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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Feb 26. 2016

눈물 많은 ‘당대포’ 국회의원 정청래의 책 이야기


              

“도종환의 ‘흔들리며 피는 꽃’을 암송하고 다니는 남자.”

정청래 국회의원(50세, 서울 마포구을, 새정치민주연합)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 일부이다. 정말인가 의심이 들었다. ‘명사의 서가’ 인터뷰를 위해 만난 자리에서 암송을 부탁했다. ‘사실검증’ 차원에서 약간은 갑작스럽게 들이댄 질문인데,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시를 암송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어렸을 때부터 시조 외우는 걸 즐겨 했다며 시조 몇 수까지 줄줄이 읊었다.

압권은 그 이후였다. “제가 노래도 잘 불러요”라고 하면서 노래를 시작한 것이었다. 이제는 어디 인사를 하러 가면 “정 의원, 딴말 하지 말고 노래나 불러줘요!”라는 말을 듣는다며, ‘고장 난 벽시계’와 ‘내 나이가 어때서’를 한 곡으로 리믹스(?)한 노래부터, 조용필, 변집섭 노래까지 불렀다. 대학 시절 가수 홍서범이 활동하던 록밴드 ‘옥슨80’에 들어가려고 연습실까지 찾아갔다는 말과 함께.

이 사람, 확실히 보통은 아니다. 국민들의 속을 시원하게 해주는 ‘돌직구’ 발언 때문에, 당대표가 아닌 ‘당대포’라는 별명을 가진 사람. 왼손에 파를 들고 있는 자신의 사진을 SNS에 올리면서 ‘이러면 좌파냐’라고 유쾌하게 소통하는 사람. 그런 ‘튀는’ 언행들 때문에 가끔은 욕도 먹고 심지어 같은 당 안에서 징계도 먹었지만, 그는 특유의 유쾌함을 여전히 잃지 않고 있었다.

인터뷰 첫 질문은 정청래 의원이 내게 먼저 던졌다. 지난 9월에 출간된 자신의 책 <거침없이 정청래>를 읽어봤느냐는 거였다. 다 읽었다고 대답하니, 그는 책이 어떠냐고 다시 물어왔다. 보통 정치인들이 낸 책은 자기 자랑만 하느라 바빠서 별 재미가 없다. 기대 없이 책을 읽다보면 가끔 “정치인 치고는 글을 잘 쓰네”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이번 정청래 의원의 책은 “정치인 치고는 글을 잘 쓰네”라는 문장에서 ‘정치인 치고는’이라는 부분을 빼고 평가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만이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든다> <OK 정청래> <정청래와 함께 유쾌한 정치여행> 이후 네 번째 책. 올 4월에는 국회의원 총선거가 열린다. 선거 전에 자신을 알리고 싶은 정치인들은 책을 많이 낸다. 그래서 바로 물어봤다. <거침없이 정청래> 역시 흔하고 흔한 ‘총선용’ 책이 아니냐고.

“총선용 책을 썼다면 동네(지역구) 이야기를 더 많이 썼겠죠. 조금 더 큰 정치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기본적으로 하나 있었어요. 그리고 제 스스로 ‘내가 왜 정치를 하지?’라고 물으면 여덟 글자 ‘분단극복 조국통일’이라고 대답하는데요, 이것을 국민들에게 쉽게 전달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그런 얘기만 쓰면 재미없잖아요 . 그래서 제가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됐는지 제 삶의 궤적을 보여준 거죠. 그리고 그 이야기를 제일 생동감 있게 할 수 있는 주제가 바로 어머니 이야기였어요.”

확실히 그의 책에서 재미있던 부분은 그의 ‘생각’보다 ‘인생’을 이야기하는 부분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어머니 ‘박순분 여사’가 있었다. 정청래 의원은,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한국전쟁과 군사독재를 겪고 민주화까지 목격한 어머니의 삶이 우리 국민 모두가 지나온 ‘상처와 고통’의 삶과 연결돼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이 책을 평가하면서 ‘정치인 치고는’이라는 말을 빼도 좋겠다고 생각한 것은, 어머니에 대한 추억과 그리움을 담은 몇 편의 글을 읽고 난 뒤였다.



“<거침없이 정청래>, 총선용 아냐... 그럼 지역구 이야기 더 썼을 것”


어떤 사람은 이 책을 읽고 “정청래, 하면 만날 ‘과격’, ‘강경’ 이런 단어만 떠올렸는데, 그렇게 잘 우는 사람인지 몰랐다”라고 말했단다. 그리고 “말빨뿐 아니라 글빨도 좋다”라는 말도 많이 들었다고 한다. 고등학교 문예반 출신에 대학교 학보사 기자 경력도 있으니 어찌 보면 글과 친한 것이 당연해 보이기도 한다. 책과 문학을 좋아했던 소년, 정청래 의원의 인생 이야기에서 책이 처음 등장하는 것은 중학교 2학년 때였다.

“발신인 이름이 없이 소포가 왔어요. 뜯어보니까 64권짜리 세계명작선집이었어요. <부활> <전쟁과 평화> <적과 흑> <죄와 벌> 이런 명작들이 들어 있었어요. 편지도 한 장 없고 발신인 이름도 없었어요. 아버지랑 둘이 앉아서, 이거 잘못 온 거 아닌가 고민했는데 분명히 수신인은 정청래예요. 그래서 산타클로스가 보냈는지 누가 보냈는지 모르겠지만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책을 읽기 시작했죠.”

책을 보낸 사람은 정청래 의원보다 여덟 살 많은 누나였다. 20대 초반이었던 누나는 책을 좋아하는 중학생 막냇동생에게 몰래 책을 선물하고는 1년이 넘도록 비밀(?)에 부쳤다. 책이 귀했던 시골 동네. 하루는 <로미오와 줄리엣>을 읽어본 사람 있느냐는 선생님의 질문에 정청래 의원 혼자 손을 들고 칭찬을 들었단다. 그 뒤로 책 읽는 재미에 빠져서, 선생님이 물어보지 않아도 먼저 찾아가서 자신이 읽은 책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고는 했다. 겨울방학 숙제로 쓴 <파우스트> 독후감으로 독후감 대회에서 최우수상도 받았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만다라’라는 이름의 문예반에서 활동을 했다. 선배들에게 매를 맞아가면서 시를 썼다는 얘기가 재미있었다. 그때 쓴 시가 지금도 기억나는지 물었더니, 처음 쓴 시의 제목이 ‘오밤중’이었다고 말했다. 시의 내용이 ‘선배들은 시를 쓰라고 때리는데, 시는 떠오르지 않아서 오밤중에 고민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고 한다. 그것 때문에 선배들한테 더 맞지는 않았는지 걱정됐는데 다행히 더 맞지는 않았단다.

그는 지금도 ‘시 읽는 의원 모임’에서 활동하면서 시를 가까이 두고 살고 있다. 2012년 19대 총선으로 ‘국민시인’ 도종환 의원이 국회에 들어오자, 정청래 의원이 먼저 도종환 의원에게 모임을 제안했다. 동시에 유은혜 의원도 그런 제안을 했다는데, 그는 자신이 먼저 한 것이라고 ‘원조 논란’에 선을 그었다. 도종환 의원이 흔쾌히 받아들이면서, 벌써 3년째 매달 마지막 주 월요일마다 시 모임을 해오고 있다. 모임 때마다 시인 한 명을 초청해서 시도 낭송하고 대화도 나누는 모임이다.

“최근에 읽은 시집 중에는 김용택 시인의<그 여자네 집>이 기억에 남아요. 사랑하는 고향 여인을 향한 순박하고 수줍은 마음이 잘 담겨 있어요. 재미있는 건, 지금도 그 여자네 집 앞을 가끔 간대요. 그러면 김용택 시인 부인이 그 집 쪽을 못 쳐다보게 한대요.(웃음) 김사인 시인의 시집<어린 당나귀 곁에서>에 ‘바짝 붙어서다’라는 시가 있어요. 폐지 줍는 할머니 얘기인데, 정말 묘사를 잘해놨어요. 그 시도 아주 좋아해요.”

정청래 의원이 문학행사에 초청을 받으면 가서 암송하는 시가 바로 도종환 시인의 ‘흔들리며 피는 꽃’이다. 그는 세대를 초월해서 누구나 좋아하는 시라고 평가했다. 도종환 의원에게 직접 “이 시가 김소월의 ‘진달래꽃’보다 더 뛰어나다”라는 소감을 전하기도 했단다. 암송을 마친 뒤에도 한동안, 꽃과 사랑과 삶과 인생을 너무나 잘 표현한 시라고 ‘흔들리며 피는 꽃’을 칭찬했다.




“‘공갈’ 발언 징계로 자숙... <징비록> 읽으며 서운병 씻어버렸다”


시와 노래, 유쾌한 농담을 즐기는 그이지만, 올해 그에게는 ‘웃을 수 없는’ 날들도 있었다. 바로 지난 5월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회에서 한 이른바 ‘공갈’ 발언 때문이었다. 그는 당시 같은 당의 주승용 최고위원을 향해 “사퇴하지 않으면서 사퇴할 것처럼 공갈치는 게 문제”라는 발언을 해 당직 자격정지 6개월의 징계를 받았다. 그나마 당초 ‘당직 자격정지 1년’이던 것이 경감됐다. 그는 한동안 자숙의 기간을 가지며 텃밭 농사에 정을 붙이고 마음을 달래기도 했다. 그때 읽은 책이 <징비록>이었다. 무책임과 무능, 이기주의의 화신인 선조 임금을 원망하지 않고 충심을 다했던 이순신과 유성룡의 모범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고 한다.

“당시 제 처지와 약간 오버랩 되는 부분들이 있었어요. 사람이 늘 백발백중을 할 수는 없잖아요. 저는 당을 위해서 싸우다가 한 번 실수를 한 건데, 그렇다고 한 칼에 이렇게 사람을 자를 수 있는가 하는 억울한 생각이 있었죠. 나중에는 그것마저 다 털어버렸지만, 처음에 제일 힘들었던 건 ‘서운병’을 씻어내는 거였어요. 그러다 <징비록>을 읽었어요. 가장 억울한 사람은 이순신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내가 조금 서운하고 억울한 건 아무것도 아니다. 털어버리자.’라고 생각했죠.”

정치 이야기보다는 인생과 책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하려 했지만 그래도 안 들어볼 수 없는 이야기가 있었다. 바로 정청래 의원 스스로 ‘정치를 하는 이유’라고 이야기한 분단과 통일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는 남북의 정치인들 모두 남은 북을 욕하면서, 북은 미국을 욕하면서 자신의 권력을 다져온 역사가 깊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이제 국내 정치에 분단문제를 이용하려는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남북관계를 개선하는 일은 대통령만이 할 수 있는 고유의 통치행위라고 했다. 전쟁이냐 평화냐 하는 문제와 직결되는 남북관계를 ‘51%의 정치’라고 표현하며, 49%를 차지하는 국내 정치보다 더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정청래 의원은 스스로 지은 ‘당대포’라는 별명에 걸맞게 ‘직설의 정치’를 해왔다. ‘야당다운 야당’을 만들겠다는 뜻으로 만든 별명이지만, 이제 그 별명을 버리고 싶은 솔직한 심정도 드러냈다. ‘당대포’는 이제 그만 하고 싶은데 아무도 안 하니까 그만둘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거친 말이 아닌, 문학적이고 사유가 깃든 말로 정치를 하고 싶은데 지금의 정치는 그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답답함을 드러냈다. 

그는 오늘날 정치인들이 꼭 읽어야 할 책으로 장하준 교수의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를 꼽았다. 정청래 의원은 그 책이 마이클 센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보다 낫다고 평가했다. 그는 그 이유를 ‘통찰력’이라는 한 단어로 표현했다. 자본주의 체제가 반드시 개선해야 할 사각지대의 이야기를 통찰력 있게 끄집어낸 ‘샘물 같은 책’이라는 이유였다. 그것은 현재 우리 정치인들에게 통찰력이 부족하다는 비판이기도 하고, 정치가 너무 정쟁화 돼서, 해야 할 일을 못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반성이기도 했다.

정청래 의원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저자를 직접 만나볼 것을 권했다. 책을 읽어보는 것도 물론 좋지만 기회가 된다면 저자를 직접 만나서 한두 시간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훨씬 더 많은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그는 시 읽는 의원 모임을 통해서나 다른 자리에서 직접 만난 작가들의 이야기를 덧붙이며, 국회의원의 특권 중 면책특권보다 더 좋은 특권은 ‘사람을 쉽게 만날 수 있는 특권’이라고 말하며 웃었다.

이미 네 권의 책을 쓴 정청래 의원. 혹시 앞으로 더 쓰고 싶은 책이 있다면 어떤 책일지 마지막 질문을 했더니 뜻밖의 대답이 돌아온다. 정치인의 꿈이 대통령도 장관도 아닌 영화감독이라니…. 그가 그리고 있는 ‘인생’에는 어떤 장면들이 들어 있을지 흥미로워졌다.    

“저를 소개하는 책은 이제 안 쓰려고요. ‘정청래의 말하기 특강’ 같은 책을 쓰고 싶어요. 나름대로 지식과 정보를 줄 수 있는 책이죠. 남 앞에서 말할 때 안 떠는 법, TV 토론 잘하는 법 같은 거요. 그리고 진짜 제 소원이 하나 있는데, 영화감독 한번 해보고 싶어요. 한국 현대사를 저와 우리 부모님을 통해서 보여주고 싶어요. 저한테 유년 시절의 애틋한 기억들이 정말 많거든요. 영화 제목은 ‘인생’쯤 하면 될까요?”






정청래  ㅣ  1965년 충청남도 금산에서 10남매의 막내로 태어났다. 대전 보문고등학교, 건국대학교 산업공학과를 졸업했다. 서강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 북한통일정책학과를 전공해 정치학석사를 받았다. 제17대 국회의원으로 문화관광위원회에서 활동하며 언론개혁과 문화콘텐츠산업 발전에 앞장서왔다. 제19대 국회의원으로 국정원 댓글사건, 민간인 사이버 사찰 문제를 파헤쳤다. 제19대 국회 시작 후 지금까지 2012·2013·2014 국회사무처선정 입법 및 정책개발 우수의원, 2012·2014 국정감사NGO모니터단 선정 국정감사, 2013·2015 법률소비자연맹 선정 헌정대상, 2012 민주통합당 국정감사 우수의원, 2013 민주당 국정감사 우수의원, 2014 새정치민주연합 국정감사 우수의원 등 총 12관왕을 수상했다. 저서로 <정청래와 함께 유쾌한 정치여행> <정통시사인물셀프탐구 OK 정청래> <사람만이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든다>가 있다.


취재: 최규화(북DB 기자)

사진 : 신동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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