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편>
'답살'이라는 살인의 형식에
'힘'의 비밀이 숨어 있습니다.
대통령은 그 힘의 포로입니다.
이 소설의 앞부분에 살인사건이 나옵니다. 하지만 그 사건이 소설의 골격을 이루지는 않습니다. 어디까지나 우발적인 사건이고, 이야기를 견인해내기 위한 단초일 뿐입니다. 앞에서도 밝혔듯 이 소설은 국민을 대리하는 대통령이, 대리하는 그 역할로 인해 겪는 일, 그리고 그것과 투쟁하는 과정에서 보여주는 그의 의지에 관한 것입니다.
어쨌든 사람이 죽었습니다. 그 사건은 대통령이 국민을 대리해 재벌과 열강에 맞선 것과 닿아 있습니다. 저들은 알게 모르게 자신들의 이익을 지켜줄 다음 대통령을 키우고 있었던 것입니다. 자신들의 이익에 맞서지 않을 그들의 아바타를요.
프레이저의 <황금가지>가 들려준 ‘만들어지는 신神’ 얘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사람을 신으로 만들고, 그를 희생양으로 삼아 제사를 지낸 후 그 육신을 뜯어먹는 원시부족 얘기인데, 현실에서도 그와 비슷한 일은 무수히 일어납니다. 이 소설의 살인사건 피해자는 ‘답살’되었습니다. 답살이란 밟혀 죽었다는 뜻입니다. 살인이라면 칼이나 농약이 든 막걸리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 여기서는 여럿이 둘러서서 한 사람을 밟아 죽입니다. 보고를 받은 대통령은 이 사건에 관심을 갖습니다. ‘답살이라는 살인의 형식’에서 신을 만드는 신앙적 욕망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마음속에는 힘을 경외하는 한편 주제넘게도 그 힘을 욕망하는 기운이 있습니다. 물론 그 힘의 정점에는 신이 있지요. 인간에게는, 힘의 정점에 있는 신과 소통하는 절차나 구조를 통해 경건함을 지키려는 것과, 그것을 유희하려는 욕망이 동시에 존재합니다. 이것이 인간이 신에게 갖는 양면성입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신은 도달할 수 없는 정점에 있는 힘이자 극적인 긴장을 주는 유희의 대상인 것이지요. 그 간극의 자장 속에서 벌어지는 것이 바로 엑스터시일 것입니다.
사람이 죽었다. 그런데 그것이 이상했다. 보고한 박도 그가 무엇에 관심을 둘 지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었다. 답살도 괴이한 것이었지만, 그보다 더 이상한 것은 사건 안에 똬리를 틀고 앉아 있는 K였다.
하지만 그는 K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대신 그는 그것에서 느낀 알 수 없는 힘에 빠져 있었다. 답살이라는 살인의 형식이 가진 알 수 없는 힘이었다.
무엇인가가 그들을 움직였다. 알 수 없었으나 선연한 어떤 느낌, 모호하기 짝이 없는, 그러나 인상적인 힘이었다.
그 죽음의 이름표가 강렬했다. '답살'이 무엇인지 알게 된 순간 그것에 어떤 느낌이 드리워졌다. 결정적인 어떤 느낌. 그러한 느낌 끝에 양 모가지가 떠오르고, 뒤이어 고르기의 그러쥔 손안에서 퍼덕였을 양의 심장까지 떠올랐을 것이다. 그리고 그 행위에 작용했을 어떤 힘이 느껴졌을 것이다.
힘이 느껴지면서 까닭을 알 수 없는 슬픔이 몰려들었다. 힘은 명료했으나 슬픔은 알 수 없었다. 왜 이것은 노여움이 아니고 슬픔일까. 왜 이것은 분노가 아니고 절망일까. 처음에 희미했던 그것이 점점 또렷해졌다. 또렷해지면서 격렬해졌다. 둘러서서 밟은 쪽이나 밟힌 쪽이나 다 그랬을 것이다. 그 현장에 작용했을 힘, 그 정체, 불가피성이라고나 할까. 그는 그들이 사로잡혀 있었을 어떤 힘에 빠져 몽골 초원에 이른 것이었다. <소설 본문 발췌>
조직이 하나 있다. 나는 그 조직을 잘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들에 대해 알기도 전에 이미 그 조직의 '신'이다. '회명구回命區라니?' 나는 한 번도 그런 조직이 있다는 얘기를 듣지 못했다. 그런데 각 부처에서 선발된 엘리트 관료들의 비밀 조직이라? 각 부 장관의 정책 보좌관들이 모여 부처 간 정책을 조율하는 모임이 있다는 얘기는 들었었다. 처음엔 그 모임을 떠올렸었다. 이미 알려질 대로 알려진 조직이었다. 그것이라면 비밀일 것까지 있겠는가? 그런데 이름마저도 해괴하다. '회명구'라니? 도대체 그것은 무엇을 뜻하는 이름일까?
나는 그들에게 간택되었다. 간택되어 대통령이 되었다. 맙소사, 대통령이라니. 간택되면 대통령이 되는 건가? 그러나 그렇지는 않은 모양. 그들에게도 처음 있었던 일이니, 전설이니 어쩌니 했었겠지. 내 자신이 대통령이 되려고 특별히 애쓴 것이 없고 보니, 그 간택이라는 것이 주효한 것만은 분명했다는 판단이 선연했다. <작가 노트에서>
임기 후반에 가서야 드러난 실체. 대통령은 자신이 이미 그들에게 발목이 잡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결국 그의 결단이란, 그들의 제물이 되지 않는 것과 사태를 극복하고 모든 것을 제자리에 돌려놓는 것이었습니다.
대통령의 첫 번째 굴욕은
그의 전용차 안에서 벌어집니다.
소설의 프롤로그(개시開始)는 이 소설의 취지를 말하는 매우 상징적인 에피소드 하나를 담고 있습니다. 대통령이 굴욕을 당하는 장면인데, 그를 짓뭉개는 건 그의 경호원입니다. 세상의 모든 존엄한 존재들…, 그냥 '존엄'이라고 해도 되겠습니다. 왕조시대 이후 다시 요즘 들어 많이 사용하는 말이니까요. 과연 존엄한 존재로서의 그들은 존엄할까요? 저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존엄'을 어떻게 대하는가에 그 비밀이 숨어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들여다보니 사람들이 대하는 주체는 결코 존엄하지 않았습니다. 존엄이 아니더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존엄을 형식에만 가두고, 그 형식을 즐기려는 욕망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아주 교활한 뱀의 욕망입니다. 그 욕망은 어디서건 조건만 갖추면 탐욕스럽게 진화하고 자랍니다. 그래서 결국 경호원도 자신의 무릎을 존엄한 존재인 대통령의 가슴팍 깊숙이 밀어 넣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경호'라는 형식을 욕망한 것이지요.
인간이 가진 선계(?)의 욕망을 얘기해보려는 것이 이 소설의 주제 중 하나이기도 했습니다. 존재하는 존엄은 결국 형식입니다. 말하자면 그것이 운명적으로 ‘상징’일 수밖에 없는 존엄의 이유인 것입니다. 절대적인 것은 존재하지 않은 것에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흔히 신神이라고 부릅니다. 이런 것이 결국 삼위일체 같은 것을 믿게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결국 존재하는 것은 상징일 수밖에 없는 운명인 것입니다. 예수가 그랬듯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