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김영하 인터뷰
야금야금 아껴 읽고 싶은 소설이 있다. 소설가 김영하의 단편집이 그렇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문학동네/ 2010년)의 마지막 작품을 읽으며 아껴둔 사탕을 모두 해치운 듯 안타까움을 느낀 기억도 희미해질 무렵, 그가 7년 만에 새로운 단편집을 낸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좋아하는 배우가 나오는 드라마 방영일을 기다리듯 신간 출간을 기다렸다. 마침내 푸르스름한 표지의 <오직 두 사람>(문학동네/ 2017년)이 손에 들어왔을 때 기쁨은 표현할 수 없는 것이었다.
<오직 두 사람>에는 일곱 편의 단편이 실렸다. 읽는 내내 거울의 방에 갇힌 느낌이 든다. 이쪽이 트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길은 저쪽이었고, 이쪽에 사람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저쪽에 사람이 있었던 느낌이랄까. 유쾌함과 엉뚱함에 서늘함과 참담함도 섞여 있었다. 독자들은 그가 튼튼하게 만든 이야기의 롤러코스터를 타고 수많은 감정의 빛을 만나게 된다. 6월 8일 소설가 김영하를 만나기 위해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의 한 카페를 찾았다. 말을 할 때도 마치 글을 쓸 때처럼 여러 소재들이 흩뿌려졌다가 결국엔 하나의 그림을 이루곤 했다.
“세월 지나야 소설가도 자신이 무슨 이야기 썼는지 알게 돼”
Q <오직 두 사람>은 데뷔 23년 차에 발표한 작품집, 7년 만에 나온 작품집입니다. 감회가 조금은 새로울 것 같습니다.
작가로 산 지가 오래 돼서, ‘몇 년이 됐구나’라는 감회는 별로 없어요. 단편집이라는 건 작가가 한 번 확인하고 가는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장편이 특정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완전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라면 단편은 일정 기간 겪은 일들이 그대로 잘 드러나죠. 단편집으로 23년의 작가 생활을 분절할 수 있다면 이번 소설집이 나오기까지의 7년이라는 세월은 그중 3분의 1 정도 되는 건데, 이번 소설집이 작가 인생의 3분의 1을 뭘 느끼고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확인할 계기가 될 것 같아요.
Q “세상엔 엄숙한 가짜가 너무 많아” “난 싫다. 남성적인 것, 정치, 축구, 도박이”라고 말하던 젊은 작가 김영하를 무척 좋아했었습니다. 이제는 엄연한 기성작가로 분류해야만 할 것 같습니다. 그때와 지금의 작가 김영하는 달라졌나요?
미국에 있을 때 즐겨보던 프로그램이 있었어요. 사람들의 옷장을 점검해 주는 예능프로인데요. 시청자들이 사연을 보내면 패션 전문가가 출동을 하는 거예요. “우리 엄마 좀 어떻게 해주세요”라는 딸의 사연이 방송됐어요. 전문가들이 출동해보니 아이는 대학생이나 고등학생인데 엄마가 마치 센츄리21(젊은 층을 위한 미국의 저가 의류 브랜드)에서 산 것 같은 옷을 입고 돌아다니고 있어요. 그럼 패션 전문가가 이런 조언을 하죠. “나이에 맞게 입으셔야 합니다. 딸이 괴로워합니다.” 그러면 엄마는 자신은 예전부터 이런 옷을 좋아했다고 말해요. 그러면 패션 전문가가 “그건 옛날의 당신이고, 지금의 당신은 다르다”고 해요.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라는 TV 프로그램을 보면 개를 훈련하러 가는 것 같지만 실은 개를 키우는 사람들을 바꾸는 거잖아요. 옷도 마찬가지죠. 옷이 무슨 잘못이 있겠어요? 그 사람이 갖고 있는 심리적 문제가 옷에 드러날 뿐이죠. 저는 작가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20대나 30대 초반에는 기성의 질서에 도전해요. 우리 세대의 작가들이 대체로 그 이전 세대의 문학에 반해서 자신들의 미학을 구축해왔다면 이제는 그럴 때가 지났잖아요. 그런데 아직도 계속 뭔가에 도전하고 있다면 저는 그것이 마치 딸의 옷을 입고 다니는 엄마처럼 이상하다고 생각해요.
옛날에는 아웃사이더로서의 무모함이 필요했다면 지금은 오히려 인사이더의 윤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이미 안에서 오래 있었고, 한국 문학계가 줄 수 있는 것들을 많이 받았는데 아직도 자신을 아웃사이더로 생각한다면 문제가 있는 거잖아요. 옛날의 자세를 가지고 살아가다가는 ‘나는 옳고 남은 틀렸다’는 태도에 젖기 쉬워요. 그래서 요즘에는 ‘내가 뭐 잘못하는 건 없나?’ 하는 자기성찰을 더 많이 하려 해요.
Q 이번 책에 실린 일곱 편의 단편 모두 각기 색깔도 다르지만, 각자의 재미가 있었어요. 그 중 ‘오직 두 사람’을 표제작으로 선정하신 이유가 있었나요?
그 작품이 가장 맘에 들었어요. 자꾸 맘에 남는 거죠. 작가가 어떤 소설을 썼다고 해서 그게 무엇인지 당장 알진 못해요. 엄청나게 많은 걸 알고 그걸 소설로 쓴 것 같잖아요. 하지만 소설을 쓰는 것은 어디선가 이야기를 전해 듣고 그것을 전하는 것에 가까워요. 이런 이야기를 하라니까 했는데 쓰고 나선 그것이 무슨 얘긴지 모르는 거예요. 세월이 지나야 그게 무슨 얘긴지 자기도 그때 그걸 왜 썼는지, 등장인물이 어떤 인물인지 알게 돼요. 쓰고 나면 지긋지긋한 소설도 있고, 쓰고 나서 시원한 소설도 있는데 ‘오직 두 사람’은 계속 생각이 나게 하는 소설이었어요.
“'나만 힘든 건 아니다'...소설이 줄 수 있는 위안”
Q 이번 소설집 속 작품에서는 정신병적 상황을 겪고 있는 인물들이 자주 눈에 띄었어요. ‘오직 두 사람’의 아버지에게 의존하는 딸이나 ‘아이를 찾습니다’에서 아이를 잃어버린 엄마가 그랬지요.
정상이라는 범위에 둘 수 있는 인간들이 있잖아요. 정규 분포를 그려보면 중간쯤에 많이 몰려 있겠죠. 어찌 보면 그들은 간신히 그 안에 있는 거예요. 사람들은 일시적으로 어느 정도 문제를 겪죠. 심각하게 우울해하기도 하고, 자살 충동을 느끼기도 하고요. 하지만 멀쩡해 보이려고 노력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거나, 또는 멀쩡해 보여도 안으로 파고 들어가 보면 이상한 사람이기도 해요. 저는 그 정규 분포 바깥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에 관심이 많아요. 전에 어떤 배우가 한 얘긴데 사람은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 이상하대요. 평소에는 다 좋지만, 재난에 처한다든가, 힘든 일을 겪으면 이 사람이 진짜 고귀한 사람인지, 경박한 사람인지, 비겁한 사람인지, 야비한 인간인지 알게 되잖아요.
박근혜 전 대통령 같은 사람도 세월호 사태가 없었다면 이런 사람일 줄은 몰랐을 거예요. 위기의 순간에 우리는 그 사람의 모습을 본 거죠. 그 사건을 겪고서 아무 능력이 없고, 남에 대한 공감 능력도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됐잖아요. 고대 그리스 비극도 수많은 고난으로 점철돼 있는데 그 고난과 비극을 겪으면서 대부분이 미쳐요. <메데이아> 같은 경우도 아이들을 죽이기도 하고요. 이런 인물을 보여주면 독자들은 우울해져야 하는데, 뜻밖에 이런 인물을 보는 것만으로 다른 의미에서 위안이 된다고 생각해요. 고통을 겪는 사람들, 또는 나락으로 떨어진 사람들, 그것을 극복하려고 투쟁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만 힘든 건 아니고, 나만 이런 문제를 겪는 건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게 소설이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것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Q ‘옥수수와 나’ 속의 주인공은 “소설은 그런 게 아냐. 매우 육체적인 거야. 심장이 움직이면 마음은 복종해. 우리는 시인이나 평론가와 다른 몸을 갖고 있어. 문학계의 해병대, 육체노동자, 정육점 주인이야”라는 말을 해요 작가님도 이와 같은 입장이신가요?
그 주인공이 저와는 성격이 많이 다르지 않나요?(웃음) 하지만 일리가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저렇게 생각하는 거겠지요? 소설은 일단 엄청난 노동력이 필요해요. 집중력과 많은 시간 책상에 앉아 있어야 하고. 그런데 시는 그런 것 같지 않더라고요. 영감이 떠오르면 금방 확 쓰기도 하잖아요. 우리는 금방 확 쓰는 게 안 돼요. 쓰고 고치고 다시 쓰는 과정을 반복하니까 일단 육체적으로 굉장히 힘들죠. 시인은 잘 모르지만, 소설가들은 자기 관리를 되게 열심히 하고요. 술도 많이 안 마시는 것 같아요. 일을 할 수 있는 절대량이 필요해요. 앉아서 뭔가를 해야 하니까요. 그런 면에서 육체 노동자인 면이 있죠.
Q 자기 관리 말씀하시니 말인데요. 평소 작가님의 일과는 어떨까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해병대니까 일단 아침 일찍 일어나고요.(웃음) 새벽 6시 좀 넘으면 일어나요. 일어나서 글을 써야 할 때는 거의 오전에 작업을 끝내요. 그리고 오후에는 쉬어요. 책을 본다거나 사람을 만난다거나 이렇게 인터뷰를 하거나 장을 보는 것 같은 일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요.
Q 요즘 유행하는 방탈출 게임을 소재로 삼은 ‘신의 장난’은 절망뿐인 청년 세대의 삶에 대한 은유로 읽었습니다.
며칠 전 자신은 방탈출 게임을 세 번이나 해봤다는 20대 여성을 만났는데 제 소설을 읽은 후로 다시는 가지 않고 싶어졌대요.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에게 인생은 이 게임과 다르지 않을 거예요. 작은 공간에서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과 살아야 하고, 태어나면 죽고, 아무도 그 운명을 피할 수 없잖아요. 소설을 쓰면서 그런 느낌이 들었어요. 독자들은 제 소설 속 인물을 보며 저런 좁은 방에 갇힌 게 불쌍하다고 생각하지만, 신의 관점에서는 인간이 굉장히 짧은 순간 아주 좁은 활동 반경에서 살아가다가 의미 없이 생을 마감하는 것으로 보일 거예요. 이 소설을 보면서 한 번쯤 더 생각해 볼 수 있겠죠. 인생에 의미라는 것이 있는가? 과연 어떻게 자기 삶의 의미를 찾을 것이며, 그것을 지켜나갈 것인지. 이렇게 갇혔더라도 살아야 하니까요.
“세월호 사태 이후 농담할 여유 사라진 것 같아"
Q 작가의 말에서도 세월호 사건을 언급하셨습니다. 세월호 이전과 이후, 작품을 창작할 때 결정적으로 달라진 것이 있나요?
주인공들이 조금 더 무거워졌고 농담을 좀 안 하게 됐죠. ‘아우슈비츠 이후에 서정시가 가능한가?’라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잖아요. 저의 경우에는 서정시를 쓰는 건 아니니, 농담을 할 여유가 사라졌달까요.
Q 2010년 1월 29일 미시마 유키오의 ‘금각사’ 편으로 시작한 팟캐스트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도 어느덧 7살의 나이에 접어든 장수 팟캐스트 자리에 올랐습니다. 작가님의 팟캐스트 방송이 인기를 끄는 이유 중 하나가 ‘재밌는 소설을 고르는 재주 덕분’이라고 한 평가도 봤어요. 소개할 작품을 고르는 원칙이 있나요?
팟캐스트를 더 인기 있게 만들려면 사람들이 많이 아는 작가, 혹은 크게 화제가 된 작가를 넣으면 돼요. 예를 들면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을 읽거나, 작년 같으면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읽으면 돼요. 그런데 의외로 제 팟캐스트 리스트에는 스타 작가가 많지 않고, 시류와 전혀 상관없이 가요. 사람들이 잘 모르지만 좋은 소설들을 고르려고 노력을 해요. 라디오나 TV라면 금방 지나가 버리니까 그 당시 화제가 되는 작품을 다뤄야 해요. 그런데 팟캐스트는 계속 쌓여서 사람들이 언젠가 듣게 돼요. 신간 중심으로 몰리는 흐름도 바꾸고 독자들도 과거에 좋았던 작품 중 놓친 것들을 들을 수 있게 돼요.
Q 작가님께서 팟캐스트에 소개하고 난 뒤 각별한 반응이 있었던 작품이 있나요?
앤드루 포터의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21세기북스/ 2011년)같은 경우는 방송 이후 절판됐던 책을 다시 찍었어요. 처음에는 출판사에서 책이 팟캐스트에 소개된 걸 몰랐다가 갑자기 주문이 들어오는 바람에 알게 됐대요. <하자르 사전>(밀로라드 파비치/ 열린책들/ 2011년)도 새로 판을 낸 작품이에요. 팟캐스트처럼 시간성이 없이 축적되는 미디어들은 과거의 좋은 작품들을 다뤄서 출판 시장의 균형을 맞춰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Q 작가님의 작품은 미국 프랑스 독일 등 외국으로 활발하게 번역되고 있습니다. 외국 독자와 국내 독자의 반응이 다르다고 느끼실 때가 있나요?
한국 독자들은 문학 작품에 답이 있고, 작품 속에 찾아내야 할 주제가 있는데 작가가 그걸 숨겨놓았다고 생각해요. 그걸 안 알려주면 화를 내기도 해요.(웃음) 문학은 실은 남과 다른 생각을 하고, 다른 감정을 느끼기 위해 읽는 것이고, 자기만의 감정을 들여다보는 일종의 창으로서 작품이 존재하는 것인데요. 반면에 해외 독자들은 문학 작품을 읽는 목적이 감정 중심이에요. 그래서 이 소설이 나에게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켰고, 어떤 대목이 나에게 어떤 감정을 줬는지를 얘길 해요.
Q 다음 작품을 기다리는 독자들을 위해 차기작에 대해 작은 힌트를 주신다면요?
장편을 쓰려고 해요. 시작했다가 멈추고, 시작했다가 접어 놓은 게 많이 있는데 그중에 하나를 골라서 이어갈 거예요. 서랍을 열면 망한 것들이 쫙 있어요. 그때는 그걸 소화할 능력이 없었기 때문에 못 쓴 것들이 있거든요. 그걸 꺼내서 작업을 시작해야죠.
글 : 주혜진(북DB 기자)
사진 : 기준서(스튜디오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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