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독서가의 세상읽기
미국 입국 심사대에서 겪은 공포와 충격은 지금도 생생하다.
한국언론재단이 진행하는 기자 해외 연수프로그램에 뽑혀 미국을 방문했다. KBS, 중앙일보, 한겨레 등 여러 매체 기자들과 함께 말이다. 인천공항에서 뜬 비행기가 미국을 향해 날아가는 동안 내 걱정은 하나였다.
'영어를 못하는 나, 과연 미국 입국심사대를 통과할 수 있을까?'
미국은 9.11테러의 상처와 충격으로 외국인 입국심사를 까다롭게 진행했다. 한국에서 "산적처럼 생겼다"는 말을 자주 듣는 나. 미국 입국심사원이 "너 탈레반처럼 생겼는데…"라며 괜히 꼬투리를 잡을까봐 두려웠다.
게다가 내게는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고 따질 만큼의 영어 실력이 없었다. 당연히 내 걱정은 태평양만큼 깊고 짙었다. 태평양을 건너 도착한 미국 워싱턴의 공항. 입국심사를 위해 줄을 서니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이왕이면 흑인, 히스패닉 계열의 사람이 나를 심사해주길 바랐다. 소수자인 내 처지를 잘 배려해줄 거라는 근거 없는 생각을 했다. 기대는 빗나갔다. 덩치 큰 백인 입국심사원이 나를 불렀다. 내 심장은 더 쪼그라들었다. 내 얼굴과 여권을 살펴본 그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How much money do you earn a month?(당신 한 달에 얼마나 벌어?)"
용케 알아 들었다. 기쁜 마음에 바로 말했다.
"2 million dollars.(200만 달러.)"
입국심사원의 눈이 커졌다. 작은 탄성이 터졌다.
"Wow! Really?(와우! 정말?)"
"Yes!(응!)"
그의 커진 눈에 내 심장은 더 작아졌다. 그가 다시 물었다.
"What do you do?(당신 직업이 뭔데?)"
"Journalist.(기자.)"
그의 탄성이 좀 더 커졌다.
"Wow! A journalist earns 2 million dollars a month?(와우! 기자가 한 달에 200만 달러를 번다고?)"
"Yes!(응!)"
그가 왜 그렇게 놀라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가 "믿을 수 없다, 너무 많은 돈을 번다"고 말했다. 긴(?) 그의 말을 알아 들을 수 있어서 무척 기뻤다. 들뜬 마음에 나는 아는 영어 단어를 총동원해 그에게 친절하게(?) 설명했다. 대략 이렇다.
"헤이, 한국에서 '투 밀리언 달러'는 돈도 아니야! 노동자 월 평균 임금에서 한참 모자란 아주 작은 돈이라고. 왜 그렇게 놀라고 그래? 고작 '투 밀리언 달러' 갖고…"
"Wow!!!(와우!!!)"
그의 탄성이 더 커졌다. 하지만 얼굴은 어이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는 작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You're a liar!(넌, 거짓말쟁이야!)"
그는 내게 손짓으로 옆으로 비켜 서 있으라고 명령했다. 나는 영문도 모른 채 가만히 서 있었다. 나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입국심사가 지연됐다. 길게 늘어선 줄을 보니 미안했다. 무엇보다 쪽팔렸다. 입국심사원은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얼마 뒤 동양인 여자 한 명이 저쪽에서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그를 보고서야 깨달았다.
"아, 미안미안! '투 밀리언 달러'가 아니고 '투 밀리언 원(200만 원)'. 내가 실수했어. 정말 미안."
굳어진 그의 얼굴은 펴지지 않았다. 연봉도 아니고 월급으로 200만 달러, 약 20억 원을 받았다는 내 말에 그는 얼마나 황당했을까. 그것도 200만 달러는 한국에서 돈도 아니라고 주장했으니, 그가 날 얼마나 이상한 사람으로 생각했을까. 그가 내게 명령조로 말했다.
"If you change 2 million won in dollars, tell me how much it costs!(200만 원을 달러로 바꿔서 말해봐!)"
갑자기 머리가 하얘졌다. 환전도 안 되고, 무엇보다 그걸 다시 영어로 설명하는 게 막막했다. 나는 입을 벌인 채 가만히 그를 바라봤다. 그도 말없이 나를 바라봤다. 잠시 뒤 그가 한심하다는 듯이 물었다.
"Who are you with?(너 누구랑 왔어?)"
나는 말 없이 손으로 뒤쪽을 가리켰다. 나와 함께 태평양을 건너온 다른 매체 기자들이 입국심사원에게 손을 흔들어줬다. 그 덕에 나는 추방당하지 않고 입국심사대를 통과했다. 언어의 장벽은 국경의 터널만큼 어둡고 답답했다. 지금은 추억이지만, 그때는 정말 식은땀 나는 일이었다.
말이 통하지 않을 때의 당혹스러움, 내 처지를 설명할 수 없는 답답함. 이것은 과연 언어가 다른 나라 국경을 넘을 때 겪어야 하는 찰나의 불편함에 불과할까? 그렇다면 다행이다. 문제는 국경을 넘지 않더라도, 같은 언어의 국가 안에서도 "말의 감옥"에 갇혀 사는 이들이 많다는 점이다. 내가 그동안 취재하면서 만나온 사회적 약자들이 그렇다.
가난과 가정환경 탓에 많이 배우지 못하고, 장애가 있는 많은 분들은 상대적으로 자기 표현에 서툴다. 자기 권리가 부당하게 침해당하거나, 억울한 사연이 있어도, 의견을 조리 있게 설명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감정을 앞세워 정작 중요한 견해를 밝히지 못하는 사람도 여럿 만났다.
처음엔 답답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이는 이들의 잘못으로 돌릴 수도 없다. 한국 사회를 가만히 살펴보자. 과연 말은 누가 하는지, 마이크는 누구의 몫인지, 확성기에서는 어떤 이들의 육성이 퍼지는지 말이다.
학교에서는 교장-교사 순으로 말을 많이 하고, 교실 안에서는 공부를 잘 하거나 싸움을 잘 하는 학생이 말을 하는 게 상식으로 굳어졌다. 직장에서는 사장-부장-팀장이 주로 말을 하고, 정부에서는 대통령이 주로 마이크를 잡는다.
우리 사회가 사회적 약자들에게 발언권을 준 적이 있을까? 있다면 과연 몇 번이나 될까? 약자들이 말수가 적고, 표현에 서툴고, 억울한 일을 당해도 적극적으로 자기를 변호하지 않는 건 이런 사회 분위가 탓인지도 모른다. 그들이 입을 안 여는 게 아니라, 우리가 강제로 입을 닫아버린 측면도 있다.
약자들의 침묵,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이들이 범죄에 연루되거나, 억울한 누명을 썼을 때는 문제가 심각해진다. 사회적 약자들은 억울한 사정이 있어도 수사기관에서 적극적으로 말을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일상에서도 조리 있게 말을 못하는 이들이 거대한 수사기관과 맞닥뜨렸을 때, 그 심정을 어떠할까. 적극적 방어와 변론? 기대하기 어렵다.
자신이 하지도 않은 범죄를 했다고 허위자백을 하는 사람들 중엔 사회적 약자들이 많다. 살인을 했다고 허위자백을 하는 사례도 있다. 적극적으로 알리바이를 주장하는 등의 방어권을 행사하지 않은 채, 저지른 죄보다 중한 처벌을 받는 사람도 있다. 누군가는 이들의 편에 서서, 공감하면서 변론을 해줘야만 한다.
국선전담변호사 신민영이 쓴 <왜 나는 그들을 변호하는가>(신민영/ 한겨레출판/ 2016년)는 이런저런 범죄에 연루된 가난한 사람들, 많이 배우지 못한 이들, 당연히 거액을 들여 사선 변호사도 선임할 수 없는, 그래서 더욱 누군가 대신 말을 해줘야 하는 사람들의 눈물 나는 사연이자 법정 분투기이다.
책에 따르면 2015년 전체 범죄자의 44%는 하류층이었다. 부의 양극화와 빈곤에서 범죄가 탄생하는 건 아닌지 생각해볼 문제다. 책에서 신민영 변호사는 말한다.
수사의 왕은 자백, 자백의 왕은 합의, 그렇다면 합의의 왕은 뭘까? 엄마다. 합의가 난항을 겪고 있는 피고인에게 항상 엄마가 있느냐고 물어보곤 한다. 합의가 되지 않을 때 피고인의 엄마가 등판하면 합의가 잘 된다.
피고인 본인보다 훨씬 더 합의에 절박하게 매달리고 피해자에게는 피고인 본인이 찾아가는 것보다 더 큰 동정심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상당수 국선 피고인에게는 엄마가 없다. 가족도 면회 오는 지인도 없는 경우가 많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마더'는 살인 혐의를 받는 지적장애 아들의 결백을 입증하기 위한 엄마의 분투를 그린 영화다. 감독은 영화를 통해 모성에 내재한 광기를 그리고 싶었다 말했지만, 국선변호사인 내가 볼 땐 아무리 봐도 형사재판에서 엄마의 중요성을 그린 영화다. 영화 마지막 즈음 엄마 역의 김혜자가 하는 대사 "너 엄마 있니?"는 나도 매일 외치고픈 말이다.
많이 공감한다. 내가 그동안 취재했던 많은 사회적 약자들은 돈 때문에 범죄를 저질렀고, 돈이 없어 사선 변호사도 못 구했다. 최후의 보루, 그들에겐 엄마조차 없었다. 스스로 말하지 못하는 자식을 위해 온몸으로 싸우는 엄마.
나는 다른 매체 기자들이 손을 흔들어 준 덕에 '국경'을 통과했지만, 손 내밀어 줄 친구 하나 없는 약한 사람들은 이 땅에서 말의 감옥에 갇혀 산다.
위 글은 인터파크 북DB 기사 ['말의 감옥'에 갖힌 사람들... 그들은 왜 입을 닫았나]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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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칼럼니스트 박상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