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칼럼

[가파도] 고인돌 천국? 청보리의 천국!

섬 속의 섬

by 인터파크 북DB


※ 가고 싶어요. '늘'이 아니라 '때때로' 말이죠. 섬에요. 수많은 섬 중 우리나라에서는 제주도가 가장 큽니다. 많은 이들이 몰려듭니다. 몰려오는 것에 그치지 않고 아예 눌러 앉습니다. 좋아서겠죠. '보물섬'이라서 그런가요? '보물섬' 제주도엔, 제주도만 있는 건 아닙니다. '아주 작은 보물섬'들이 점을 찍고 있습니다. 그 섬에 저랑 가보실래요? – 필자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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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은 제각각이다. 육지가 손에 잡힐 듯 보이는 곳도, '육지는 어드멘고'라며 시어(詩語)나 읊으면 제격인 섬도 있었다. 그러나 섬에서는 한가지 정확한 답이 있다. 섬은 육지인들에게만 섬일뿐, 섬에 사는 사람들에겐 섬이 아니란 사실이다. 섬은 살아있는 삶의 터전이며, 뭍에 갔다가도 다시 되돌아와야 하는 고향이기에 섬사람들에겐 '떠나고 마는' 섬이 아니었던 게다. 그들에게 섬은 떠남의 표상도, 외롭다고 하면 불현듯 떠오르는 단어도 아니었다. 떠남이나 외로움은 섬 기행을 하는 우리처럼 불쑥 찾아온 사람들에게만 어울리는 말이다.

가파도. 하루 2차례 가파도로 가는 배편이 있으나 가파도에 들르겠다며 나서는 이는 많지 않다. 그래서일까. 정말 가파도는 외로운 섬 같다. 아침 일찍 가파도로 향하는 배편에는 띄엄띄엄 몇 사람만 앉아 있을 뿐이다. 섬과 섬들이 하나 둘 떼어져 있듯 가파도행 배를 탄 군상(群像)은 다들 섬들처럼 낯설기만 하다. 그러나 배가 모슬포 항구를 떠나면 그런 낯섦이나 외로움은 가시고 만다. 가파도에서 또다른 섬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한라산이 보이고, 산방산·송악산 등이 친구들처럼 다가온다. 한라산을 품고 있는 그대가 섬인지, 한라산을 바라보는 이곳이 섬인지 분간이 되질 않는다.

가파도엔 산도 없고 단애(斷崖)도 없다. 그러나 함부로 하지는 못한다. 물살이 센데다, 숱한 여가 묻혀 있는 곳이라 선박을 움직이는데 애를 먹기도 한다.

이 섬에 사람이 산 지는 그다지 오래지 않다. 1842년에야 사람이 들어왔다고 한다. 이유는 헌종 6년(1840) 영국군함 한 척이 이 섬에 상륙해 흑우를 약탈한 사건 때문이다. 2년 뒤에 제주목사는 흑우장을 없애고, 인근 주민들에게 섬에 들어와서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했다. 덕분에 우린 가파도를 즐기게 됐다. 물론 사람의 흥겨움도 있다. 초록을 띤 청보리의 계절 5월엔 더더욱 좋다. 가파도를 보기에 그 때가 가장 좋다.

가파도는 크게 상동과 하동으로 나눈다. 상동은 북쪽에 위치해 있으며, 상동포구를 통해 여객선이 오간다. 상동과 하동의 중간쯤에는 가파초등학교가 있다.

가파도 사람들은 지난 1962년 개경(開耕) 120주년 기념비를 세웠다. 개경(開耕), 즉 밭갈이의 시작이 현재의 가파도를 있게 만들었다. 19세기에 사람이 들어와 살았다고 하니, 올해로 170년을 조금 넘긴, 사람이 살아온 역사가 짧은 섬이다.

가파도는 예전엔 '고인돌의 천국'으로 알려졌다. 고인들을 닮은 거석이 100여개 흩어져 있기에 그렇게 불러왔다. 가파초등학교 남서쪽에 이런 거석이 특히 많다. 밭담의 경계석 역할을 한 것도 있다. 그러나 국립제주박물관 조사 결과 고인돌이 아님이 드러났다. 거석을 들어올리고, 또 다른 거석을 들어올리고 했는데 거석 밑에서는 아무런 유물도 나오지 않았다. 고인돌이라면 최소한의 유적은 나와야 하는데 그러질 못했다. 결국 판정단격인 국립제주박물관은 '고인돌 추정'이라는 것에도 손을 들지 못했다. 지난 2009년과 2010년 등 2차례 실시한 조사 결과는 모두 '고인돌 아니었음'이다. 그럼 이처럼 많은 고인돌 닮은 돌은 어디서 왔나. 가파도에만 있던 또 다른 거석문화였을까.

우선은 고인돌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가파도를 걷는 게 낫다. 상동포구에 내려 해안도로를 따라 걸어가면 큰 바위들이 사람을 맞는다. 나름대로 이름을 가진 바위들을 찾아보자.

태풍과 인연이 있는 바위가 2개 있다. 까마귀돌과 장택코왕돌은 태풍을 부른다는 돌이다. 장택코왕돌은 상동포구에서 서쪽으로 걷다보면 나오며, 까마귀돌은 하동포구에서 바닷가쪽에 있다.

얘기를 들어보자. 1974년 8월 제주해운국에서 해안 표시를 한다며 가파도에 들어와 하얀 페인트칠을 한 일이 있다. 그 때 직원 한 사람이 까마귀돌에 올라갔다. 그후 3일 뒤 태풍이 불었다고 한다. 장택코왕돌과 관련된 이야기도 있다. 육지에서 섬을 찾은 학생들이 이 왕돌에 올랐는데 갑자기 날씨가 거칠어지고 파도가 일어 배가 뒤집힌 일이 있다고 한다. 장택코왕돌은 건드리면 쓰러질 것만 같은데 용케도 붙어 있다. 이 일대는 자갈에 파도가 부딪히는 소리도 일품이다.

커다란 돌은 또 있다. 마치 고인돌이 널려 있듯 큰 돌을 해안에서 만나게 된다. 갬주리왕돌은 가파도 동쪽 해안도로변에 있다. '갬주리'는 '개미'의 방언으로, 이 곳의 모양이 개미를 닮았다고 붙은 이름이다. 이들 외에도 고냉이돌, 메부리돌, 사계돌 등이 눈을 사로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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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갈이, 즉 개경(開耕). 1962년 가파도에 개경 120주년 기념비를 세울 때만 하더라도 가파도 인구는 1316명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200명 되나마나다. 젊은이들이 많이 빠져나가면서 연령 분포도 고령화 돼 있다. 그나마 삶은 넉넉한 게 이 곳 주민들에겐 위안이다. 그렇다고 이대로 섬을 꾸릴 순 없다. 새로운 변화가 필요한 때다. 그들에겐 관광수요의 창출이 핵심이다.

문제는 상동포구로만 여객선이 다니는데 있다. 게다가 가파도는 밀려오는 쓰레기는 왜그리 많은지. 쓰레기를 감당하기가 벅찰 정도이다. 전 주민을 동원해 3시간을 치워도 그 때뿐이라고 한다.

최근에야 청보리가 뜨면서 봄철 반짝 가파도를 찾는 이들이 그야말로 인파가 된다. 그러나 그 때가 지나면 가파도의 인기는 시들하다. 마라도처럼 ‘국토 최남단’이라는 타이틀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그런 게 없다. 하지만 거꾸로 생각하면 가파도는 여전히 미개척 지역이다.


위 글은 인터파크 북DB 기사 [[가파도] 고인돌 천국? 청보리의 천국!]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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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칼럼니스트 김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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