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하자면 저는 생명의 기원에 대해 말씀드릴 것이 많지 않습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대학에서 생물학을 가르쳤는데,
그때도 생명의 기원에 대해서는 제대로 가르친 적이 없습니다.
항상 간단히 짚고 넘어가는 정도였죠.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제 전공이 뭔지 저도 헷갈릴 때가 많아서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저를 생태학자, 사회생물학자, 동물 행동학자, 심지어 통섭학자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사실 통섭학이란 학문은 없죠.
그래서 저더러 전공이 뭐냐고 묻는다면, 저는 그냥 관찰이라고 하겠습니다.
제가 하는 모든 일이 사실 관찰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동물들이 어떻게 사는지를 끊임없이 관찰해왔습니다.
그러다보니 가장 신기한 동물인 인간도 제 관찰 영역에 있었죠.
안타깝게도 생명의 기원은 제 관찰 영역에 없습니다.
관찰이 불가능한 영역이었기 때문이죠.
생명의 기원은 현재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유추해 볼 수밖에 없는 부분입니다.
그래서 생명의 기원에서 시작해 생명의 진화로 이 이야기를 확장해볼까 합니다.
지구에 인간과 같은 존재가 어떻게 탄생할 수 있었을까요?
생명은 어떻게 탄생할 수 있었을까요?
확률적으로 보았을 때 거의 가능성이 없는 일입니다.
137억 년 우주의 역사에서 수많은 우연에 우연이 겹쳐 생명이 탄생한 겁니다
이것은 어쩌면 확률이 낳은 기적입니다. 확률적으로 말도 안 되는 일이거든요.
생명은 자신과 똑같은 것을 복제하는 능력이 있는 어느 화학물질에서 시작했습니다.
뜨거운 용암 스프에서 자신을 복제하는 화학물질이 등장하고,
그것들이 자신을 복제하는 과정에서 서서히 진화가 시작되었을 겁니다.
일단 태어난 생명은 자연선택의 영향을 받으면서 분화하고 분화하다
오늘날과 같은 어마어마한 생명다양성을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태어난 생명은 역설적이게도 죽음이라는 공통분모에 묶입니다.
모든 생명은 태어나면 죽습니다. 생명의 특징은 죽음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생명은 영속성을 지닙니다.
최초의 RNA 혹은 DNA의 생명은 다양한 개체를 거치며 영속적으로 존재합니다.
오늘날 살아 있는 생명을 거슬러 올라가면,
모든 생명은 하나의 생명체로 수렴합니다.
인간과 침팬지는 같은 유전자를 공유했고, 더 올라가면 어떤 하나의 미생물이었습니다.
결국 지구에 살고 있는 모든 생명체는 한 가족인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무슨 짓을 하고 있습니까?
한 가족이었던 수많은 생물 종을 멸종시키며 지구를 파괴하고 있습니다.
알면 사랑할 수 있습니다.
자연에 대한 끊임없는 앎에서 자연에 대한 사랑이 나옵니다.
자연에 대해 끊임없이 알아가려는 노력은 과학자만의 것이 아닙니다.
자연에 대한 사랑은 인간이 취할 수 있는 가장 인간다운 모습일 겁니다.
저는 인간이 지구에서 오래 존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제인 구달이 늘 빼먹지 않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바로 희망이죠.
인간에게는 기가 막힌 두뇌와 누를 수 없는 의지가 있다,
이 두 개가 합쳐지면 무슨 일이든 못할 게 없다고요.
알면 사랑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미워하는 마음이 있을 때는 상대에 대해 충분히 모르기 때문일 겁니다.
충분히 알고 나면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게 인간의 심성입니다.
자연에 대해서도 충분히 알기 시작하면 자연을 해치지 못할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자연을 알기 위한 활동을 해야 하는 겁니다.
저는 자연과학자가 되고 싶어서 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참으로 복된 인생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연과학은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탐구하고 알아가는 과정입니다.
이 자연과학을 통해서 인간은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강연: 최재천(국립생태원 원장)
정리: 휴머니스트 편집부
* 이 원고는 재단법인 카오스에서 2015년 상반기에 진행된 강연을 책으로 묶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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