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속의 섬
※ 가고 싶어요. ‘늘’이 아니라 ‘때때로’ 말이죠. 섬에요. 수많은 섬 중 우리나라에서는 제주도가 가장 큽니다. 많은 이들이 몰려듭니다. 몰려오는 것에 그치지 않고 아예 눌러 앉습니다. 좋아서겠죠. ‘보물섬’이라서 그런가요? ‘보물섬’ 제주도엔, 제주도만 있는 건 아닙니다. ‘아주 작은 보물섬’들이 점을 찍고 있습니다. 그 섬에 저랑 가보실래요? – 필자 말
어느 시인이 그랬다. “어디 가느냐고 묻는 사람이 있다. 섬에 간다고 하면 왜 가느냐고 한다. 고독해서 간다고 하면 섬은 더 고독할텐데 한다. 옳은 말이다. 섬에 가면 더 고독하다”
섬에 가면 더 고독하다? 옳은 말이다?
우린 늘 고정된 틀에 얽매여 산다. 섬에 대한 고정관념도 마찬가지다. 섬이라면 떠오르는 말은 늘 한정돼 있다. 앞서 시인이 말한 것처럼 '고독하다' 혹은 '왜 가느냐' 그런 것들이다. 그렇게 섬은 가기 힘들단 말인가. 시인들이야 내재된 감정을 억지로 끌어내 시를 짓고, 글을 쓰고 하겠지만 섬에 대놓고 고독하고, 왜 가느냐 하면 어쩌라는 겐가. 섬에도 사람이 살고, 역사가 흐르는데.
시인들이 고독만 읊는 사이에 섬은 정말 고립된 채 남겨졌다. 섬은 시인이 말하듯 시적이지 않을 수도 있고, 고독의 노래를 읊조릴만큼 낭만적이지 않을 수도 있는데 말이다. 섬에 사는 사람에겐 더 중요한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 나름의 삶이 있다. 그들은 살기 위해 섬을 선택했고, 어떤 이들은 나서 죽을 때까지 섬에서 지내기도 한다.
누군가 내가 아는 이에게 물었다.
"섬에 들어가면 나오기 힘들다던데요."
추자도에 사는 그는 이렇게 답을 했다.
"영화에서도 쇼생크라는 감옥을 탈출한다는데 그 섬에서 탈출이야 못할까요."
섬은 감옥이 아니다. 섬은 오가지 못하는 곳도 아니다. 그러나 여전히 사람들은 섬이 고립됐고, 고독하다고 한다. 그건 그 섬 사람들이 많든 게 아니다. 그 섬에 살지 않는 사람들이 만든 법칙에 지나지 않는다.
추자도 얘기를 하려니 <만언사>가 떠오른다. 안조환이 지은 <만언사>는 대표적인 유배문학으로 꼽힌다. 오갈 데 없는 섬에 갇힌 그는 절규를 하며 창작을 했다. 그의 글은 갑갑한 자신의 존재를 승화시키려는 몸부림이었다. 그는 목마름과 더위로 힘든 나날을 보냈던 세월을 '천작지옥(天作地獄)'이라고 표현했다. 추자도를 ‘하늘이 만든 지옥’이라고 말을 할 정도라면 그보다 살기 힘든 곳은 없다는 의미일테다. 그처럼 섬은 대접을 받지 못했다.
<만언사>에서처럼 추자도는 정말 천작지옥인가. 추자도는 제주도다. 한때 전남에 속하기도 했으나 지금은 제주특별자치도의 섬이다. 섬 중에서도 가장 사람들이 많이 사는 섬이며, 면(面) 단위의 행정구역을 지닌 섬이다. 볼 것도 많고, 먹을 것도 많은 섬이다. 그럼에도 우린 그 섬에 잘 들를 수가 없다. 혹시 바람이나 세면 어쩔지 걱정부터 해야 한다. 제주도 본섬에서 면(面)으로 가는데, 무려 2시간을 가야 하는 힘든 여정을 거쳐야 한다. 제주도지만 도항선도 없는 곳이다. 면(面)이지만 도의원도 없는 곳이다.
그렇게 된 이유는 우리가 너무 추자도를 모르기 때문이다. 추자도가 아직도 유배의 땅은 아니지 않은가. 가보면 안다. 왜 제주를 찾는가. 와보면 알 것 아니던가. 추자도엘 가면 그곳은 천작지옥도 아니고, 섬이라는 이유로 홀대받아야 할 곳도 아닌 사실을 알게 된다.
추자도는 4개의 유인도(상·하추자도, 추포도, 횡간도)와 38개의 무인도 등 42개의 군도로 이뤄져 있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추자도를 딛기는 힘들다. 빠르면 1시간, 늦어도 2시간이다. 서울까지 비행기를 타고 가는 시간보다 더 오래 걸릴 경우도 있다. 망망대해라고 해야 하나. 비행기를 타는 시간보다 더 오래 걸리다니 그야말로 섬에 가기가 쉽지 않은 건 사실이다. 옛 사람들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다. 바람이 잦아지기를 기다린다는 의미로 후풍도(候風島)로 불리기도 한 그 때, 망망대해를 건넜던 선인들의 기분을 조금이라도 알 만하다.
추자도를 알려면 10번은 다녀와야 한다고 한다. 그만큼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다. 그건 쉽게 찾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추자도는 제주도이지만 제주-추자를 오가는 도항선은 없다. 다른 지방을 거쳐 가는 선박을 타야 추자도에 갈 수 있다.
하추자의 신양항으로 들어가든, 상추자의 추자항으로 들어가든 간에 제주에서 추자로 향할 때 가장 먼저 사람들을 맞는 섬이 있다. 일명 사자섬으로 불리는 수덕도다. 수덕도에서 10분쯤이면 배는 신양항에 닻을 내린다.
추자도엔 모래사장이 없다. 대신 자갈로 이뤄진 아름다운 해변이 있다. 크지는 않지만 바다가 만들어내는 소리가 일품이다. 신양항 동쪽으로 추자10경의 하나인 ‘장작평사’가 있다. 지금은 방파제 공사로 자갈밭이 매립돼 예전의 풍경만은 못하다. 그러나 또다른 자갈해변이 있다. 신양항에서 서쪽으로 가면 파도소리에 자갈끼리 부딪히며 소리를 만들어내는 곳이 있다. 일명 ‘모진이’라는 이곳은 바스락거리는 자갈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모진이에서 북쪽으로 틀면 작은예초라는 곳을 만나게 된다. 이 곳 역시 자갈밭으로, 일제 때 만들어진 진지땅굴도 덤으로 볼 수 있다.
신당(神堂) 얘기를 할 때 천주교를 들먹였다. 추자도는 천주교 신자들에겐 남다른 면이 있다. 신당 편에서 얘기했듯이 ‘황사영 백서사건’으로 순교한 황사영의 아들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황사영의 부인인 정난주(다산 정약용의 형인 정약현의 딸)가 제주로 유배를 오면서 갓난 아들 황경한을 데리고 온다. 그러나 정난주는 제주까지 황경한을 데리고 갔다가는 생명을 부지하지 못할 것 같아 추자도의 ‘몰생이끝’이라는 곳에 내려두고 떠난다. 이후 황경한은 예초리 사람인 오씨의 손에서 키워졌다. 추자의 황씨 입도조가 된 황경한은 어머니를 생각하며
위 글은 인터파크 북DB 기사 [[추자도] 제주도를 닮지 않은 또 다른 섬]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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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칼럼니스트 김형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