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나파크 : 독립생활의 기록
혼자 살기 시작한 이후 이 집이 ‘여자 혼자 사는 집’임을 들키지 않으려 무지 애썼다. 범죄의 타깃이 되기 쉽다는 말을 익히 들어왔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 경계심이 과도하여 거의 세렝게티 평원의 새끼 톰슨 가젤처럼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가 이 고뇌를 이야기하니 사람들이 신발장에 큼직한 남자 신발 한 켤레쯤 두는 것이 어떠냐고 했다. 남자의 신발이라. 이 집에 나 같은 톰슨 가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도 이 공간을 지켜낼 힘센 존재가 있다는 상징이겠지. 그렇다면 나의 물리적 힘은 남자의 신발에서 비롯되는 아우라만도 못하다는 말인가.
이사한 지 얼마 안 되어 우리집에서 변기 누수가 일어났다. 변기에서 똑똑 물 떨어지는 소리가 계속 났는데 집주인에게 말하니 누수로 인한 수도세가 염려됐는지 바로 고치는 사람을 파견했다. 가족 외 처음으로 나의 집에 방문하는 남자였다. 혼자 사는 집에 덩치 큰 아저씨가 공구함을 들고 성큼성큼 들어서자, 나는 현관문을 걸어 닫지 않고 열어두어야 하나 등등 고민이 많았지만, 일단은 의연한 척했다. 아저씨는 이런저런 도구들로 한참 걸려 변기를 수리했다.
"변기 다 고쳤는데…… 아가씨, 화장실 좀 써도 돼요?"
화장실에 있으면서 화장실을 써도 되냐니 무슨 말인가, 당황하여 그러시라고 했더니, 아저씨는 문을 철컹 닫더니 소변을! 소변을 보기 시작했다! 좁은 집에 또르르 울리는 낯선 남자의 소변방울 소리. 나는 처음 만나는 사람이 나의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는 이 희한한 상황에 몹시 당황해서 뒷걸음질로 화장실 저 멀리(그래 봐야 좁은 집이라 지척이지만) 도망쳤다.
아니, 변기 고치러 와서 소변 정도는 볼 수도 있는 건가? 그래도 여자 혼자 사는 집인데 좀 참아도 되지 않았을까? 어지간히 급하셨나? 이 상황은 말이 되는 건가? 나는 민망해해야 하나, 두려워해야 하나? 이 상황이 너무나 이상한 것은 나의 과민반응인가? 정신이 멍한 가운데 아저씨는 볼일을 마치셨고, 도구를 챙겨 사라지셨다. 뭐랄까 그때의 기분은, 초식동물의 영역에 포식자가 나타나 영역 표시를 하고 사라진 기분이었다. 물론 아저씨에겐 위협의 의사가 전연 없었겠지만, 톰슨 가젤이 느끼기엔 그랬다는 거다.
변기 수리하시는 분은 시작에 불과했다. 그 후로도 에어컨을 설치하시는 분, 인터넷 선과 케이블 텔레비전을 달아주러 오신 분, 가스레인지 점화 부위를 고쳐주러 오신 분, 보일러를 수리하러 오신 분 등등 우리 집엔 수없이 많은 외간 남자가 다녀갔다. '여자 혼자 사는 집'임을 들키지 않으려 애썼으나 그때마다 가족과 동석할 수도 없고 별 수 없었다.
한 집에 있어서 남자의 존재란 무엇일까? 남자 한 명만 있어도 나는 이런 막연한 두려움을 느끼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돈을 벌어다 주거나 궂은일을 대신 맡아줄 남자의 존재가 아쉬운 게 아니었다. 생활비는 내가 벌 수 있고 형광등 따위도 얼마든지 내 손으로 갈아 끼울 수 있었다. 그저 내 존재의 물리력이 남자라는 존재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함이 서글펐다. 내 존재의 아우라가 남자 신발만도 못하다는 사실이 속상했다. 이제 막 사랑하기 시작한 이 공간을 온전히 내 힘으로 지킬 수 없다는 생각에 마음이 쓰렸다.
* 본 칼럼은 책 <혼자일 것 행복할 것>의 본문 일부를 편집한 글입니다.
위 글은 인터파크 북DB 기사 [톰슨 가젤의 영역]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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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칼럼니스트 홍인혜(루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