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칼럼

BBC 드라마 '셜록'보다 원작이 좋은 이유

듀나의 장르소설 읽는 밤

by 인터파크 북DB

20170118162821111.jpg '셜록 4' 스틸컷


‘셜록’ 시즌 4의 마지막 에피소드를 막 끝냈다. 개인적으로 이번 시즌을 그렇게 좋게 봤다고 할 수 없는데, 생각해보니 ‘셜록’ 에피소드 중 맘에 든 건 1시즌 1편밖에 없었던 것 같다. 원래부터 그렇게 맘에 차는 시리즈가 아니었다. 캐스팅이 좋고 원작에 대한 애정이 컸으며 KBS가 유달리 이 시리즈를 편애했기 때문에 꾸준히 따라갔던 것뿐이지.

BBC 셜록을 보고 "얘는 내가 아는 셜록 홈즈가 아니야!" 따위의 투정을 부리지 않으려 노력해봤다. 사람들이 각자의 예수를 맘에 품을 수 있다면 각자의 셜록 홈즈도 품을 수 있으리라. 그리고 각자의 홈즈가 각자의 예수보다 훨씬 안전하다.

그래도 불평이 터져나오는 건 막을 수가 없다. 예를 들어 끝도 없는 ‘클리프행어’와 극단적인 악당들로 끌어가는 시리즈의 신경질적인 분위기엔 끝까지 적응이 안 된다. 내가 알고 있는 셜록 홈즈 소설들의 결말은 바깥에서 어두컴컴한 사건들을 해결한 두 중년남자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낡은 하숙집의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인데 말이다. 드라마는 이 안정감을 끝없이 부정하는데, 이렇게 해서 얻는 게 뭐가 있나 싶다. 나는 그냥 피곤할 뿐이다.

그리고 아무리 해석이 다양해도 내가 쉽게 포기할 수 없는 셜록 홈즈의 이미지가 있다. 그건 겉으로는 아무리 괴짜처럼 굴어도 인간에 대한 뛰어난 이해를 갖추고 있고 그들에 대한 연민을 잃지 않으며 자신의 능력을 과대하지 않는 전문가의 모습이다. 사람들은 홈즈의 '명탐정' 이미지에 집착하지만 홈즈는 의외로 사실적인 인물이다. 성공률도 딱 현실세계의 능력있는 전문가의 수준이고, 홈즈를 찾아오는 사람들도 다양한 계층의 보통 사람들이다. 그 보통사람들의 사건을 해결할 때 홈즈는 가장 빛이 나고 믿음직스럽다.

BBC 셜록은 정반대다. 그는 일단 고기능 소시오패스다. 시작부터 코난 도일의 홈즈와 정반대 방향에 서 있다. 그는 자기 중심적이고, 평범하고 재미없는 인간들에게 관심이 없다. 엄청 명탐정이라고 다들 말하는데, 시리즈에선 정작 그 능력을 찾아보기 힘들다. 늘 능력을 과신해 함정에 빠지고, 작가들 역시 원작을 뒤틀어 새로운 반전을 달려고 기를 쓰기 때문이다. 한두 번 하면 재미있지만 6년 넘게 계속 이러면 주인공에 대한 믿음만 날아간다. 이 친구는 실패에서 배우는 게 없는가?

탐정이 평범한 사람들에게 관심이 없기 때문에 시리즈에 나오는 사람들은 모두 극단적이다. 모리어티, 아이린 아들러, 마이크로프트 홈즈 그리고 이번 시즌에 나온 유러스 홈즈와 같은 사람들은 모두 천재들이다. 하지만 시리즈의 작가들이 품고 있는 천재성의 개념은 삼위일체처럼 추상적이고 부조리하다. 한마디로 그들 자신도 잘 모르고 있으면서 허풍을 떠는 것이다. 단 5분이면 주변 사람들을 자기 손발로 삼을 수 있는 유러스 홈즈의 능력처럼 말이다. 당연히 페어플레이는 날아가버린다.

21세기 버전 셜록 홈즈 이야기가 과연 빅토리아 시대의 홈즈 이야기에 비해 정치적으로 발전했는지도 의심스럽다. 물론 새 시리즈엔 다양한 인종이 등장하고 여성 캐릭터의 비중과 능력치도 높아졌다. 하지만 그건 당연한 것이고 우린 내용 자체를 조금 더 엄밀하게 비교해봐야 한다.

아이린 아들러를 다루는 법을 한 번 보자. 빅토리아 시대의 수구꼴통 작가였던 아서 코난 도일은 시리즈의 실질적인 첫 편인 <보헤미아 왕가의 스캔들>(먼저 쓴 장편 둘은 요새 기준으로 보면 파일럿이라고 우길 수 있으리라)에서 자신의 자칭 여성혐오주의자 탐정 주인공을 영리하지만 평범한 여성인 상대에게 패배하도록 만든다. 그리고 그 주인공은 그 패배를 인정하고 상대방의 의지를 존중한다. 하지만 21세기 <셜록>의 작가들은 죽어도 엄청난 천재 악당으로 묘사된 아이린 아들러에게 패배를 안기고 심지어 "사랑한다"는 고백을 강요하며 마지막엔 셜록에게 구조되는 역까지 맡긴다. 뭔가 거꾸로 돌아가는 것 같지 않은가?

어쩌다보니 책보다 드라마 이야기만 하다가 끝이 나는 거 같은데, 난 여러분에게 다시 셜록 홈즈 이야기로 돌아가보라고, 셜록 홈즈 전설의 원류에 어떤 보물들이 있는지 다시 한 번 탐사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물론 여전히 모리어티나 마이크로프트를 갖고 노는 건 재미있다. 다들 어쩌다가 만들어진 사람들이지만 이 정도면 홈즈 2차 창작물을 쓰는 작가들을 위한 원작자의 선물이라고 봐도 좋을 거다. 하지만 이 시리즈에서 가장 중요한 건 여전히 홈즈와 왓슨이어야 하지 않을까?

나는 여러분이 그의 성공담보다는 실패담을 다시 한 번 읽길 바란다. 홈즈가 상대방이 한수 위였거나 자신의 추리가 완벽하게 잘못되었음을 겸허하게 인정하는 <보헤미아 왕국의 스캔들>이나 <노란 얼굴>은 홈즈가 동료들 앞에서 자신의 완벽한 추리가 진실로 밝혀지는 순간을 즐기는 <붉은 머리 연맹>이나 <여섯 개의 나폴레옹>만큼이나 중요한 홈즈 소설이다. 그리고 나는 홈즈가 위대한 문학적 탐정으로 남을 수 있었던 것도 그가 '그 여성'과 '노베리'를 잊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위 글은 인터파크 북DB 기사 [BBC 드라마 '셜록'보다 원작이 좋은 이유]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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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칼럼니스트 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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