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4모> 굽시니스트 저자 인터뷰
지난 4년을 돌아보자. 앞이 캄캄한 터널에 갇힌 듯한 시간을 우리는 보냈다. 절망과 무기력에 지친 우리를 달래주는 건 많지 않았다. 고양이의 귀여움과 먹방, 그리고 시사만화가 굽시니스트의 드립력.
곳곳에서 사건이 터질 때마다 그가 기막힌 드립으로 가려운 곳을 긁어준 덕분에, 우리는 분통 대신 웃음을 터트리고 절망 대신 풍자로 현실을 버텼다. 그 지옥같은 시간을 함께 버틴 굽시니스트의 주옥같은 만화가 <박4모(박근혜 4년 모음집)>(시사인북/ 2017년)라는 이름의 단행본으로 나왔다. 단행본에는 연재에 다 싣지 못한 굽시니스트의 말도 덧붙었다. 4년의 시간을 기록하는 일이 어땠는지, 궁금증을 안고 ‘굽본좌’를 알현했다.
인터뷰는 굽시니스트가 추천한 서울 은평구의 한 만화카페에서 진행했다. 이번에 새로 문을 열었다는 만화카페는 여느 만화방과는 분위기가 달랐다. 누워서 책을 볼 수 있고, 끓인 라면을 먹을 수 있다는 것만 빼면 잘 꾸민 도서관에 와 있는 듯했다. ‘역시 시대 흐름에 민감한 만화가답게 핫플레이스를 자주 애용하는군’하고 생각했는데 굽시니스트도 오늘 처음 와 봤단다.
만화카페 사장님은 '굽시니스트'를 알지 못했지만 만화작가라는 말에 사인을 부탁했고, 굽시니스트는 시사만화가의 숙명이라는 듯 자신의 인지도에 고개를 끄덕이며 정성껏 사인했다. 굽시니스트다운 겸손한 몸짓이었지만 서운함이 느껴졌다. <박4모>에서 시작한 대화가 시사 만화가의 고민으로 이어질 때 특히 그랬다. 작품에서 보아왔던 굽시니스트의 유머는 말투나 표정에서도 어김없이 드러났지만 만화가의 고민과 다짐을 이야기할 때, 선량해 보이는 그의 눈이 반짝 빛을 내며 진지해졌다. 만화가로서 역량을 넓히고 싶다는 그의 말에, 지금 작업중이라는 한중일 근대사가 더욱 기다려진다.
Q 단행본 나온 소감을 먼저 여쭐게요. 4년 동안 기록하고 연재하는 일이 여러 의미에서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일단 ‘시사인’에서 안 자르셔서 연재할 수 있었고요. 일주일에 두 페이지 그리는 걸 어렵다고 하면 말이 안 되죠. 보통 웹툰 작가들은 일주일에 60컷 그리는데, 시사만화는 14컷 정도니까요. 또 정치 얘기라는 건 그렇게 어려운 얘기가 아니지 않습니까? 누구나 다 하는 얘기이기 때문에, 그렇게 대단한 아이디어가 필요한 것도 아니고요. 정치 얘기할 때 그냥 자기 느낌, 화나는 바나 원하는 바를 막 얘기하지 않습니까? 술자리에서 흔하게 정치 얘기하듯이 두 페이지에 옮겨놨을 뿐이죠.
“지난 4년, 귀신의 집에 살며 일상이라고 생각한 것 같아”
Q 박근혜 4년을 기록하면서 들었던 생각과 지금 4년을 되돌아보며 드는 생각이 다를 것 같아요. 지난 4년이 어떻게 느껴지는지 궁금해요.
그 때는 그냥 조금 불쾌한 일상이라는 느낌이었는데 지금 와서 보니 굉장히 특이한 지배체제였죠. 그런데 그 안에 내가 있었다는 걸 생각하면 희한해요. 우리가 놀이동산에 있는 귀신의 집에 들어가면, 귀신의 집에 들어갔다는 느낌이 확실히 들잖아요. 이게 일상 같지는 않거든요. 그런데 4년 동안 우리는 (그 시간을) 일상으로 생각했단 말이에요. 그렇게 생각했던 것도 이상했던 거고, 우리 역시 그 이상함을 이루던 일부였다는 생각이 들죠.
Q 책에도 그런 얘기를 했는데, 박근혜 전 대통령의 얼굴을 가장 많이 그린 사람이에요. 그런 점에서 감정이 좀 남다를 것 같은데요?
저 뿐 아니라 다른 시사 만화가들과 얘기를 나누면 다들 박근혜는 쉽게 그려지지 않는다고 얘기해요. 일단 물리적으로 시술 같은 걸로 얼굴이 변한 것도 있었고요, 또 국민들 머릿속에 있는 이미지와 TV에 나오는 얼굴도 다르고 지금 보이는 얼굴도 다르고, 항상 달랐어요. 그렇다고 그 분이 감정이 풍부한 분도 아닌데 계속 얼굴이 바뀌면서 느낌이 확확 바뀐단 말이죠. 그려놓고도 이건 아닌 것 같은데 하는 느낌이 항상 있었죠. 결국 저는 그렇게 많이 그렸음에도 그 얼굴을 제대로 그리는데 실패하지 않았나(생각해요).
캐릭터에 대한 애정은 분명히 있어요. 박 전 대통령 개인은 불가해한 측면이 있지만, 제가 그린 만화 캐릭터 박근혜는 제가 이해할 수 있고 소통할 수 있는 측면이 있죠. 그릴 때 감정이입을 하니까요. 그러다 현실 박근혜와 캐릭터 박근혜가 점점 멀어지는 거예요. 시사만화로서 현실을 온전히 담지 못하고 제가 창조해 낸 캐릭터만 있는 것 아닌가 이런 기분이 들기도 했어요. 이제 현실 박근혜는 무대에서 내려왔으니까 캐릭터를 그릴 일은 별로 없잖아요. 제 캐릭터까지 현실에 딸려서 은퇴해야하나 아쉬움이 있죠.(웃음)
시사 만화가 재미있는 건 정치가 재미있기 때문
Q 굽시니스트를 얘기할 때 ‘드립력’을 빼놓을 수 없을 텐데요, 스스로 생각해도 ‘이건 진짜 잘 했다’ 싶은 게 있지 않나요?
아후~ 제일 부끄럽게 생각하는 건데요. 너무 유치하고, 딱 술자리에서 아재들이 농담하는 수준이에요. 사람들이 좋아해주시는 건 만화니까, 유치한 면을 높이 평가해주는 부분이 있지 않나 생각해요.
‘그네,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조제, 호랑이, 물고기들’을 패러디 한 건데, 인어공주 얘기에 맞춘 영화가 대통령 얘기와도 딱 들어맞아 떨어져요. 이건 제가 생각했다기보다 우주에 평행선으로 떠있는 이야기를 ‘오!’ 하고 가져만 온 거죠. 그런 건 먼저 그리는 사람이 임자에요.(웃음)
Q 겸손하게 말씀하셨지만 만화계에서는 ‘갓시니스트’, ‘굽본좌’로 불리잖아요. 인기가 많다는 뜻일텐테, 그래도 시사만화를 하기 때문에 비난을 감수해야 될 때가 있을 것 같아요.
그랬다면 여기 들어왔을 때 저를 알아보셨겠죠.(웃음) 만화책방 주인도 몰라보시는데... 흔히 웹툰 업계에서 성공하려면 식당 이모님도 재미있게 보는 만화를 그려야 된다고 말하거든요. 인지도를 쌓아야하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시사 패러디라는 게 남이 이뤄놓은 것에 기생해서 묻어가는 것 아닙니까? 얕은 수죠. 그걸 계속한다는 건 유머를 추구하는 작가로서 재능의 한계가 있는 것 아닌지 의심이 들 수밖에 없고요. 저도 느끼는 것이지만 그런 걸 지적하는 분이 계시죠.
시사 만화가는 엄청나게 노력하지 않아도 독자들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어요. 뉴스라는 거대한 배에 기생하는 거고, 뭐니 뭐니 해도 정치사회에 관련한 이야기가 가장 주된 이야기들이니까요. ‘가성비’가 좋은 작업이죠.(웃음) 그런 점에서 시사만화는 순수창작으로 보긴 어렵고요. 수준 높은 창작물에서 볼 수 있는 기법과 코드를 다룰 수 있는 날이 올 지가 제 고민이에요. 제 창작물로서 기념비적이고 고전의 반열에 오르는 작품을 그리고 싶고 일류 만화가가 되고 싶죠. 성공에 대한 갈망은 누구나 있지 않습니까? 그런 야망은 있지만 제가 보편적으로 재미있게 볼 수 있는 만화를 그릴 순 없을 거라고 예상합니다. 결국 자신이 재미있어하는 걸 그리는데, 제가 그리고 싶은 건 보편적인 건 아니거든요. 만화가로서 제가 생각하는 성공은 로또를 생각하는 정도의 막연한 성공인 거죠.
<박4모> '그네,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편
Q 박근혜가 파면되고, 대선도 끝났잖아요. 소재에 대한 고민은 없으신가요? 마지막으로 이후의 계획을 들려주세요.
최순실 사태가 터지기 전에 교양만화 느낌으로 연재를 했거든요. 정치와 관련한 기본 개념들을 다루기도 하고요. 이제 다시 세상이 잠잠해졌으니 시사교양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지금 한중일 근대사를 시작해서 그리고 있고요. 앞으로 대중들과 소통할 수 있는 소재들을 고민해봐야죠. 그러나 ‘시사인’에서 절 내치지 않는 한, 연재는 계속 할 거고요. 정치라는 게 굉장히 재밌습니다. 정치가 재밌으니까 만화를 괴발개발 그려도 재밌는 거거든요. 함께 ‘폴리테인먼트’를 즐기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책 좀 사 봐 주시죠!
글 : 정윤영(북DB 객원기자)
사진 : 임준형(러브모멘트 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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