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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May 19. 2016

지성과 양심... '지식인의 삶'은 무엇을 말하는가

동서양 지식인들의 자서전을 통해 그들의 삶과 지혜를 배운다



"가난한 국가의 사람들은 AI 기술을 사용하지 못하게 되면 더 가난해지게 되고, 한국처럼 관련된 컨퍼런스도 열고 이것을 이용할 수 있는 국가들은 더 부유해지게 됩니다. 하지만 한 가지 긍정적인 가능성을 생각해 보면 AI 기술이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에 파급될 수도 있을 겁니다. 이럴 경우 AI가 평등성을 향상하고 불평등을 낮추게 됩니다." - 5월 13일 북DB 기사

<총, 균, 쇠> 저자 재레드 다이아몬드 미국 UCLA 교수가 5월 11일 '서울포럼 2016' 강연에서 한 말이다. 그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포럼장에는 정·재계 인사들을 비롯한 수많은 청중들이 모였다. 지난달 말 방한한 <사피엔스>저자 유발 하라리 이스라엘 히브리대 교수의 강연 역시 큰 인기를 끌었다. 4월 26일 오후 3시에 열린 그의 강연회 인터넷 생중계 방송은 누적 시청자 1만4000여 명, 동시접속자 3000여 명을 기록했다.

세계적 지식인들의 이야기에 관심이 쏠리는 것은 석학의 가르침에 대한 현대인들의 갈증을 시사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고학력자'는 많지만 '지식인'은 찾기 힘든 시대. 지식인이란 누구이며, 지식인의 삶이란 어떠할까. 장 지글러, 올리버 색스, 가토 슈이치, 에릭 캔델…. 현대 지성사에 이름이 빠질 수 없는 지식인들의 자서전을 통해 지식인의 삶과 그들이 품었던 가치에 대해 알아본다.


'실천적 사회학자' 장 지글러 <인간의 길을 가다>

우리에게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탐욕의 시대 > <빼앗긴 대지의 꿈> 등의 책으로 잘 알려진 장 지글러. 유엔 인권위원회 자문위원인 그는 1934년 스위스에서 태어났다. 제네바대와 소르본대에서 사회학 교수로 재직한 그는 1981년부터 1999년까지 사회민주당 소속으로 스위스 연방의원으로 활동했다. 2000년부터 2008년까지 유엔 인권위원회 식량특별조사관으로 일한 그는 세계적인 기아문제 연구자이다.

<인간의 길을 가다>는 그를 이끈 지적 무기와 사상적 토대가 담긴 인문학적 자서전이다. 볼테르, 루소, 마르크스, 막스 베버, 루카치 등 그의 지적 토양이 된 사상가들의 시대정신을 더듬어가며 불평등의 기원, 학문과 이데올로기의 관계, 인간의 소외와 국가의 역할, 국민 개념의 탄생 과정과 사회의 발전과정 등을 고찰했다. 평생을 불의에 맞서 살아왔던 한 실천적 지식인의 지적 원동력과 무기가 무엇인지 이야기하는 책.

"남에게 가해지는 비인간성은 내 안의 인간성을 파괴한다." 나는 칸트의 인식을 다시 보면서 그것을 내 것으로 삼는다. (줄임) 자본주의 체계의 근본적 원리는 개인들과 민족들 간의 살벌한 경쟁이다. 정체성의 의식과 도덕적 명령은 자본주의 체계와는 철저히 상반되는 전략을 펼치는데, 그것은 연대성의 전략이다. 자본의 논리는 대결, 전쟁, 파괴 등에 근거한다. 연대성의 논리는 인간들 간의 관계가 지닌 상보성과 호혜성에 근거한다. - <인간의 길을 가다> 349쪽


'의학계의 시인' 올리버 색스 <온 더 무브>

뉴욕 타임스가 '의학계의 계관시인(桂冠詩人)'이라 부른 올리버 색스. 신경과 전문의인 그는 인간의 뇌와 정신활동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문학적인 글로 독자들에게 전했다. 1933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난 그는 미국 알베르트아인슈타인 의대와 뉴욕대, 컬럼비아대 등에서 신경정신과 교수로 일했다. 2012년 탁월한 과학 저술가에게 수여하는 '루이스 토머스 상'을 수상했고, 지난해 8월 30일 향년 82세로 타계했다.

<온 더 무브>는 암 투병 중이던 그가 생을 마감하기 전에 자신의 삶과 연구, 저술 등을 담백한 어조로 써내려간 책. 이 책은 모터사이클과 속도에 집착했던 그의 젊은 날로부터 시작한다. 오랜 세월 세상으로부터 잊힌 질환과 환자들을 만나 삶의 진로를 결정하고 환자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고자 결정한 후, 대륙과 대양을 넘나들며 뇌, 의식, 정신의 비밀과 인간 존재의 본질을 파헤쳐나간 인생의 궤적이 담겨 있다.

살면서 일어난 일들이 주마등처럼 훑고 지나갔다. 대부분이 좋은 기억이었다. 고마웠던 일들, 여름날 오후의 기억들, 사랑받았던 일들, 선물 받았던 일들, 그리고 나도 무언가를 되돌려줄 수 있어서 감사했던 기억들. 또 내가 좋은 책 한 권, 훌륭한 책 한 권을 썼다는 생각도 스쳐지나갔다. 떠오르는 모든 생각이 과거시제로 쓰이고 있었다. "삶의 마지막에 떠오르는 모든 생각이 고마운 생각이게 하라"는 위 스턴 휴 오든의 시구가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돌았다. - <온 더 무브> 267쪽


'세계사적 자유인' 가토 슈이치 <양의 노래>

일본을 대표하는 참여지식인 가토 슈이치. 문학평론가이자 사회운동가인 그는 1919년 태어났다. 1951년 프랑스에 유학한 그는 이후 일생에 걸쳐 미국, 독일, 스위스, 멕시코, 중국 등 세계를 다니며 글을 쓰고 강의를 했다. 2000년에는 프랑스 정부의 레지옹도뇌르 훈장을 받았고, 오에 겐자부로, 쓰루미 슌스케 등과 함께 평화헌법 9조를 지키는 '9조 모임'을 만들어 2008년 생을 마칠 때까지 평화헌법 수호운동에 헌신했다.

<양의 노래>는 그가 50대에 출간한 자서전이다. 일본에서 출간 후 40여 이상을 찍으며 널리 읽혔지만 한국어판은 지난해에야 출간됐다. 한국어판은 그가 1966년부터 '아사히저널'에 연재한 '양의 노래'와 '(속)양의 노래', 수년 후 미국 출판사의 요청에 의해 쓴 '양의 노래 그 후'를 엮은 것이다. 이 책은 가토 슈이치의 정신이 형성되는 과정을 담은 기록이자, 극단의 시대에 세계 속에서 멈춤 없이 사유해온 지식인의 실천사다.

그날 밤, 갑자기 우리 집 텔레비전 뉴스가 중단되고 한 남성의 정면 반신상이 화면에 나타났다. 남성은 독일어로 비엔나 시민에게 보내는 호소를 반복했다. (줄임) 나는 프라하 거리에서 마주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이해했다. 한편에는 압도적으로 강대한 군사력이 있고, 다른 한편에는 지극히 설득력 있는 인간적 주장이 있었다. 한쪽에는 어떤 할 말도 없었고, 다른 한쪽에는 기지(機智)와 더 나은 사회를 꿈꾸는 희망이 있었다. 1968년 8월의 프라하에서는 언어가 전차에 맞서 싸우고 있었다. - <양의 노래> 중에서


'뇌과학의 살아 있는 역사' 에릭 캔델 <기억을 찾아서>

'기억'의 메커니즘을 밝혀 2000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신경과학자 에릭 캔델. 1929년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난 유대인인 그는 홀로코스트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했다. 하버드대에서 역사와 문학을 전공한 그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에 매료되어 뉴욕대 의대에 다시 입학해 정신과 의사가 됐고, 이후 정신과 기억의 근원을 파헤치기 위해 과학자가 되었다. 현재 컬럼비아대 교수이자 하워드 휴스 의학연구소의 선임연구원이다.

<기억을 찾아서>는 그의 삶과 50여 년에 걸친 연구 여정을 보여주는 동시에 인류의 정신과학, 뇌과학, 생물학이 어떻게 발전돼왔는지 풀어낸 책이다. 어떻게 행동주의 심리학과 인지심리학, 신경과학, 분자생물학이 수렴하여 새롭고 강력한 정신과학이 되었는지 알려준다. 캔델 스스로는 이 책을 "기억을 이해하기 위한 나의 개인적인 여정이 위대한 과학적 노력들과 어떻게 교차했는가에 대한 서술"이라고 정의했다.

과학하기의 재미는 비교적 알려지지 않은 지역을 탐험하는 데 있다. 미지의 땅으로 과감히 들어 가는 사람이 다들 그렇듯이, 나는 잘 닦이지 않은 오솔길을 가면서 때때로 외로움과 불확실성을 느꼈다. 내가 새 길에 들어설 때마다, 그러지 말라고 진정한 호의로 조언하는 사람들이 항상 있었다. 사회에서 사귄 친구들도 그랬고, 과학자 동료들도 그랬다. 나는 일찍부터 불확실성 속에서 편안함을 느끼고 핵심적인 문제들에 대한 나 자신의 판단을 신뢰하는 법을 배워야 했다. - <기억을 찾아서> 46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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