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인터파크 북DB Jan 18. 2017

"변방의 이야기로 중앙을 불편하게 하고 싶었다"

[박상규·박준영 인터뷰 2]

                          

☞ 1편에서 이어집니다.([박상규·박준영 인터뷰 1] “침묵 않는 연대의 힘, 재심사건 숨은 의미”)




Q 박상규 기자님은 멀쩡히 다니던 언론사에 사표를 내고 '백수기자'가 됐습니다. 이 재심 프로젝트는 한 사람의 운명을 바꿀 수 있을 만큼 중요하고 부담스러운 프로젝트인데, 월급 주고 방패막이 돼주는 회사가 있는 것도 아닌 상황에서 인간적인 고민과 고비가 분명 있었을 것 같습니다.


박상규 : 이렇게 오래 걸리고 이렇게 힘들고 이렇게 복잡하게 꼬여 있는 줄 알았으면 안 했겠죠.(웃음) 한편으로는 제 뒷배경이 없기 때문에 선택하기가 더 쉬웠던 거예요. 잃을 게 없기 때문에. 그리고 기자는 느낌이 오잖아요. 이 이야기들이 보도됐을 때 사회에 큰 파장이 있겠다고 당연히 예측이 됐죠. 기자로서 굉장히 좋았어요.


서울 사대문 안에서는 계속 '정제된' 사람들의 이야기만 쓰게 되잖아요. 사대문 안의 사람들에게, '니들이 똑바로 못 하면 이렇게 돼. 니들은 이 변방의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좀 알아야 돼.' 그런 말을 해주고 싶었어요. 그런데 대부분의 언론들은 사대문 안의 권력을 감시하는 게 중요하다고만 생각하죠. 저는 변방의 다양한 이야기들로 중앙을 불편하게 하고 싶었어요.


<우리들의 변호사>를 보니, 박준영 변호사님은 박상규 기자님을 처음 봤을 때 '기자답지 않은' 외모를 보고 좀 홀대(?)하셨다고요.(웃음) 그럴 때는 언제고, 글을 본 뒤에는 재심 프로젝트를 같이 하자고 먼저 옆구리를 찔렀다 했습니다. 박상규 기자님의 글 어디가 그렇게 좋았습니까?


박준영 : 어느 분이 그러시더라고요. 박상규 기자의 글에는 '자기'가 들어 있다고. 저는 그 말이 제가 느끼는 감정을 정확히 담아냈다고 봅니다. 글 속에 화자가 분명히 들어 있으니까 제가 화자에 몰입할 수 있죠. <똥만이>(박상규 기자가 쓴 자전적 동화 – 기자 주) 읽고 나서 박상규 기자 얼굴 보면 짠하고, 그렇습니다.(웃음)


<지연된 정의>를 보면, 소설이 아닌데도 캐릭터가 참 잘 살아 있습니다. 그런데 박준영 변호사는 믿음을 강조하고 인정에 호소하는 캐릭터로 그려지는 반면, 박상규 기자는 그런 박준영 변호사를 합리적으로 의심하고 냉정하게 사실관계를 따지는 캐릭터로 그려집니다. 이런 책 속 캐릭터에 대해 박준영 변호사의 해명 또는 반론을 꼭 들어야겠습니다.

박상규 : (박준영 변호사를 보며) 맞잖아요!(웃음)


박준영 : 저는 약간 감정적이에요. 감성적이에요. 가진 게 없다 보니까, 상대방한테 호소할 수 있는 게 긍정의 힘을 믿으라는 것밖에 없죠.


박상규 : 박준영 변호사는 '믿음'이라는 단어를 많이 써요. 왜냐면, 제가 사실 흔들리니까. 박준영 변호사는 법리적으로 쫙 꿰고 있으니까 자신감이 있는데, 저는 의심이 많을 수밖에 없었죠. 특히 김신혜 사건 때는 제가 많이 흔들렸거든요. '정말 김신혜가 진범이 맞나?' 흔들리는 저를 잡아줘야 되니까 박준영 변호사가 항상 믿음을 강조했죠.(웃음) 그런데 사건에 대한 믿음뿐만 아니라 인간에 대한 믿음을 이야기하는 거였어요. 저를 항상 인간적인 시험대에 올리는 말이었죠.




"르포와 장기취재 전문 기자들 지원하는 시스템 필요"


Q 지방대 출신 백수기자, 고졸 출신 파산 변호사. 우리 사회의 흔한 시각으로 보면 두 분 다 외모(?)로나 스펙으로나 '아웃사이더'에 가깝습니다. 그런 두 사람이 대한민국 언론계와 법조계에 ‘일대 사건’을 만들 수 있었던 가장 큰 무기,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서로 상대방을 평해주시죠.


박상규 : 박준영 변호사의 가장 큰 무기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기자 : 박상규 기자를 처음 봤을 때 외모 때문에 차별하셨잖아요.) 아, 세상에 완벽한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웃음) 박준영 변호사가 사건 당사자들을 대하는 모습을 보면서 깜짝 놀랐어요. '불쌍한 사람이니까 잘해줘야지' 하는 태도가 아니었어요. 저를 대할 때나 그들을 대할 때나 똑같아요. 박준영 변호사는 선한 사람이에요. 그렇다 보니까 '우리랑 똑같은 사람한테 어떻게 (국가권력이) 그럴 수 있느냐' 하는 분노가 큰 거죠. 선한 마음이 아니라면 그 분노가 다 설명이 안 돼요.


박준영 : 박상규 기자의 무기는 의리와 측은지심이죠. 박상규 기자가 공론화 시켜주지 않았다면 이 사건들의 재심은 쉽지 않았습니다. 변호사들은 법적인 변론의 테두리 안에서 사람을 상담하고 이야기가 그 안에 머무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박상규 기자와 같이 했기 때문에 사건 당사자들의 인생 이야기까지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 거예요. 저 혼자였다면 사람의 내면에 있는 여러 얘기를 끌어낼 수가 없었을 거예요.


Q 두 분 모두 남들이 흔히 걷지 않는 길을 걸어왔고, 남들이 흔히 하지 않는 특이한 선택과 도전을 해왔습니다. 좀 상스럽게 표현하면 두 분 다 좀 ‘또라이’에 가깝다고 볼 수 있는데요, 서로 '이 사람은 정말 또라이구나, 정말 특이하구나' 하고 느낀 때는 언제인가요?


박준영 : 저는 일이란 건 무조건 책상 앞에 앉아서 하는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한창 기사를 써야 되는데, 박상규 기자가 제주도에 귤 따러 가버렸어요. 봄에는 고사리 뜯으러 가버리질 않나.(웃음) 기사를 하나라도 더 써야 할 땐데. 처음에는 정말 이상하고, 또라이라고 봤거든요. 그런데 거기서 제가 뭘 느꼈냐면, 정신적 노동을 하는 사람이 육체적인 노동으로 땀을 흘리면서 한 계단 더 올라갈 수 있는 힘을 얻는다는 걸 느꼈어요. 저는 그걸 모르고 살았던 거예요, 이제까지.


박상규 : 그렇게까지 포장할 건 아니고요. 그냥 답답해서 책상 앞에 오래 못 앉아 있는 거죠 뭐.(웃음) 박준영 변호사는, 판사한테 삿대질하고 싸울 때. 제가 방청석에서 보면서도 '아 재판부가 좀 설렁설렁하는 것 같다' 싶긴 했는데, 그래도 저렇게까지 싸워야 되나 싶었어요.(웃음) 그때 '저 사람 완전 또라이구나' 생각했죠.


Q 책에 보면 여러 조력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표했습니다. 혹시나 책에는 이름을 밝히지 못했지만 또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은 조력자가 있나요?

 
박준영 : 진범이죠. 삼례 사건의 진범. ‘인간이란 뭔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만들더라니까요. 처음에는 솔직히 전화도 하기 힘들었어요. 제 전화번호가 그 사람 전화에 찍힌다는 것도 두려워서요. 굉장히 중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 그것도 처벌까지 안 받은 사람을 너무 미화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있을 수 있어요. 그래서 진범을 고마운 사람으로 책에 언급한다는 게 자신이 없었어요. 하지만 어쨌든 그 사람이 세상 밖으로 나와서 증언도 하고 피해자 유가족들도 만났기 때문에 삼례 사건이 이렇게 빨리 정의롭게 결론이 났거든요. 저한테는 정말 고마운 사람입니다.


Q 박상규 기자님은 또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셨습니다. 또 다른 박상규-박준영들을 만들어내기 위해 '셜록'이라는 저널리즘 그룹을 만드셨는데요, 어떤 곳인지 소개 좀 해주시죠.


박상규 : 스토리펀딩으로 돈이 좀 들어왔어요. 독자들이 준 돈인데, 도저히 이걸 저 혼자 꿀꺽 할 수가 없겠더라고요. 저와 비슷한 꿈을 갖고 있고 저와 비슷한 글을 쓰고 싶어 하는 후배 기자들을 좀 지원하는 데 써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재심 프로젝트 같은 보도를 체계적으로 할 필요가 있겠더라고요. 이건 제가 백수였기 때문에 할 수 있었어요. 전 세계 어느 언론사도 2년 동안이나 시간을 주는 회사는 없거든요. 르포와 장기취재를 전문으로 하는 기자들을 지원하는 시스템이 필요하지 않나 싶어요. 언론재단이나 국가한테 지원을 요구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우리가 자체적으로 한번 도전해보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박준영 : 제가 셜록을 적극적으로 도와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건(박준영 변호사는 셜록의 자문변호사다 – 기자 주), 일단 우리 사회에 해야 할 이야기가 너무나 많은 것 같아요. 사회 저변의 여러 문제제기를 위해서 해야 할 얘기가 너무 많은데 기성 언론에서 다 하기에는 한계가 있고요. 셜록이 혹시나 떨어지는 별똥별이 되더라도 일단 밝게 빛나야 한다는 점은 분명히 맞는 것 같아요.


위 글은 인터파크 북DB 기사 [[박상규·박준영 인터뷰 2] “변방의 이야기로 중앙을 불편하게 하고 싶었다”]의 일부입니다. 

전문보기


취재 : 최규화(북DB 기자)

사진 : 남경호(스튜디오2M)

매거진의 이전글 "침묵 않는 연대의 힘, 재심사건 숨은 의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