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새해가 밝았다. 해가 새로 바뀌면 늘 하는 것이 있다. 올해 목표 세우기. 운동이나 금연, 독서나 여행 등 각자 목표는 다르지만 결국 내가 원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의지임에는 틀림없다. 새해에 자기계발 책들이 인기 있는 것도 그런 이유일 터. 성공하고 싶다는 바람에 책에서 일러준 대로 일도 공부도 '열심히' 하고 관계에도 적지 않은 노력을 투자한다. 하지만 열심히 해도 주인공과 같은 성공은 나에겐 없다. 이번 생은 망했다는 생각에 꾸역꾸역 살아간다.
여기 또 한 권의 자기계발서가 나왔다. <그건 내 인생이 아니다>(서동일/ 프레너미/ 2016년). 2014년 페이스북에 의해 20억 달러에 인수된 VR(Virtual Reality, 가상현실) 회사 '오큘러스'의 공동창업자인 저자 서동일은, 5년 근무 옵션 70억 원의 조건을 걷어차고 '볼레크리에이티브'를 새롭게 창업했다. 그는 <그건 내 인생이 아니다>를 통해, 그간 우리가 읽어온 '자기계발'과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는 이번 생이 망한 게 아니라 목표를 잘못 설정했다고, 방향이 틀렸으니 일단 멈추라고 얘기한다. 방향을 잃은 불확실한 미래가 오히려 기회라고 강조한다. 확실히 그의 이력은 불안하고 불편한 길을 선택해온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낡은 가치와 싸우고 불안한 미래를 자신이 원하는 미래로 바꾸길 주저하지 않는 삶, 그래서 변화는 기회라고 말하는 저자의 삶을 들여다보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질문이 있다. '지금 나는 내 인생을 살고 있는 걸까?'
1월 4일 서울 한남동 복합문화공간 북파크에서 저자 서동일 볼레크리에이티브 대표를 만났다. 부드러운 인상의 저자는 자기 생각과 인생을 감추는 것 없이 들려주었다. 페이스북이 약속한 ‘5년-70억 원’을 걷어차고 볼레크리에이티브를 창업한 이유를 먼저 물었다. 그는 2년 이상 일한 곳이 별로 없다며, 더 이상 성장이 어렵다고 생각할 때마다 이직했다고 답했다. 남들보다 대학 입학과 입사가 늦어진 탓에 ‘성장에 대한 강박관념이 있다’고도 덧붙였다. 성장에 대한 조바심이 성공에 대한 기준을 바꿔놓은 셈이다.
8년 만에 대학을 졸업하고 게임회사에 입사할 때도 주변 사람들은 모두 말렸다. 게임산업은 새로운 성장동력이었지만 이른바 '해외유학파'들은 기피하는 곳이었다. 그는 오히려 게임회사가 자신에게 여러 기회를 줄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 운이 좋았던 것인지 그의 예상이 적중한 것인지, 게임산업이 해외에 진출하는 시기와 맞물려 통역을 할 수 있는 직원이 필요했다. 그는 통역을 하면서, 대기업에 다녔다면 얻을 수 없었던 의사 결정권자들의 사업 노하우를 경험하고, 인맥을 쌓았다. 그 인맥이 오큘러스를 창업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기회라는 게 내가 찾을 수도 있지만, 나를 찾아올 수도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어떤 제안을 받았을 때, 그걸 기회로 볼지 아닌지는 자신이 선택하는 거잖아요. 게임회사는 저한테 어떤 기회가 될까 고민했죠. 제가 거기서 돋보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보석은 빛이 나니까 사람들이 탐을 내는 거잖아요. 스스로 빛날 수 있는 자리에 있어야 기회가 온다고 생각했어요.”
그는 대기업, 고액 연봉이라는 사회가 요구하는 성공 지표를 버리고 자기 기준으로 게임회사에 들어갔다. 성공 지표가 일률적인 곳에서, 더욱이 가족이 있는 상황에서, 기존의 가치를 따르지 않는 데 불안함은 없었을까? 안정적이라고 생각하는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에게서 듣는 소리는 '재미없지만 어쩔 수 없이 일한다는 하소연'일 뿐이었다고 한다. 그들이 의미도 느끼지 못하고 무기력해 하는 것을 보고, 그는 일단 멈추고 방향을 다시 설정해야 했다고 답했다. 돈과 명예가 아니라 꿈을 실현할 수 있는 쪽으로.
더 성장하고 꿈에 가까워지기 위해서 그가 선택한 것은 가상현실(VR). 그는 가상현실이 사회에 많은 변화를 주고 자기 꿈을 이루는 데 도움을 줄 수 있겠다는 생각에 가상현실 산업으로 뛰어들었다. <그건 내 인생이 아니다>에서도 그는 가상현실을 통해 '큰 그림'을 꿈꿀 수 있게 됐다고 여러 번 밝혔다. 어떤 꿈을 그리고 있는지 묻자, 그는 가상현실은 꿈을 이루기 위한 도구 가운데 하나일 뿐, '막연하지만 조금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보는 게 목표'라며 말을 이었다.
"전 오히려 꿈이라는 건 구체적이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너무 구체적이면 실현 방법인 거죠. 이를 테면 축구선수가 되겠다는 꿈을 갖고 있을 때 만약 사고로 다리를 잃었다면 그 사람은 더 이상 꿈을 이룰 수 없겠죠. 하지만 축구선수가 아니라 축구를 통해서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싶다는 꿈을 꾼다면, 축구선수가 될 수도 있고 다른 걸 할 수도 있겠죠.
꿈이 너무 구체적이면, 그게 잘 안 됐을 때 좌절하고 다른 가능성을 못 찾을 수도 있어요. 뭔가 하고 싶은 게 생겼을 때 어떻게 꿈을 이룰지 방법은 모르지만 다양하게 시도해볼 수 있겠죠. 그렇지 않으면 목표에 실패했을 때 헤어나기 힘든 것 같아요."
‘좀 더 좋은 세상’을 꿈꾸는 그가 가상현실을 통해 이루고 싶은 것이 또 있다. 한국인에게 존경받는 기업인이 되는 것. 캐나다에서 유학을 하며 고국에 대한 애정을 품은 그는 한국에 돌아와 ‘아무도 꿈꾸지 않는 것’을 보며 안타까움을 느꼈다. 존경을 받는 기업인이 없다는 사실도 아쉬움으로 다가왔다. 그는 한탄하고 비관하는 대신 자신이 존경받을 만한 기업을 만들고, 젊은 사람들이 꿈꿀 수 있는 환경을 만들면 되지 않겠냐는 생각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결과와 상관없이 시도하는 자체로 의미 있지 않겠냐며, 그는 꿈을 이루기 위한 또 하나의 포부를 전했다.
"<억만장자와 결혼하는 방법>이라는 책에서 읽었는데, 세상이 좀 나아지려면 기업들이 이윤을 덜 챙기고 나눠야 된다는 말이 와닿았어요. 그런데 대기업이 모든 걸 소유한 세상에서 대기업을 향해 분배하라고 요구하는 게 공허할 수 있어요. 더욱이 4차 산업혁명을 통해 기업은 생산성과 비용절감을 더 따질 테고 그럴수록 인간은 설 자리가 없어지겠죠. 이런 상황이라면, 제가 그런 기업을 만들어보겠다고 생각한 거예요.
4차 산업혁명의 흐름은 막을 수 없어요. 지금은 그 변화를 받아들여야 할 때예요. 대기업에 들어가서 받지 못할 월급을 기대하기보다 창업가 정신을 길러서 좋은 기업을 만드는 게 현명한 걸 수 있어요. 그러려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좋겠다는 거죠. 지금은 꿈을 찾아서 도전하는 시기가 맞다고 봐요. 그래서 실패해도 되는 환경을 만들고 싶고요, 사람들 꿈에 투자하고 싶어요."
위 글은 인터파크 북DB 기사 [오큘러스 공동창업자 서동일, 70억 돈방석을 걷어찬 이유]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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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 정윤영(북DB 객원기자)
사진 : 신동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