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된 말들의 위로
<크눌프> (헤르만 헤세/ 민음사/ 2004년)
동방의 임금이 인간에 대해 알고 싶어 현자에게 500권의 책을 가져오라고 명했단다. 그런데 막상 500권을 읽으려니 나랏일이 너무 바빠 읽을 시간이 없는 거다. 그래서 임금은 요약해오라는 명을 내린다. 20년 후 현자가 인간의 역사를 50권으로 줄여서 가져왔다. 임금은 자신이 너무 늙어 무거운 책을 들 수 없다며 더 줄여오라고 한다. 그로부터 다시 20년이 흘렀다. 백발이 된 현자가 임금이 원한 지식을 한 권의 책으로 줄여왔지만 병상에서 죽어가고 있던 임금은 그 책마저 읽을 수 없었다. 그러자 현자가 이렇게 딱 한 줄로 줄였다. "사람은 태어나서, 고생하다, 죽는다." 작가 페터 한트케는 <소망 없는 불행>(민음사) 에서 그 고생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짚었다. "피곤하고, 기진하고, 병들고, 죽어가고, 죽고."
몇 년 전, 교외에 갔다가 커다란 은행나무를 보았다. 수령이 200년이라는 팻말을 보자 갑자기 가슴이 뜨거워지며 울음이 치솟았다. 나무에 기대며 속말로 물었다. 나는 40년 산 것도 이렇게나 힘들었는데 너는 얼마나 힘들었니. 나무가 고개를 끄덕이며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것 같았다.
그런 날이 있다. 처음 본 것도 아닌데 처음 발견한 것처럼 그 무엇의 존재가 내 마음의 길을 타고 들어오는 날. 그날이 그랬다. 나무와 헤어져 얼마쯤 가는데 백제의 집터라며 표시해놓은 곳이 눈에 들어왔고 발길이 끌려 들어갔다. 크고 작은 돌들만 있었다. 그리고 그 돌은 우리가 뒷산이든 앞산이든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돌과 다르지 않았다.
주변의 흔하디 흔한 돌멩이도 알고 보면 수천 년 전부터 있었던 것일지 모른다. 그날부터였다. 피곤하고 기진할 때면 나무와 돌들이 많이 사는 산에 오른다. 그리고 이 선택에는 늘 후회가 없었다. 어김없이 위로를 받고 에너지를 얻는다. 나는 아주 오래 오래 산 나무와 돌들을 하염없이 존경한다.
왜 이토록 나무와 돌을 좋아할까 생각해보면 스스로 움직일 수 없는 존재이면서 오래 생존했다는 것, 그리고 말없이 기운을 주는 데 있는 것 같다. 그들은 태어나고 고생하고 죽고, 피곤하고 기진하고 병들고 죽어가고 죽는, 인간의 한계와 전혀 다른 차원의 세계를 살아가는 실로 거대한 존재들이지만 고요하다.
레이첼 서스만이 사진을 찍고 글을 쓴 <위대한 생존 - 세상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은 나무 이야기>(윌북)라는 책이 있다. 최소 2천 년 이상 산 나무들을 찾아 10년 동안 세계 곳곳을 취재했고, 그 노고 덕에 수천 살에서 수만 살에 이르는 각종 식물을 가만히 앉아 구경할 수 있다. 참 고마운 일이다. 이 책에서 내게 가장 큰 감동을 준 나무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 리버사이드에 있는 '파머 참나무(Palmer’s Oak)'였다. 수령이 1만3천 년, 파머 참나무는 마스토돈, 스밀로돈, 북미 낙타 등이 차례대로 멸종하는 것을 지켜봤고, 주택 단지가 개발되고 시멘트 공장들이 들어서고 조립식 주택 자재들이 들락거리고 오프로드 차량이 오가는 것을 모두 지켜봤다. 그러나 아직도 봄이 돌아오면 어김없이 새순을 틔우고 꽃을 피운다.
1만3천 년 동안 살아남았으니 당연히 정부에서 문화재로 대우할 것 같은데 파머 참나무가 있는 산등성이로 올라가는 길은 인근 공장에서 내다버린 쓰레기와 가구들로 너저분하다고 한다. 또 그렇게 오래 산 나무라면 키도, 둘레도 아주 커다랄 것 같은 데, 웬걸! 키는 작고 옆으로 가지만 무성하게 난 수풀관목이다.
우리가 아는 그 참나무가 아니라 우리나라 산등성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게 생겼다. 저자는 말한다.
"이렇게 잘 알아볼 수 없는 곳에, 잘 알아볼 수 없는 형태로 존재한다는 점이야말로 파머 참나무가 현재까지 생존할 수 있었던 비결일 것이다."
꼼짝없이 그 자리에서 그렇게 숨죽여 1만3천 년이나 산 나무, 그가 살아온 생을 상상하면 내 슬픔이 조금은 반듯하게 펴진다.
가끔은 이렇게 거대한 존재 앞에서 자신의 슬픔을 의도적으로 축소시킬 필요가 있다. 그렇게 감정을 지우고 나면 순리에 맡겨도 좋으리라는 마음이 먹어진다.
바람만 불어도 허리를 굽히던 갈대였다. 그런 갈대를 보고 참나무는 비웃었다(앞서 소개한 파머 참나무가 아니라 진짜 참나무 이야기다). 땅 속 깊숙이 뿌리를 박고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 참나무는 실로 강인했으며 세상 그 어떤 것도 자신을 굽힐 수 없다고 믿었다. 그러나 태풍이 참나무를 뿌리째 뽑아버렸고 무참히 강물에 휩쓸리는 동안 갈대가 강둑에 여전한 모습으로 서있는 것을 본다. 묻는다.
"갈대야, 바람이 불어올 때 너는 어떻게 부러지지 않았니? 너는 그렇게 작고 약하고, 나는 이렇게 강하고 자신 있는데 말이야."
갈대가 답한다.
"바로 그것이 바람이 나를 해치지 않은 이유야. 나는 바람이 지나갈 때까지 납작 굽히고 있었지. 하지만 너는 꼿꼿이 서서 지나가는 바람을 막으려고 했어. 아무도 바람을 멈추게 할 수는 없어. 그것은 보내지는 곳으로 가야 하니까."
이솝 우화에 나오는 <참나무와 갈대> 이야기다. 사실 나는 이런 류의 이야기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납작 굽혀 태풍을 피하고 살아남은 갈대보다 태풍에 맞서 장렬히 전사하는 참나무에게 훨씬 끌린다. 하지만 유의하자. 참나무는 투사가 아니고 바람이 군국주의나 독재정치도 아니다. 바람은 순리를 의미한다.
우리의 많은 미련과 슬픔, 원망은 흘러가는 것을 흘러가도록 내버려두지 못하고, 떠나는 것을 떠나도록 내버려두지 못해 생겨난다. 정확히 말하면 언제 더 노력해야 하고 또 언제 내버려둬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그래서 더 노력해야 할 때 내버려둬서 기회를 놓치고, 내버려둬야 할 때 노력해서 헛된 공만 쌓는다. 순리를 알지 못하는 데서 오는 미련함이다. 대체 어디까지 노력해야 하고 어디부터 순리에 맡겨야 하는 걸까.
헤르만 헤세가 청년 시절 자신의 자화상과도 같은 크눌프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꽃들은 다른 꽃들에게 가고 싶은 마음에 자신의 향기와 씨앗을 보내지. 하지만 씨앗이 적당한 자리에 떨어지도록 꽃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어. 그것은 바람이 하는 일이야. 바람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자신이 원하는 곳에서 이곳저곳으로 불어댈 뿐이지." (p.79)
또 다른 이야기 하나 더 보탠다. 비틀즈의 해체가 임박했을 즈음 폴 매카트니는 어떻게든 팀을 유지하고 싶었지만 존 레논의 마음을 돌이킬 방법이 없었다. 며칠을 괴로워하던 중 돌아가신 어머니가 꿈에 나타났고 이런 말을 들려주었다. "Let it be." 그는 잠에서 깨어 곡을 만들었고 비틀즈가 해체할 때도 아내 린다가 세상을 떠날 때도 같은 노래를 불렀다.
"Let it be, There will be an answer(내버려두어라. 그곳에 답이 있을 것이다)."
흘러 가는대로 두는 것,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속 모르는 누구의 눈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책임이나 아무것도 못하는 무기력으로 보일지 몰라도 정작 당사자는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중이다. 흘러 가는대로 두려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부디, 바람이 하는 일은 바람에게 맡기자. 너무 애쓰지 말자.
위 글은 인터파크 북DB 기사 [그것은 바람이 하는 일이야]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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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칼럼니스트 유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