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카오스재단 김수현 팀장
2월 강연자 모임 풍경
’착각하는 뇌(라야 한다).’
올해 초 강연자가 보내준 제목은 좀 이상했다. 보통 강연 제목에 괄호가 붙는 것이 자연스럽지는 않다. 강연자인 정수영 박사(KIST 뇌과학 연구소 선임연구원)에게 전화를 걸어 ’이 괄호 꼭 넣어야 하나요?’라고 물어볼까 하는 생각까지 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라야 한다’, 의미가 와 닿았다. 그래. 우리 뇌가 착각을 하고 살고 있고, 착각을 해야 한다는 의미이구나. 그러고 보니 이 강연 꽤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번에 강연자를 만났을 때부터 남다른 강연자란 생각이 들었던 터였다.
주변이 움직이는 것 같은 착시를 주는 그림
정수영 박사를 처음 만난 때는 올해 2월 카오스 상반기 강연자 모임 자리였다. 올해 뇌 강연은 지난해 가을에 이미 주제가 결정되었고, 신희섭 단장부터 김대식 교수까지 뇌과학계 주요 석학들의 섭외는 작년 11월에 완료되었다. 강연자 모임은 강연 전에 미리 카오스 강연에 대한 설명을 드리고, 강연자들끼리 인사를 나누는 자리였다. 대부분의 강연자들은 교수답게 정장을 갖춰 입고 중후한 멋을 풍기며 회의에 참석했다.
올해 2월 열린 강연자 모임 회의 모습. 우측 빨간색 옷이 정수영 박사.
그런데 회의 시작 직전 아담한 체구의 여성이 들어왔다. 화장기 없는 얼굴, 청바지와 점퍼 차림에 배낭을 둘러멘 상태였다. 작은 체구인데 목소리는 어찌나 큰지 "안녕하세요"하는 목소리에 모두가 그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회의에 들어가면서 한 번씩 그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첨가되었다. 정수영 박사의 목소리가 들어가면서 딱딱했던 공간이 갑자기 환해지는 것 같았다. 그날부터 나는 정수영 강연자의 강연이 궁금했다.
기대했던 대로 강연도 특별했다. ’맹점탈’을 직접 쓰기도 했고, 무대에서 서슴없이 내려와 관중에게 질문을 하기도 했다. 질의응답 시간에는 비과학적인 질문에도 과학사실과 유머를 섞어서 장내를 유쾌하게 만들었다. 나는 리허설 때 까만 맹점탈을 쓰는 강연자를 보고 저절로 물개박수를 쳤다. 매일 교수님 혹은 박사님 소리를 들으며 지낼 텐데도 남들에게 전혀 권위를 내세우지 않는 그가 대단하게 보였다.
내가 착각하고 있다고?
다시 강연으로 돌아가서, 착각하는 뇌라니. 우리 뇌가 착각하는 것은 맞는 걸까?
위의 그림에서 좌측 이미지의 두 개의 선 길이를 보자. 대부분은 아마 다음과 같이 보일 것이다. 위쪽이 아래 선보다는 확실히 짧아 보인다. 우측 이미지의 위아래 두 회색은? 위쪽 회색은 아래쪽 회색보다는 어두워 보인다. 확실히 그렇게 보인다. 그럼 두 그림에 선을 하나 갖다 대보자.
그런데 선을 갖다 대니 좌측 두 선분은 길이가 같고, 우측 두 회색은 명도가 같다. 이런, 뇌가 잠시 착각을 한 것이다. 이처럼 우리 인간 대부분은 사물을 100% 정확하게 보지는 못한다.
강연자와 패널은 추측한다. 인류 진화 과정에서 시간이 오래 걸리는 정확한 판단보다는 빠른 판단이 생존에 더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고. 진화심리학자 전중환 교수(9강 강연자, 경희대)에 따르면 인간은 진화 역사의 대부분 (500~700만 년 전)을 아프리카 사바나 초원에서 수십 명 안팎의 친족 부락 내에서 수렵, 채집 생활을 하면서 보냈다고 한다. 만일 500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수렵생활을 했던 우리 인류의 최초 기원으로 여겨지는 사헬란트로푸스 차덴시스(오스트랄로피테쿠스 이전 초기 인류)가 거대 맹수를 만났다고 상상해보자. 그것이 내게 다가온다면 일단 도망가고 볼 일이다. 5.2m앞에 있는지 5.5m 앞에 있는지 정확히 파악할 시간이 없다. 카이스트 백세범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착각은 우리 몸 감각이 효율적으로 작용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현상입니다."
과학자들이 추측하는 ’사헬란트로푸스 차덴시스’의 모습. (출처 : 위키피디아)
세상을 보는 나의 시선은 때론 착각으로 이루어져 있을 수 있었다. 어쩌면 내가 믿었던 진리도 모두 의심해봐야 할 것 같다. 이제야 왜 많은 과학자들이 회의주의자-과학잡지 중에도 회의론자를 의미하는 잡지 <SKEPTIC>이 있지 않은가-인지 이해가 된다. 과학에 다가갈수록 우리는 의심해봐야 할 것들이 많아진다. 내 뇌는 때론 착각을 하며 살아가고 더구나 내가 보는 세상엔 맹점이란 구멍까지 있지 않은가.
강연 중엔 맹점 실험도 이루어졌다. 강연자는 맹점을 보여주기 위해 스스로 까만 맹점 구멍을 쓰고 실험 대상이 되어 주었다. 왼쪽 눈을 가리고 그가 말하는 대로 오른쪽 눈으로 한 곳에 집중했다. 그가 맹점 구멍을 쓰고 무대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왔다 갔다 하는데 어느 순간 그가 사라졌다. 분명히 저쪽에서 소리가 들리는데 말이다. 그제야 내 시선에 사물이 있지만 보이지 않는 맹점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평생 모르고 살뻔 했는데 정수영 박사 덕분에 체험으로 깨달았다. 평소 맹점을 느끼지 않고 살아왔으니 세상엔 맹점이 없는 사람도 있는 줄 알았다. 알고 보니 평상시 우리 뇌는 맹점을 못 느끼도록 뇌가 편집을 하고 있었다.
정수영 교수가 직접 맹점탈을 쓰고 진행한 맹점 실험
강연 리뷰를 쓰면서 아직 영상(http://tvcast.naver.com/kaos)을 보라고 대놓고 추천한 적은 없는데 시간이 없는 사람들도 7강 ’착각하는 뇌(라야 한다)’의 영상 중 뒤쪽 패널토의와 질의응답 영상은 꼭 보라고 권하고 싶다. 아주 재미있다. 패널 백세범, 정상철 교수와 강연자 정수영 교수 세 사람은 워낙 친한 사이라 그런지 합이 잘 맞았다. 보통은 사전에 토의 주제를 결정할 때 어느 정도는 의견을 보태는데 이번엔 기획자가 특별히 할 역할이 없었다.
어릴 때 박사들은 모두 척척박사인 줄 알았는데 스무 살 이후에야 박사가 한 분야의 박사지 모든 분야의 척척 박사는 아니란 사실을 알고 실망했다. 그런데 이들은 모두 내가 꿈꾸던 척척박사들이었다. 리허설 때 보니 어떤 주제를 제시해도, 아무 질문을 막 던져도 토크쇼처럼 맹렬히 이야기를 해나갔다. 덕분에 사회자 김철훈 교수(연세대 의대)는 평소보다 더 여유가 있었다. 가끔 당황했던 것은 이들이 유머 토크쇼를 펼치느라 시간이 지나도 그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유쾌하고 유익했던 시간을 준 세 분 교수님께 감사를 드린다.
출처
KAOS ’뇌’ 강연 중 7강 ’착각하는 뇌(라야 한다)’
강연자 : 정수영(KIST 뇌과학연구소 선임연구원)
패널 : 백세범(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패널 : 정상철(연세대 심리학과 교수)
사회자 : 김철훈(연세대 의대 교수)
강연 영상 : 카오스재단(http://www.ikaos.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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