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여인들의 첫 인사는 낯설었다. 10년 다닌 언론사에 사표를 내고, 지리산 피아골로 내려온 초기였다. 마을 여인들에게 잘 보이려 마주칠 때마다 허리 숙여 인사했다. 갑자기 지리산에 나타난 낯선 놈에게 그녀들은 색다르게 응답했다.
“차 있소?”
“운전 좀 할 줄 아요?”
중기댁도, 하동댁도 똑같이 물었다. <태백산맥>의 아름다운 무당 소화, <토지>의 고고한 여인 서희를 상상하면 안 된다. 마을에선 젊은 여인보다 고라니가 더 자주 보인다. 마을의 주류이자 대세는 70~80대 여인이다. 한생을 버텨낸 그녀들의 무릎은 이제 지리산 언덕을 오르내리고, 가까운 읍내에 갈 때마다 아프고 시리다. 그녀들에게 차를 가진 ‘젊은 놈’은 그야말로 ‘핫한 놈’이다.
얼마 전, 중기댁 엄니를 병원까지 태워주기로 했다. 우리는 마을 삼거리에서 만나기로 했다. 차를 끌고 나가니, 마을 여인 네 명이 나와 있었다. 그토록 많은 여인이 같은 장소에서 날 기다리다니, 태어나 처음 겪는 일이었다.
해 떨어져 지리산에 밤이 내리면 땅에도 별이 뜬다. 전등 빛이 새어 나오는 이웃집 여인들의 집은 별처럼 보인다. 어린 시절, 식량 구하러 산에서 내려온 빨치산 대원이 그렇게 무서웠다는 중기댁 엄니는 오늘도 불을 켠 채 잠든 게 분명하다. 귀가 어두워져 사는 게 더욱 외롭고 쓸쓸해 졌다는 하동댁 엄니는 어제처럼 EPL 축구 경기를 크게 틀어놓고 자리에 누운 듯하다. 루니가 오랜만에 골을 넣어도, 손흥민이 부진해도 엄니의 숙면은 변함없다. 영국 관중의 함성은 엄니에겐 자장가다.
여인들이 잠들면, 굶주린 짐승이 산에서 마을로 내려온다. 짐승 움직이는 소리가 아니면 마을은 그야말로 정적 상태다. 도시의 빛과 소란함에 길들여진 내겐 한밤의 어둠과 고요를 견디(?)는 게 일이었다. 마당에서 족제비 발자국 소리가 들리면, 숲에서 고라니 울음소리가 퍼지면, 잔뜩 긴장한 채 잠들지 못 했다. “밤이 무섭다”고 중기댁 엄니에게 말하니, 한심하다는 눈길이 돌아왔다.
“이 마을에서 당신이 제일 무섭게 생겼어! 누가 누구를 겁내는 겨?”
얼마전 노란 족제비 한 마리가 겁 없이 집 현관 앞까지 내려왔다. 먹이를 찾는 듯했다. 거실 창을 통해 녀석을 오래 바라봤다. 허기에 등떠밀린 어쩔 수 없는 선택일지라도, 과감히 선을 넘은 족제비가 나보다 용기 있어 보였다. 나는 밤마다 잔뜩 웅크리지만, 지리산은 경계를 넘고자 했던 사람들의 로망이자 꿈의 현장이었다. 현실과 문학, 모두에서 말이다.
한국 전쟁 즈음에 이상을 품고, 다른 세상을 꿈 꾼 사람들은 맨몸으로 지리산에 들었다. 이들 중 몇 명은 짐승처럼 밤을 타고 내려와 어린 중기댁을 놀라게 했다. 이들은 모두 죽었고, 조정래의 <태백산맥> 등 문학 속 인물로 다시 태어났다.
지리산 아래 하동 평사리가 주요 배경인 <토지>의 인물들은 또 어떤가. 서희 엄마인 별당아씨는 지주 최참판댁 며느리의 삶을 버리고 노비 구천과의 사랑을 선택해 야밤에 평사리를 떠난다. 아내를 잃은 서희 아버지 최치수는 이룰 수 없는 꿈을 꾼 노비 귀녀에게 살해당하고, 저 넓은 평사리 들판은 신분 상승을 노린 조준구에게 넘어가지 않는가. 서희는 국경을 넘어 중국 땅에서 노비 길상에게 사랑 고백을 하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잃어버린 토지를 되찾고….
이렇게 한국인이 좋아하는 작품 <토지>는 경계를 뛰어넘은 사람들의 도전, 욕망, 사랑 이야기다. 정작 우리는 이 세상이 지옥이라면서도 다른 생각하기를 주저하고 경계 넘기를 두려워하지만 말이다.
현실의 지리산 여인들이 내게 “너 차 있어?”라고 물은 것도 경계를 넘기 위한 일이다. 그녀들은 내 차를 타고 마을의 경계를 넘어 읍내에 가고, 화개장터에도 가며, 섬진강을 건넌다. 경계를 넘어야만 그녀들의 삶은 유지된다.
지금 지리산은 겨울의 경계를 넘은 꽃들로 그야말로 난리다. 중기댁의 울타리엔 매화가, 하동댁의 뒤뜰에는 산수유가 피었다. 평사리 들판은 새싹으로 푸르다. 사랑을 하려면 지금이 딱이다. 아쉽다. <토지>의 서희와 길상이는 신분을 뛰어넘어 사랑했건만, 나와 이웃집 여인들 사이엔 아직 로맨스가 없다.
세월의 경계는 신분의 격차보다 크고 무서운가보다.
글 : 칼럼니스트 박상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