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칼럼

지구인에게 지배당한 외계인…눈물겨운 탈주기

듀나의 장르소설 읽는 밤

by 인터파크 북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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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작가들은 아주 쉽게 인간 혐오로 돌아설 수 있는 부류다. 물론 이 장르 밖의 작가들에게도 동족 혐오의 자격증은 있다. 하지만 SF 작가들은 그들이 갖고 있지 않은 무기가 있다. 그들은 언제든지 지구인들을 타인으로 만들 수 있다. SF 세계에서 지적 존재는 인간 이외의 형태로도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으니까. 외계 생명체일 수도 있고 인공 지능일 수도 있고 둘 다일 수도 있다.


허버트 조지 웰즈가 <우주전쟁>을 쓴 뒤로 외계인은 주로 지구를 정복하려는 악역을 맡았다. 왜 굳이 외계인이 지구까지 먼 거리를 와서 어디에나 있을 법한 자원을 악탈하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오리지널 'V' 시리즈에선 심지어 그 자원이 물이었다!) 적어도 그 수법은 지구의 폭력적인 역사에 익숙한 독자들에 어필할 수 있는 아주 쉬운 길이었다. 다들 빨갱이 공포증에 시달렸던 냉전시대엔 더 그랬다. 인공지능의 경우는 기술공포증과 연결된다. 핵폭탄이 터지는 걸 본 사람들에게 인간이 만든 지적인 존재가 결국 인간을 멸망시킬 거라는 서사는 얼마나 그럴싸하게 보였겠는가.


물론 그 뒤로 SF의 세계는 보다 다양해졌다. 여전히 타자와 창조물에 대한 공포증은 존재한다. 하지만 장르가 커지면 단순한 공포증만으로는 독자들을 만족시킬 수 없는 순간이 온다. 공산주의자와 핵폭탄의 상징을 넘어서 스스로 존재하는 다양한 종류의 외계 생명체와 인공지능을 만들 필요가 생기는 것이다.


그러는 동안 기존의 공식을 역전하려는 시도가 발생한다. 이건 이야기꾼의 세계에선 거의 자연발생적 현상에 가깝다. 익숙한 구조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니까. 선량한 지구인이 사악한 외계인의 공격을 받는 이야기에 진력이 났다고? 그럼 선량한 외계인이 사악한 지구인의 공격을 받는 이야기는 어때? 이 이야기는 만들기 쉽기도 하지만 그만큼이나 정곡을 찌른다. 우리가 아는 가장 추악한 일들은 대부분 우리의 종족인 인간들이 저질렀으니까. 추악한 폭력은 늘 인간의 얼굴을 하고 있다.


50년대에 나온 평범한 SF물에서 외계인은 철의 장벽 너머 공산주의자의 상징이었다. 그러니까 독자들이 두려워하는 인류 일부의 상징이었던 셈이다. 지구인이 악역인 작품들도 비슷하다. 단지 방향이 바뀐다. 평범한 SF 독자들이 당연시했던 '우리'인 서구의 백인 남성을 대표하게 되는 것이다. 베트남전을 겪은 서구인들에게 이런 관점의 전환은 자연스러웠다. 이제 대부분의 SF 소비자들은 이런 역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의심스럽다면 <아바타>가 얼마나 흥행에 성공했는지 보라.


얼마 전에 소개된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의 단편집 <마지막으로 할 만한 멋진 일>에 수록된 '별의 눈물'(원제는 'We Who Stole the Dream'이다. 이 애절한 제목이 살았으면 좋았을 텐데) 역시 이런 역전에 바탕을 둔 작품이다. 소설의 배경은 '꿈'이라고 불리는 지구의 우주선이고 소설의 주인공들은 조일란이라는 작은 외계 종족인데, 그들은 꿈의 지구인 승무원들에게 학대당하는 노예다. 이들은 잡일을 하기도 하지만 위안부이기도 하다. 인간 여자처럼 분장한 몇몇 조일란 여성들은 남자밖에 없는 것 같은 '꿈'의 승무원들의 성적 욕망을 만족시켜주기 위해 동원된다.


종종 비교되는 어슐러 K. 르 귄의 <세상을 가리키는 말은 숲>이 그런 것처럼 이 단편을 베트남전 비유로 읽는 것은 쉬운 일이다. 하지만 소설은 그만큼이나 이들을 성역할에 대한 비유로도 그린다. 이 이야기에서 모든 지구인들은 남자이고 조일란은 상대적으로 모두 여성처럼 존재한다. 그들이 오로지 그런 비유와 상징을 위한 틀로만 존재한다는 말은 아니지만 이를 무시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그리고 여전히 지구인의 관점이 큰 부분을 차지하는 <세상을 가리키는 말은 숲>과는 달리 철저하게 조일란 시점에서 전개되는 이 단편은 지구인 남성에게 훨씬 박하다.


이야기는 조일란 버전 '출애굽기'이다. 우연히 고향의 위치를 알게 된 주인공들이 수 년의 노력과 잔혹한 희생 끝에 우주선 조종법을 배우고 우주에 대한 지식을 얻고 결국 '꿈'을 탈취해서 지구인의 세계에서 벗어나는 과정은 한 마디로 눈물겹다.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지구인들에게 쓸데없이 감정이입하는 사람들은 없을 거라 생각한다. (또 모른다. 난 심지어 '아가씨'를 보면서 여자에게 감정이입을 하는 게 불가능해 남자악당들에게 몰입했다는 관객들의 이야기도 들었다. 어떤 사람들의 공감무능력은 종종 기괴할 정도다.)


하지만 소설은 조일란 대 지구인이라는 단순한 이분법에서 벗어난다. 이와 같은 태도는 역시 <세상을 가리키는 말은 숲>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이번에도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의 태도가 훨씬 단호하다. 중요한 것은 어느 종족에 속해있느냐가 아니라 문화와 삶을 꾸려가는 방식 자체이다. 평화로운 조일란들이 스스로를 지키고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폭력을 택했다면 그건 정당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런 폭력은 그들을 어디로 데려갈까?


위 글은 인터파크 북DB 기사 [지구인에게 지배당한 외계인…눈물겨운 탈주기]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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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칼럼니스트 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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