 수도 있고 결과가 좋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모험가의 의지와 노력이 사라지지 않는 한, 마침내는 성공할 것이다.


상황을 빨리 읽어내고, 보석을 찾아내고, 행동해야 한다. 한국은 이제 과거처럼 선진국의 어느 좋은 사례를 하나 배워서 문제가 해결될 만한 나라가 아니다. 해외에서 장점이라고 배울 만한 것의 대부분은 한국도 이미 다 가지고 있다. 그런데도 위기가 끊이지 않는 것은, 모든 것을 갖고 있으면서도 무엇을 가지고 있는 줄 모르고, 그것을 제대로 쓸 줄 모르기 때문이다. 현상을 얘기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다. 뛰어난 리더는 자기 진영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다 안다. 그리고 적 고지의 능선 뒤편에서 벌어지는 일도 꿰뚫어본다. 나아가고자 하는 부분의 이면을 읽고 판단하고 실행하는 것, 그게 리더의 몫이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경영진 상층부에 기술을 넓고 깊게 꿰뚫어보는 리더가 너무 적다는 것이다. 리더가 그렇게 할 능력이 부족하다면, 옆에 최고의 기술 자문역을 두면 된다. 그러나 한국 기업 상층부에는 과거의 성공체험과 기술지식에 갇혀 있는 나이 든 오너 경영자, 그리고 기술을 밑바닥부터 최고 단계까지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미래를 제대로 내다보지 못하는 함량 미달의 기술임원들이 포진해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예를 들어 도요타는 아키오 사장이 자동차 엔지니어 출신은 아니지만, 가토 미쓰히사 부사장 같은 최고의 기술 멘토를 두고 수시로 미래 전략에 대해 논의한다. 그 외에도 도요타 자동차개발의 백전노장들이 자문역으로 제 역할을 한다. 한국에서 가토 부사장급의 기술임원을 보유한 기업이라면 삼성전자 정도가 비교 대상에 오를 만하고, 그 외에는 안타깝게도 상대가 되지 않는 수준이다.


또 아키오 사장은 엔지니어들과 아주 자연스럽게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유럽의 프로 자동차 경주대회에 참가할 만큼 전문가에 버금가는 드라이빙 실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아키오 사장은 '사장의 직무를 다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랄 텐데, 왜 그렇게 자주 직접 차를 몰고 경주에 참가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나는 엔지니어 출신이 아니기 때문에 기술에 대해 회사 기술임원들과 자연스럽게 얘기할 기회가 필요했다. 그 창구가 테스트 드라이브와 자동차 경주 참가인 셈"이라고 대답했다. 도요타 사장이 이렇게 기술임원들에게 늘 배우고 그들과 교감하려는 마음가짐을 갖고 있다면, 도요타의 미래는 앞으로도 밝을 것이다.


반대로 한국 기업은 이런 경영 환경이 갖춰져 있지 않은 곳이 많다. 우선 기업 리더가 기술을 깊이 이해하고 있거나 적어도 겸허한 자세로 항상 듣고 배우겠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그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제대로 된 기술임원을 임명해 그 임원이 현장과 경영진 상층부 사이의 기술 인터프리터(통역) 역할을 하도록 해야 한다. 최고경영자가 위기의식을 느끼고 미래에 대비하려 해도 기술 인터프리터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이유는 뛰어난 기술임원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런 임원 대신 엉뚱한 사람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기술 인터프리터가 제 역할을 못하면 최고 경영진과 기술개발 현장 사이의 유기적인 연결이 어려워지고, 연구소가 회사 내에서 외딴 섬처럼 떨어져 존재하게 될 우려가 있다. 경영과 연구개발은 하나로 움직여야 한다. 서로 지원하고 감독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이것이 안 되고 둘이 따로 움직인다면 제대로 된 미래를 설계하는 것은 불가능해진다.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거나 해외에서 인재를 들여오기 이전에, 사내에 숨어 있거나 가려져 있는 진짜 기술 인터프리터를 찾아 등용하고, 기술경영을 가능케 하는 기업 문화와 환경을 만드는 것이 우선이다.


베스트(best)보다는 베터(better)를


성공은 자만을 부르고, 자만은 자멸을 가져온다. 반대로 실패에는 다음의 성공으로 이어지는 싹이 내포돼 있다. 도요타의 지난 7년은 이 교훈을 체득하는 시간이었다. 아키오 사장은 "내가 사장 취임 후 한 일은 도요타를 원점으로 되돌리는 것이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도요타가 돌아온 원점은 이전보다 훨씬 더 높은 곳에 있었다. 도요타의 지난 7년은 도요타 79년 역사상 최악의 위기를 극복해낸 7년이었지만, 동시에 최고의 7년이었다.


필자는 2013년 4월 아키오 사장과 만나 얘길 나눈 적이 있다. 나고야 시에 있는 도요타 미드랜드 스퀘어 빌딩 만찬장에서였다. 눈매에 비범함이 서려 있다거나 대단한 자신감이나 카리스마가 엿보이는 것은 아니었다. 세계 최고 자동차회사의 수장이었지만, 오히려 평범했다. 그런데 그의 이 한마디가 인상에 남았다. 


"어제보다는 오늘, 오늘보다는 내일이 더 좋아질 수 있도록 노력합시다. '베스트(best)보다는 베터(better)'를 목표로 삼아 도전합시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다. 진심이 담겨 있었다. 만찬장은 나고야에서 가장 높은 247m, 47층짜리 빌딩의 꼭대기에 있었다. 우아한 음악이 흘러나왔고, 아키오 사장과 얘길 나누며 홀짝였던 샴페인은 달콤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아무래도 좋았다. 도요타가 보유한 첨단 연구소, 거대한 시설, 근사한 자동차도 사실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의 이 말 한마디에 도요타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 본 연재는 <왜 다시 도요타인가>(최원석/ 더퀘스트/ 2016년) 내용 가운데 일부입니다.


위 글은 인터파크 북DB 기사 [영원한 승자도 영원한 패자도 없다]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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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칼럼니스트 최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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