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제4편>
대통령은 댓글을 달았습니다.
’이어도 프로젝트’는 또 무엇일까요?
코드원은 골방에 숨어 댓글을 답니다. ’시발쉐이들….’ 그는 오늘 밤도 댓글로 저항합니다. 어쩌면 탁자 위에 올라가 춤을 추다가 내려왔을지도 모릅니다. 알몸의 그가 지금 골방 테이블 위에 놓인 모니터를 노려보고 있습니다.
분단은 한반도가 암처럼 몸에 지니고 있는 지정학적 변수입니다. 세월이 흘러도 그 영향력의 모양은 바뀌기 힘들어 보입니다. 우리가 가진 이 분단이라는 조건이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열강의 이익관계와 맞물려 고착되면서, 이제는 돌이키기 힘든 난치병으로 굳어지고 있는 듯합니다. 이대로 계속 가면 언젠가는 오직 터져버리는 일만 남게 되겠죠.
NLL 문제를 바라보는 우리 정치는 이성적이지 못합니다. 자신들의 하찮은 정치적 이익을 위해 국민의 위험을 가중시키는 엔트로피를 끊임없이 증가시키고 있습니다. NLL은 우리가 가진 가장 위험한 라인입니다. 그 라인은 국제법상 누구도 보장해주지 않은 불완전한 경계입니다. 국가가 가진 가장 큰 욕망은 영토 욕망입니다. 그 예민한 심지를 드러낸 우리 시대의 폭탄이 바로 NLL인 것입니다.
그런데 NLL이 놓인 우리의 서쪽 바다 황해는 중국이 준내해로 여길 만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바다입니다. 저는 소설에서 그곳을 ’중국의 콧구멍’이라고 불렀습니다. 그곳에서 미국과 한국, 그리고 은밀하게는 일본까지 참여하는 군사훈련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에 맞서 중국과 러시아가 역시 황해에서 연합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바로 이 두 나라와 군사적 분쟁에 자동 개입하게 되어 있는 동맹관계에 있고, 우리나라 역시 미국과 그렇습니다. 그러니 이곳은 말 그대로 ’화약고’인 셈입니다.
"일본 이지스함은 앞으로도 계속 비공식적인 존재로 이 훈련에 참여하겠군요?"
그는 국방장관과 외교차관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들은 대답하지 않았다. 이 훈련에 일본 이지스함이 참여하는 것은 이미 관행화되어 있었다. 수년째 이미 뿌리내린 것을 흔들 때에는 분명한 명분이 필요했다.
다시 안개 속이었다. 답답했다. 그가 일어섰다.
"지금 당장이야 괜찮아 보이겠죠. 하지만 NLL, 이거 문제없나요? 제가 보기에는 마치 폭약 속에 꼽혀 있는 뇌관 같습니다. 미국하고 일본이 동중국해에서 하고 있는 훈련, 그리고 중국과 러시아가 손잡고 역시 서해에서 3년 전부터 시작한 훈련, 이 두 훈련이 서로 맞겨루고 있는 것 맞죠? 둘 다 우리 서쪽 바다에서 하고 있습니다. 이 겨루는 힘이 커지면 커질수록 그만큼 폭발력도 커지겠죠. 언론의 표현대로 화약고, 맞나요? 매년 펌프질을 하면서 화약고 키우고 있는 겁니다. 그 화약고에 NLL이 뇌관처럼 꼽혀 있습니다. 북한은 중국과 군사조약을 맺은 관계이고, 우리는 미국과 그러하니, NLL에서 잘못되면 지금 하고 있는 양쪽의 훈련이 말 그대로 가상이 아닌 거지요."
말하면서 보니 팔걸이에 기대고 앉아 있던 외교차관의 몸이 점점 더 기울어지고 있는 중이었다. 그의 가슴 밑이 뜨거워졌다.
_<대통령의 골방> 본문 발췌
코드원은 임기 중 NLL 구역을 평화지대로 바꿔 그 위험한 뇌관을 소멸시키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반도 주변 열강의 안보이익과 싸워야 하는 문제가 그 의지를 막아섭니다. 최근 미국의 태평양 정책은 막강한 군사적 힘을 갖기 시작한 중국과 맞서 있습니다.
그 기다란 라인은 중국을 태평양으로부터 완전히 고립시킬 것이다. 봉쇄된 중국은 반발할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같은 말을 할 것이다. 북한의 미사일 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것이며, 중국을 겨냥한 것이 아니다. 유럽에서도 미국은 똑같이 말했었다. 유럽 MD체계에 러시아가 반발하자 미국이 말했다. 이란의 미사일 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것이며, 러시아를 겨냥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유럽에 없는 것이 우리에게는 있었다. 격전의 스위치, 서해의 NLL이었다.
"그것으로 동중국해는 더욱 긴장하게 되겠지요."
욕망은 이미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것에 힘이 실렸다. 아무리 그럴싸한 명분으로 감추려 해도 감춰지지 않은 것이 거기 있다.
미국의 동아시아 군사전략의 핵심은 MD체계다. 중국은 5년 전 건조한 항공모함을 태평양에 내보냈다. 그것은 미국의 동아시아 군사전략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었다. 지난주에도 중국 항모 선단이 태평양을 향해 요나구니섬과 이와이섬 사이를 빠져나갔다는 정보보고가 있었다. 드디어 태평양을 두고 두 열강의 각축이 시작된 셈이었다.
너는 누구 편이냐, 고 묻거나 혹은 내 편이 되라, 는 강요는 고려해볼 여지가 있었다. 그러나 이 군사전략의 핵심에는 지난 이념시대의 편 가르기를 떠올리기에 부족함이 없을 선택이 강요되고 있었다. 당신은 체제 안에 있는가, 밖에 있는가. 사상적 틀을 떠올리기에 부족함이 없을 질문이었다. 미국과 일본이 MD라는 하나의 체계를 갖춰 결국 체제를 이룰 것이다. 그 체제에 들어가는 선택을 앞두고 망설이는 당신은 인가?
교역 규모가 가장 큰 중국과의 관계가 작지 않으나 옹색해져 있었다. 그것이 옹색하게 보이게 하는 것은 매우 극적인 효과였다. 스스로 옹졸하게 느끼게 하는 힘이 있다. 큰 것을 하찮게 보게 하고 작은 것을 중요하게 보게 하는 힘이 작용하고 있었다.
한반도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그 자신들도 감당키 어려울 욕망들이었다. 그것들은 욕망이면서 그 자체가 거대한 절망들이었다. 그것에는 선택지가 없다. 오직 앞으로만 나가게 되어 있는 쇳덩이의 욕망이었다. 무책임한 욕망이 화인처럼 찍힌 쇳덩이인 것이다. 숨이 가빠졌다. 최근 들어 가끔 일어나는 증상이다.
_<대통령의 골방> 본문 발췌
코드원이 결정한 NLL평화지대 설정은 한반도의 미래를 위한 매우 중요한 선택입니다. 과연 그는 군사적 동맹관계에 있는 우방이 태평양에 갖고 있는 욕망과 타협하여 우리의 안보를 지킬 수 있을까요. 이 부분에서 곤돌리자 라이스 미 전 국무장관의 비웃음이 떠오릅니다. 정말 ’한국의 동아시아 균형자 역할’이라는 말은 우리의 대통령이 입에 올릴 수 없는 금기어인지요?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