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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Mar 21. 2017

도종환 “시인이 왜 진흙탕에 가 있느냐고?”

<그대 언제 이 숲에 오시렵니까> 개정판 출간한 도종환 시인 인터뷰

※ 3단계의 점층적 형식으로 선보이는 ’프리즘 인터뷰’입니다. 삼각형의 틀을 통해 빛을 다채롭게 보여주는 프리즘처럼 작가와 책에 대한 이야기를 쉽고 다양하게 보여드리고자 합니다. - 기자 말


[프리즘①] 도종환의 말, 말, 말


- “여기는 원수와 회의를 하고, 악마와 밥을 먹고, 요괴와 어울려 사는 곳이에요. 굉장히 힘듭니다. 사회에 진 빚을 갚기 위해 인생의 십일조를 바치는 시간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 “계속해서 개혁적이고 진보적인 세력이 집권할 것을 생각해야죠. 누가 대통령이 되는지만 볼 것이 아니라, 시대적 요구를 어떻게 담아낼 것인지를 보는 게 중요해요.”


- “국립한국문학관이 안 된 것은 박근혜 전 대통령 때문입니다. 물론 과열경쟁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중단하라는 것은 대통령 지시였다고 해요.”


[프리즘②] “늘 청안하시길 바랍니다”


▷ 도종환은 누구 : 설명을 하자니 새삼스럽다. 시인 도종환. 도종환은 그냥 시인이다. 산방에서 구도의 길을 가든, 여의도 국회에서 ‘요괴’와 맞서 싸우든. 1955년 충북 청주에서 태어나 <고두미 마을에서> <접시꽃 당신> 등의 시집과 <꽃은 젖어도 향기는 젖지 않는다> 등의 산문집을 냈다. 백석문학상, 신동엽문학상, 정지용문학상 등 상도 여럿 받았다. 2012년 19대 총선 때는 비례대표로, 2016년 20대 총선 때는 청주시흥덕구에 출마해 당선됐다. 지난해 말부터 ‘최순실게이트’와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을 추적해 여러 건의 폭로를 하면서 ‘촛불시민혁명’에 일조했다.


▷ 어떤 책을 냈나 : 도종환 시인은 이 책의 제목을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라고 했다. <그대 언제 이 숲에 오시렵니까>(난다/ 2017년 개정판). 2008년에 나온 책을 새롭게 출간했다. 충북 보은 깊은 산골에 있는 산방으로 들어간 것이 2003년. “인생에서 큰 쉼표를 찍은” 그때 “외롭고 쓸쓸했지만 평화롭고 고요한 시간”을 보내며 쓴 글들이 이 책에 담겨 있다. 공생과 넉넉함의 땅인 숲을 그리면서, 오늘도 불안과 목마름의 땅인 사막에서 살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이 책의 질문은 무겁게 다가온다. 성찰과 사유의 시간을 통해 독자에게 ‘청안(淸安)한 시간’을 선물하는 책.


▷ 인터뷰 뒷이야기 : 3월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도종환 시인을 만났다. 도종환 시인은 최순실게이트와 블랙리스트 사건 추적에 매달려온 지난 6개월을 한마디로 “격동의 시간”이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3월 10일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파면’ 이후 오랜만에 시골집에 잠깐 다녀왔다면서, 아직도 약간은 지쳐 보이는 얼굴로 씨익 웃었다. 그 순간 가슴에서 올라오던 진한 애틋함. 앞으로도 이곳 사막에 남아 “격동의 시간”을 보내달라고 격려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이제 그만 사막을 벗어나 숲으로 돌아가시라고 만류할 수도 없는 참 애매한 마음이었다.




[프리즘③] 일문일답 들여다보기


Q <그대 언제 이 숲에 오시렵니까> ‘작가의 말’에 “그대가 사막에 있다면 다시 숲으로 오시도록 부르고 싶기 때문입니다”라고 개정판 출간의 이유를 남기셨습니다. 어떤 뜻인지 더 듣고 싶습니다.


사막에서는 길이 어딘지 몰라요. ‘나를 따르라’ 하는 사람만 열심히 뒤따라가야 살 수 있다고 생각해요. 위기의식, 불안, 두려움, 목마름. 지금 도시의 삶이 그렇잖아요. 하지만 숲에서는 항상 공존해요. 네가 있어서 내가 있고, 너와 나의 생명의 무게가 다르지 않아요. 여유, 넉넉함, 공생. 우리가 태어난 곳은 숲이고, 죽어서 묻혀야 할 곳도 숲이에요. 그런데 지금 제가 숲을 떠나서 사막에 있기 때문에, 이 책을 다시 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대 언제 이 숲에 오시렵니까”라는 책 제목은 제가 저한테 하는 질문이에요. 많은 사람들이 자기한테 이런 질문을 하고 있을 거라고 봐요.


Q 산방에 들어가신 것이 2003년, 그곳에서 쓴 글을 모아서 이 책이 처음 나온 것이 2008년입니다. 이번에 개정판을 내시면서 원고를 보태고 빼면서 새로 만들었다 들었습니다. 산방에서 쓴 글들을 지금 서울 여의도의 국회에서 다시 읽는 소감이 어땠을지 궁금합니다.


이 글을 쓰던 시절이 제 인생에서 참 청안하고 좋았던 시절이에요. 인생에 크게 쉼표를 찍었던 시절이죠. 혼자 산방에서 외롭고 쓸쓸하게 살았거든요. 그런데 그러는 동안 세상을 다시 보고 숲을 다시 알게 됐어요. 성찰과 사유의 시간을 가졌기 때문에, 외롭고 쓸쓸했지만 평화롭고 고요한 시간이었죠. 그때 쓴 글들을 지금 다시 읽으면서, 제가 다시 고요해지는 것을 느껴서 좋았습니다.


Q ‘사람도 저마다 별입니다’라는 제목의 글에 있는 변두리 삶 이야기, 뭉클했습니다. 시인의 자기 규정이 담긴 글이라고 생각했는데요, ‘변두리 삶’이라는 말의 의미에 대해 직접 듣고 싶습니다.


제가 살던 곳은 충북 보은군 내북면 법주리 깊은 산골이에요. 거기 피는 꽃들이 참 예쁜데, 그 꽃들이 ‘나는 왜 서울에서 피지 못하고 이렇게 변두리에 피어 있을까’라고 생각할까요? 인간만 그렇게 생각해요. 자연에서는 자기가 뿌리 내리고 있는 곳이 중심이에요. 핵심은 중심에 피어 있는지 변두리에 피어 있는지가 아니라 ‘얼마나 아름답게 피어 있다가 가는지’예요. 자연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이 그거죠. 내가 있는 곳이 중심이에요. 내가 있는 곳에서 아름답게, 뜨겁고 치열하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저는 원래 충청도 변두리 사람이라 그런 생각을 해요.(웃음)


Q ‘생의 한파’라는 제목의 글에는 “고통 속에서 만나는 기쁨”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겨울 찬바람”과 “혹독한 밤공기”에도 감사한다고 하셨죠. 최근 몇 년간 국회의원으로 “겨울 찬바람”을 맞고 싸우며 지내고 계십니다. 그 와중에도 “고통 속에서 만나는 기쁨”을 느끼는 때가 있으신가요?


우리 사회의 갈등을 다 여기(국회)다 몰아넣고 해결하라고 해요. 이곳의 하루는 갈등에서 출발해요. 국민들끼리는 도저히 해결되지 않는 일들을 여기다 갖다 놓고 싸워서 해결해달라고 하는데, 그래서 싸우고 있으면 ‘왜 만날 싸움만 하냐’고 또 뭐라 하죠.(웃음) 여기는 원수와 회의를 하고, 악마와 밥을 먹고, 요괴와 어울려 사는 곳이에요. 굉장히 힘듭니다. 이게 다 내 업장을 소멸하는 일인가 보다 생각하죠. 스스로 거듭나기도 하고, 내가 모르던 내 안의 가능성을 발견하면서 놀라기도 하는 삶을 삽니다. 사회에 진 빚을 갚기 위해 인생의 십일조를 바치는 시간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Q ‘시인 도종환’이 ‘국회의원 도종환’이 되면서, 많은 분들이 ‘시인 도종환’을 잃게 될까봐 걱정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걱정 말라는 듯이 지난해 가을 <사월 바다>라는 열한 번째 시집을 선보이셨습니다. ‘시인의 말’에 “구도의 길과 세속의 길은 서로 달라 보이지만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라고 쓰셨는데, 어떤 마음인지 조금 더 듣고 싶습니다.


법정 스님이 하신 말씀이에요. ‘명상의 길과 사랑을 실천하는 길이 다르지 않다. 지혜를 구하는 길과 자비를 실천하는 길은 다르지 않다.’ 꽃 한 송이를 바라보는 연민과 용산참사 희생자들을 바라보는 연민은 같은 거라고 보거든요. 그리고 세월호 참사로 자식을 잃은 부모들을 조롱하고 욕되게 하는 사람들을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 불의에 대한 그 분노가 자비와 먼 감정일까요? 저는 아니라고 봐요. 그 분노와 연민으로 이 일(국회의원)을 하고, 글을 쓰는 거죠.


시인이 여기(국회) 와 있으면 왜 진흙탕에 가 있느냐고, 타락했다, 끝난 거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저희 시골집 연못에 수련이 피어 있어요. 저는 수련에게 ‘너는 그렇게 고운 꽃을 피우면서 왜 진흙탕 속에 들어가 있니?’라고 질책하지 않아요. 진흙은 수련의 현실이에요. 거기 뿌리 내리지 않으면 안 되는 운명인 거죠.


Q 이순의 나이를 넘어섰습니다. 시력(詩歷)도 30년을 넘었고요. 인생의 절반을 시인으로 살아온 셈입니다. 품고 있는 문학적 화두들도 그동안 아마 자연스레 조금씩 변화해왔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세상을 바르게 바꾸고자 하는 염원과 문학적 위의를 잃지 않고자 하는 태도, 두 가지가 하나가 되는 길은 무엇인지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고민하고 있어요. 그 두 가지가 조화와 일치를 이루는 지점에 아직도 도달하지 못했다고 생각하죠. 오래오래 남는 좋은 시 한 편을 쓰는 게 굉장히 중요해요. 한용운, 윤동주 같은 시인들이 시집을 열한 권씩 냈나요? 아니죠. 그런데 딱 한 권의 시집 안에 ‘님의 침묵’이 있고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있잖아요. 저는 그 한 편의 시를 쓸 때까지 앞으로 열두 번째 시집, 열세 번째 시집을 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못 쓰고 죽을지도 모르고요.(웃음)


Q 정치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먼저 소감을 안 들을 수가 없겠습니다. ‘촛불시민혁명’의 역사적 순간을 함께하신 소감 말입니다.


촛불시민혁명은 반드시 성공해야 돼요. 프랑스혁명을 성공한 뒤에 그 자부심이 수백 년간 프랑스를 밀고 왔거든요. 우리는 성공한 혁명의 역사를 갖지 못했어요. 촛불시민혁명은 정말로 많은 시민들이 주체가 되어 나서서 불의하고 부패하고 부정한 정권을 몰아내는 데까지 왔거든요. 공정하고 깨끗한 사회, 상식과 원칙이 통하는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큰 힘이 될 겁니다. 그러려면 반드시 정권교체 해야 돼요. 정권교체를 통해서 우리나라를 조금씩 조금씩 더 개혁적으로 끌고 가면, 촛불시민혁명은 우리 민족에게 엄청 큰 자부심으로 남는 혁명이 될 거예요.


Q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으로 대선 시계가 바쁘게 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우리에게는 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첫 직선제 대통령 선거에서 군부 출신의 노태우 정권을 탄생시킨 아이러니한 경험이 있습니다. 두 달 안에 새 대통령을 뽑아야 하는데요, 촛불시민혁명을 성공으로 마무리 짓기 위해서 앞으로 두 달 동안 무엇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는지요?


‘크게 보자’고 얘기하고 싶어요. 20년, 30년 이 나라를 개혁적인 나라로 밀고 가야죠. 민주세력 안에서도 ‘누구는 대통령이 되면 안 돼’, ‘나는 쟤네들을 반대하는 연대야’ 같은 모습들이 나오는 건, 우리 사회가 근시사회라서 그래요. 멀리 봐야 됩니다. 정권교체 해서 5년만 개혁하면 세상이 다 달라지나요? 민주세력이 정권만 잡으면 민주주의가 바로 오나요? 아니잖아요. 수십 년, 수백 년도 걸리는 길이에요. 계속해서 개혁적이고 진보적인 세력이 집권할 것을 생각해야죠. 누가 대통령이 되는지만 볼 것이 아니라, 시대적 요구를 어떻게 담아낼 것인지를 보는 게 중요해요.




Q 국립한국문학관 설립 등의 내용을 담은 문학진흥법을 직접 발의하고 통과시켰고요(2016년 8월 시행), 최근에는 도서관법 개정안도 발의하셨습니다(2017년 2월). 문학과 출판의 토양을 다지기 위해서 앞으로 어떤 쪽으로 더 힘쓰실 것인지 들어보고 싶습니다.


문학 진흥, 출판 진흥, 도서관 지원, 이 세 가지는 함께 굴러가야 돼요. 출판이 살고 도서관이 늘어나고 작가들이 좋은 창작 여건을 갖는 게 책 읽는 사회를 만드는 길이죠. 공공도서관 숫자가 지금 천 개가 조금 안 되는데, 점점 늘릴 거예요. 좋은 책이 나왔을 때 공공도서관이 한 부씩 소장하는 것으로만 초판이 다 판매될 수 있다면, 조금 더 자신감 있게 출판을 할 수 있지 않겠어요? 당장은 송인서적 부도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중요하고요, 문인들의 일자리 문제도 중요합니다.


그리고 블랙리스트 사건 같은 것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죠. 이명박 정권 때는 ‘지원을 하되 간섭도 한다’였어요. 박근혜 정권 때는 ‘지원은 안 하고 간섭만 한다’였고요. 원래는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게 제일 좋잖아요. 저는 ‘지원을 하면서 그들과 함께 문학 진흥을 위한 일들을 손잡고 한다’는 방향으로 정책을 잡고 있습니다.


그리고 국립한국문학관이 안 된 것은 박근혜 전 대통령 때문입니다.(2016년 6월 문화체육관광부는 “지자체 간 소모적인 유치 경쟁”을 이유로 국립한국문학관 추진을 잠정 “무기한 중단”했다. - 기자 주) 블랙리스트 문제를 추궁해나가는 과정에서 전직 문체부 고위 관계자한테 들었어요. 제가 예산 480억 원을 세워놨거든요. 물론 과열경쟁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중단하라는 것은 대통령 지시였다고 해요. (기자 : 이유가 뭘까요?) 제가 블랙리스트에 들어 있죠. 국립한국문학관은 제가 추진하는 사업이죠. 이제 대통령이 파면됐으니까 (국립한국문학관도) 제대로 추진될 겁니다.


Q 우리 국민들은 그동안 단 한 번도 겪지 못한 새 역사 위에 서 있습니다. 기대 속에 불안도 있고 희망 속에 걱정도 있는데요, 지금 우리 국민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글이나 시를 <그대 언제 이 숲에 오시렵니까>나 <사월 바다>에서 하나만 찾는다면, 무엇을 고르시겠습니까?


<사월 바다>에 있는 시 ‘격렬한 희망’을 들려드리고 싶어요. 저는 촛불에서 ‘격렬한 희망’을 봤어요. “희망은 어찌 이리 격렬한가”라는 구절이 딱 떠오르더라고요. 국민 여러분들이 어떤 경우에도 희망을 만들어가는 주체는 바로 나, 우리라는 걸 느꼈으면 좋겠어요.


사랑의 느낌이 그를 부를 때 거절하지 않았고

아름다움을 찬미하는 것이

인생의 중요한 명제라고 믿었으며

행복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취향을 버리지 않았다

그는 포로수용소에서나 절망의 순간에도

희망은 어찌 이리 격렬한가

이렇게 시를 읊는 레지스땅스였다

인간 정신의 진보를 믿는

이상주의자이며 지치지 않는 낙관주의자인
- 도종환 시 ‘격렬한 희망-스테판 에셀을 위하여’ 중에서


Q 마지막은 조금 기습적인 질문인데요,(웃음) 시인의 가방 속에는 어떤 책이 들어 있는지 궁금합니다. 지금 가방 속에 어떤 책이 들어 있나요?


정호승 시집 <나는 희망을 거절한다>와 철학자 이진경의 <불교를 철학하다>입니다. 얼마 전에 신문에 실린 책 소개 기사를 보고 직접 샀어요. 아까 말한 ‘불의를 저지른 사람을 미워하는 것도 자비인가’라는 것이 <불교를 철학하다>에 나오는 이야기였어요. 자비심 없는 사람을 질타하고 일깨우는 것도 자비심이라는 이야기가 들어 있죠.




취재 : 최규화(북DB 기자)

사진 : 신동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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