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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Jun 26. 2017

매일 먹는 문장 한 조각, 서평가 금정연의 특급 처방전

저자 금정연 인터뷰

“이제 당신은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서평이라는 게 소개와 설명을 위해 존재하는 건데 이렇게 어정쩡하게 할 거냐고. 나는 이렇게 대꾸하겠다. 서평을 읽는 게 읽을 만한 책을 고르기 위해서라면 서평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말고 그냥 책을 읽으시라고. 나는 다만 “이 책을 읽으세요!”라고 말하고 끝내기에는 이 지면이 너무 넓어서 어쩔 수 없이 다른 말들을 늘어놓았을 뿐이라고.”

<실패를 모르는 멋진 문장들> 본문 중에서



여행을 떠나기 직전, 집으로 책 한 권이 배달되었고, 책은 곧장 여행 가방 속에 꾸려진 채 공항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여행객으로 꽉 찬 비행기 안에서, 이내 도착한 숙소 안에서 다소곳이 펼쳐졌다. 번잡하고 시끄러운 곳에서도 곧잘 페이지를 넘길 수 있을 만큼 짧은 메모처럼, 소소한 일기처럼 편안했다. 두께에 비해 가벼운 점도 마음에 들었는데, 함께 가져간 시집의 무게가 무색할 정도였다. 물론 여행지에서 만난 이가 내 손에 든 책에 관해 물었을 때, “아, 문장들… 책에 대한… 서평가… 그러니까 여하튼 재미있는 책이에요!”라고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따로 있었다.   

서평가 금정연이 펴낸 <실패를 모르는 멋진 문장들>(어크로스/2017년)은 한 마디로 설명하기 어려운 책이었다. 책과 문장에 대한 이야기면서 금정연 자신에 대한 이야기가 한데 뒤섞여있었기 때문이다. 출판사가 정의 내린 ‘책과 글과 삶에 관한 가장 웃픈 엘레지’라는 말은 그래서 왠지 2%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 만약 ‘실패를 모르는 멋진 문장들’을 그대로 사전에 수록한다면 어깨번호를 대략 다섯 개 정도는 달아줘야 할 것 같은 느낌이랄까. 술로 비유하자면, 분명 소주와 맥주를 섞었는데 마셔보니 목 넘김에서는 위스키 맛도 나고 혀끝에서는 칵테일 맛도 나는. ‘이거 뭐지?’라며 고개를 갸웃하면서 계속 마시게 되는 그런 술!

“이 책에 담긴 제 글은 서평가로 활동을 시작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5년간의 기록들이에요. 예전에 써놓은 글을 다시 본다는 게 부끄럽기도 했지만 책으로 묶고 나니까 나름 괜찮더라고요. (웃음) 어떤 글은 수필에 가깝고 어떤 글은 평론에 가깝죠. 그 가운데에서도 최대한 매력적인 문장이 담긴 책을 소개한 글 위주로 선별했어요. 이번 책에 실려있는 작가 중에는 제가 되풀이해서 꺼내보는 책의 저자들도 많고요. 사실 20대까지만 해도 한 번 읽은 책은 다시는 안 봤거든요. 읽고 싶은 책이 너무도 많았으니까요. 온라인 서점의 MD로 지내다 서평가로 활동하면서 새로운 책을 읽어야 한다는 강박도 있었고요.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새로운 책에 대한 피로감이 몰려오면서 여기 실려있는 책들을 다시 읽어보니 좋더라고요. 나중에 읽으면서 새로운 게 보이기도 하고요.”


”써야 할 때 쓴다… 가장 경계하는 것은 ‘단정 지어 말하는 것’”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책은 한 달에 15권 정도. 평소의 그는 읽다가 덮고, 뭔가 필요해서 찾아 읽는 발췌독을 즐긴다. 글은 주로 언제 쓰냐고 물으니 “써야 할 때 쓴다”고 빙그레 웃으며 답한다. 그에게 온라인 서점 MD 시절 이야기부터 물었다. “회사를 다닐 때는 야근을 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럼 하루를 너무 소비한 것 같은 느낌에 허무해서 잠을 못 이뤘죠.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면서 어떻게든 저를 위한 시간을 만들기 위해 애를 썼어요. 그러다 보면 늦게 자고, 다음 날 일어나면 출근하기가 싫어지고, 회사에 가면 피곤해서 짜증이 나고, 그럼 또 집에 와서 늦게 자고, 그야말로 악순환이었죠.”   
  
서평가라고 하면 일단 차갑고 냉철하고 매서울 것만 같은 이상한 선입견에 사로잡혀 있었지만 금정연은 이런 기대(?)에 충실히 부합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의 책에서 마주한 글만큼이나 편안하고 수더분한 매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의 서평은 주로 한 편의 수필에 가깝다. 이러한 글쓰기는 평소 기록하는 습관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고. 그는 하루에 있었던 일을 일지 형식으로 매일 기록한다. 감상이나 느낌은 없어 일기는 아니지만 글을 쓰면서 기억을 떠올려야 할 때, 일지를 보면서 단서를 찾는다고. 인터뷰 직전에 읽은 책에 관해 물었더니 그의 가방에서는 롤랑 바르트의 책 여러 권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모두 귀퉁이가 닳고 손때가 묻은 것들이었다.
 


“이번 책에 소개된 것 중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책을 꼽자면 롤랑 바르트의 <마지막 강의>예요.  롤랑 바르트가 콜레주 드 프랑스에 교수로 취임하고, 세상을 떠나기 전 1년 동안의 강의록을 모은 책이죠. 그의 지성과 글쓰기에 대한 전 과정을 담은 유작 강의록이에요. 저는 대학 때부터 롤랑 바르트의 책에 심취했는데 직업적으로 글을 읽고 쓰면서 글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 많은 영향을 받았어요. 그가 내놓은 ‘저자의 죽음’이란 개념을 좋아하고요. 작가의 손을 떠난 텍스트는 그 자체로만 감상하고 평가해야 한다는 개념이죠. 보통 서평이라고 하면 정보 전달과 요약, 평가로 규정하기 쉽잖아요. 이를테면 책이 무슨 내용이며 어떤 의의가 있고 결과적으로 좋다, 나쁘다고 평가를 하는 식으로요. 그런데 저는 서평을 쓸 때 무척 자유로운 편이에요. 책에 담긴 글을 제 마음대로 하는 데 거리낌이 없죠. 롤랑 바르트에게 영향을 받아서 그런 거로 생각해요.”

그가 서평을 쓸 때 가장 경계하는 것은 단정 지어 말하는 것. 경험이 아닌 것을 함부로 단정 짓거나 타인과 걸쳐있는 미묘한 경계, 집단과 관련된 것에 대해 단정 짓는 것을 조심한다고. 또 하나 덧붙이자면 쓸 말이 없는 책에 대해서는 되도록 쓰지 말자는 것이 서평가로서 그의 방침이다. 그에게 있어 쓸 말이 없다는 건 재미가 없다는 것과 같은 의미라고. 이를테면 핍진함을 이유로 하나의 사실을 뻔하게 혹은 고집스럽게 파고드는 소설이 그렇다. 반면, 그가 좋아하는 소설은 문장과 문장이 서로 조금씩 충돌하거나 어긋나는 것, 언어에 대한 자의식이 충만한 문장으로 가득한 소설들이다.


한국 문학이 처한 위기? 문학성에 대한 견고한 인식과 적은 독자

“한국에서 아무리 잘 팔리는 책의 작가라 할지라도 여전히 독자는 부족해요. 저는 평론가나 교수가 아니어서 판매의 중요성을 간과할 수가 없어요. 판매가 잘 된다고 무조건 좋은 책은 아니지만 좋은 책일수록 판매가 잘 뒷받침되어야 하니까요. 한국 문학이 처한 위기라고 한다면 기존의 문학성에 대한 견고한 인식과 적은 독자에 있다고 생각해요. 이 둘의 관계는 불가분의 관계 같아요. 한국 문단이 점점 폐쇄적으로 변해서 독자가 떠났다고 할 수도 있고, 독자가 줄어드니까 문단에 남은 사람들끼리 점점 내부로 파고든 것일 수도 있고요. 이 두 가지에는 답답함, 안타까움이 모두 있죠.” 

롤랑 바르트와 한국 문학에 대한 담론을 펼치던 그가 어느새 설거지 예찬론을 꺼내 놓기 시작했다. 사연인즉슨, 그는 평소 설거지를 즐겨 하는데 이는 트위터에서 어떤 이가 남긴 글에서 촉발된 습관이란다. ‘밥을 먹고 난 뒤, 바로 설거지를 하는 사람은 뭐라도 된다는 말에 밥을 먹고 바로 설거지를 하게 됐다. 그랬더니 나는 밥을 먹고 바로 설거지를 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는 말장난처럼 써놓은 이 글이 좋아 자신 역시 밥을 먹고 난 뒤 바로 설거지를 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그래서 원래는 잘 미루는 편이었지만 최근에는 의식적으로 노력하기 시작했다고. 그의 설명에 따르면 ‘설거지를 미룬다. 원고를 미룬다’가 미룬다는 같은 행위로 이어져 왔는데 이제는 설거지도, 원고도 미루지 않는(않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된 것 같다며 해사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놀라운 것은 이 심오한 설거지론(?)에 어느새 나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설득되어갔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그는 현재 택시를 좋아하는 자신의 취향을 발판 삼아 택시에 관한 수필을 쓰고 있다. 하아, 누군가 나에게 금정연에 관해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해야만 할 것 같다. “아, 문장들… 책에 대한… 서평가… 그러니까 재미있는 사람이에요!” 그는 한 마디로 똑 부러지게 설명하기가 어려운 사람임이 분명했다. 술로 비유하자면, 분명 소주와 맥주를 섞었는데 마셔보니 목 넘김에서는 위스키 맛도 나고 혀끝에서는 칵테일 맛도 나는. ‘이거 뭐지?’라며 고개를 갸웃하면서 계속 마시게 되는 그런 술!
 



글 : 윤효정(북DB 객원기자)
사진 : 임준형(러브모멘트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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