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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Jan 17. 2017

아, 그 수많은 죽어간 시간들…

아주 오래된 말들의 위로

           

<모모>(미하엘 엔데/ 비룡소/ 1999년)


중·고등학교 6년 내내 꿈꾸었다. 학교 밖의 시간을…. 학교 안에 있는 시간과 학교 밖의 시간은 다르게 흘러갈 것 같았다.


쉬는 시간이면 복도 창가에 서서 학교 담 너머 한강변에 펼쳐진 도로를 쳐다보곤 했다. 참으로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그때 소원은 다른 학생들 모두 학교 가는 날, 나 혼자 그 풍경 속에 있는 거였지만 한 번도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한 번도 꿈꿔보지 않은 것이 있다. 정규직이다. 구체적으로는 직장인이다. 이유는 앞서 중·고등학교 시절의 꿈과 연관된다.


내 시간을 내 마음대로 쓰고 싶어서다. 


직장인이 그럴 수 없다는 사실을 대학교 1학년 여름과 겨울방학 때 공기업에서 했던 아르바이트를 통해 절실히 체험했다. 특히 아침 9시까지 도착하기 위해 지하철을 탈 때마다 거대한 식인종의 김밥 속으로 들어가는 밥알이 되는 것 같은 기분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지하철 문이 열리면 김밥 옆구리가 터져 안에서 밥알이 튀어나오는 것 같았고, 푸시맨은 대기하고 있는 바깥의 밥알을 김밥 속으로 꾸역꾸역 우겨 넣었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성 같은 건 밥알만큼도 찾을 수 없었다, 라는 생각은 나중에 든 것이고, 식인종 유머시리즈가 유행했던 그때, 힘들다기보다 웃겼다. 실제로 웃다가 지하철을 타지 못한 적도 부지기수였다.


아무튼 자신이 하는 일에 흥미와 보람을 느끼지 못하는 직장인이 받는 월급이란 세상에 둘도 없는 자신의 시간을 팔고 받는 대가라는 사실을 일찌감치 터득했고, 나는 내 시간에 있어서만큼은 아주 인색해지고 싶었다. 비싸게 팔거나, 그럴 수 없다면 내가 쓰고 말겠다는 결심을 한 것이다. 그런데 참으로 어리석어 결정적으로 ‘무엇을 위해서’라는 목표가 없었다. 그냥 내 시간을 무엇에도 뺏기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렇다고 금이야 옥이야 시간을 아낀 것도 아니다. 친구들이 요즘 말로 스펙 쌓기에 열중할 때 나는 (어차피 취업할 계획이 없었으므로) 대부분의 시간을 멍하게 있거나 빈둥거리며 보냈다. 


유일하게 했던 거라곤 십 대 초반부터 계속 이어진 음악듣기, 책 읽기, 글쓰기였는데 그건 목적 없는 습관 같은 거였다. 무엇보다 세상사람 누구도 음악 듣고 책 읽고 글 나부랭이나 끼적거리고 멍하니 앉아 있는 걸 두고 열심히 산다거나 시간을 잘 쓴다고 하지 않는다. 나 역시 아까운 시간을 이런 식으로 낭비해도 되나? 싶은 죄책감이 없지 않았다. 이런 죄책감으로부터 해방시켜준 책이 미하엘 엔데의 <모모>였다.


인간의 불안은 숙명적이다. 그 숙명성은 시간의 유한함으로부터 온다. 우리 모두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는 몰라도 끝이 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히 안다. 또한 의학기술의 발달로 백세시대가 된다 해도 사회가 자신을 필요로 하는 기간, 자신의 의지대로 육체와 정신을 움직일 수 있는 기간은 그보다 훨씬 짧으리라는 사실도 안다. 그러니 평균수명이 70세든 100세든 마음 조급하기는 매한가지다. 주어진 시간은 유한하니 최대한 아껴 사용하는 수밖에 없으며 그 아끼는 방법이란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일을 해서 많은 돈을 소유하거나 중요한 인물이 되는 것이다. 회색신사가 모모에게 거듭 강조했던 이 말처럼.


"인생에서 중요한 건 딱 한 가지야. 뭔가를 이루고, 뭔가 중요한 인물이 되고, 뭔가를 손에 쥐는 거지. 남보다 더 많은 걸 이룬 사람, 더 중요한 인물이 된 사람, 더 많은 걸 가진 사람한테 다른 모든 것은 저절로 주어지는 거야. 이를테면, 우정, 사랑, 명예 따위가 다 그렇지." (p.130)


그럴 듯하게 들리는가? 그렇다면 회색신사에게 시간을 도둑맞고 있다는 신호다. 뭔가를 이루고, 뭔가 중요한 인물이 되고, 뭔가를 손에 쥐기 위해 시간을 분 단위로 아끼는 것의 진실은 자신의 시간을 회색신사에게 도둑맞는 것이다. 그들은 인간으로부터 빼앗은 시간을 시가로 말아 피운다. 그러면 살아있던 시간이 연기로 변하면서 완전히 죽어버린다. 모모는 이 사실을 호라 박사로부터 듣고 탄식했다. "아, 그 수많은 죽어간 시간들…." 그리하여 그 연기가 하늘을 뒤덮어버리면 사람들은 이런 병에 걸리고 마는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아무것도 하고 싶은 의욕이 없어지지. 어떤 것에도 흥미를 느낄 수 없지. 한마디로 몹시 지루한 게야. (중략) 그러면 그 사람들은 차츰 기분이 언짢아지고, 가슴속이 텅 빈 것 같고, 스스로와 이 세상에 대해 불만을 느끼게 된단다. 그 다음에는 그런 감정마저 서서히 사라져 결국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하게 되지. 무관심해지고, 잿빛이 되는 게야. 온 세상이 낯설게 느껴지고, 자기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것 같아지는 게지. 이제 그 사람은 화도 내지 않고, 뜨겁게 열광하는 법도 없어. 기뻐하지도 않고, 슬퍼하지도 않아. 웃음과 눈물을 잊는 게야. 그러면 그 사람은 차디차게 변해서, 그 어떤 것도, 그 어떤 사람도 사랑할 수 없게 된단다." (p.328~329)


현대인의 우울증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은 이 병의 원인은 그러니까 제대로 된 인생을 누리고 싶어서 언젠가 다른 인생을 새로 시작하기 위해서 시간을 너무 아껴 쓴 탓이다. 제대로 된 인생이 어떤 인생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무작정 열심히 시간을 아끼면 그날이 올 줄 안다. 


"하지만 시간은 삶이며, 삶은 가슴속에 깃들어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시간을 아끼면 아낄수록 가진 것이 점점 줄어들었다." (p.98)


호라 박사의 말대로 가슴으로 느끼지 않는 시간은 모두 없어져버린다. 어느 순간, 자신이 살았는지 안 살았는지 모르겠는 인생을 보낸 것 같은 불안은 시간을 아껴가며 열심히 살지 않아서가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시간을 살지 않은 것으로부터 온다. 아무것도 느낀 게 없고 기억할 것 없는 시간이 어떻게 삶이 되겠는가. 삶이 되지 못하고 가슴에 깃들지 못한 시간은 연기가 돼 흔적 없이 사라져버린다. 그러니 시간이 빠르다는 말이 절로 나올 수밖에 없다. 시간 낭비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보낸 시간이 아니라 아무것도 가슴으로 느낀 것 없이 보낸 시간을 두고 하는 말이다. 나는 아무것도 이룬 것 없는 시간에 대한 죄책감을 버리기로 했다.


※ 본 연재는 <아주 오래된 말들의 위로>(유선경/ 샘터/ 2016년) 내용 가운데 일부입니다.


위 글은 인터파크 북DB 기사 [아, 그 수많은 죽어간 시간들…]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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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칼럼니스트 유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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