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는 처음입니다만
젊은 여러분들 중에는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고, 제대로 된 어른으로 살아갈 수 있을지 불안해하는 분도 계실지 모릅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아직 여러분은 성장하는 중이고, 앞으로도 자신을 단련할 기회가 있으니까요. 문자 그대로 급속한 성장 과정이었던 마르크스의 인생이 그 표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레닌은 <카를 마르크스>라는 책에 마르크스의 짧은 전기를 썼습니다. 그 내용에 기초해 마르크스의 인생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842~43년에 마르크스는 혁명적 민주주의자로서 ‘라인신문’에서 활동했습니다. 이 시기 마르크스는 유물론적 견지를 확립하고 공산주의자의 길로 전진합니다.
1843~48년에는 파리와 브뤼셀에서 과학적 사회주의의 토대를 마련하는 작업에 매달립니다. <신성 가족>을 통해 엥겔스와 공동 작업을 시작했고,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사적 유물론의 기본을 마련하는 한편, 세계 최초의 공산당 강령인 <공산당 선언>을 써냈습니다.
1848~49년에는 유럽 혁명이 한창일 때 독일로 돌아가 ‘신라인신문’의 편집장으로 혁명의 성공을 위해 논진을 폈습니다. 그리고 혁명은 성공하지 못했지만, 즉시 이를 총괄하는 <프랑스에서의 계급 투쟁>,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 등도 썼습니다.
1848~64년에는 마지막 거처였던 런던에서 다가올 혁명 운동의 고양에 대비해 세계관을 마무리하는 한편 경제학 연구를 진행합니다. <정치경제학 비판>의 '서설'과 '서언'을 썼으며, 당시의 국제 정치와 관련해 다채로운 정론 활동을 전개했습니다.
1864~72년에는 국제노동자협회(나중에 인터내셔널이 되는) 활동에 힘을 기울이며 <임금, 가격, 이윤>, <자본론> 제1권, <프랑스 내전> 등을 집필합니다.
국제노동자협회는 마르크스가 쓴 창립 선언과 규약을 만장일치로 채택했습니다. 하지만 국제노동자협회는 마르크스의 사상에 찬동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아니었습니다. 다양한 부류의 노동운동가·공산주의자가 참여한 가운데, 마르크스는 전체의 단결을 유지하면서 자신의 사고방식에 대한 이해와 공명을 확대하려 노력했을 뿐이죠. 그리고 이 활동은 1872년 중단되었습니다.
<자본론>의 직접적 과제는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의 운동 법칙을 해명하는 것이었습니다. 1872~83년에는 <자본론> 전체를 완성하기 위해 거듭 노력하면서 각국의 노동 운동과 혁명 운동에 대해 조언합니다. 또한 <고타 강령 비판> 등의 주요 저작도 남겼습니다.
이렇듯 간단하게 살펴보더라도, 마르크스는 실로 격동의 삶을 살았습니다. 결코 쉽지 않은 나날이었죠. 하지만 이는 누구의 강요에 의한 게 아니었습니다. 17세 때 이미 자신의 행복과 사회의 행복을 합치시켜 인식한 것처럼, 마르크스에게는 그런 삶이 자신의 방식에 충실한 길이었습니다.
마르크스처럼 많은 것들을 이루기란 누구라도 어려울 겁니다. 하지만 부디 젊은 여러분께서 그의 인생에 가득 넘쳐흐르던 큰 뜻과 휴머니즘을 현재와 미래의 삶에 참고해 주셨으면 합니다.
※ 본 연재는 <마르크스는 처음입니다만>(이시카와 야스히로/ 나름북스/ 2016년) 내용 가운데 일부입니다.
위 글은 인터파크 북DB 기사 [성장은 부단한 노력으로부터]의 일부입니다.
☞ 전문보기
글 : 칼럼니스트 이시카와 야스히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