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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Jun 02. 2016

단어의 생명을 찾는 남자, 장한업의 '5분 세계사'

              

* 장한업 이화여대 불어불문학전공 교수가 신간 <단어로 읽는 5분 세계사>를 펴냈습니다. 글담출판사 편집부가 장한업 교수와 한 인터뷰를 북DB 독자들을 위해 이곳에 옮깁니다. - 편집자 말





캐내면 캐낼수록 비밀스런 이야기가 살아 숨 쉬는 곳. 문화와 역사의 뿌리를 만날 수 있는 곳이 바로 '어원(語源)'이다. 한 단어의 탄생을 통해 어원의 가치는 물론 흥미진진한 세계사가 눈앞에 펼쳐진다. <단어로 읽는 5분 세계사>를 통해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흔히 사용하고 있는 60여 개 단어의 비밀을 만나보자.



Q 교수님은 어떤 계기로 어원 공부를 하게 되셨나요? 그 매력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대학을 졸업한 후,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어요. 몇 년간 불어교육학을 전공하면서 제가 배운 것들은 비단 언어뿐만이 아니었지요. 프랑스인들의 각별한 언어·문화 사랑을 보고 느끼면서 배운 것들이 참 많았어요. 1993년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는데, 한국인들의 외국어·외래어 오용과 남용이 얼마나 심각한지 다시금 깨달았죠.



물론 국제화·세계화 시대에 외국어·외래어를 사용하지 않을 수는 없어요. 그렇다면 최소한 그 의미는 바로 알고 써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 뜻에서 2002년 한국의 일상생활에서 사용되는 외국어와 외래어에 관심을 갖고 그 어원에 대해 조사하기 시작했어요. 수많은 단어가 제각각 사연을 지니고 있고, 그 사연을 따라가다 보면 단어를 만든 사람, 단어와 관련된 사건, 단어가 변해온 역사를 모두 만날 수 있습니다. 무척 흥미로운 과정이었고, 단어가 생명을 가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Q 단어에 생명이 있다는 것은 어떻게 풀이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교수님이 생각하시는 어원의 가치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은행이라는 단어는 어떻게 탄생되었는지 아시나요? 약 4천 년 전 고대 바빌로니아 왕국 신전의 탁자에서 성직자들이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던 것이 은행의 시초였다고 해요. 그 후 은행은 어떻게 변화, 성장하여 현재의 모습에까지 이르렀을까요? 은행이란 단어를 따라가 보세요. 그럼 한 나라, 그 시대의 문화와 역사에 대해 알게 되고, 과거와 현재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어요.



그래서 단어에는 생명이 있고, 사람처럼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과정을 거친다고 말할 수 있지요. 필요에 의해 생겼다가 열심히 쓰이고, 사용되지 않을 땐 없어지기도 해요. 그래서 저는 단어의 존엄성을 알게 되면, 함부로 단어를 대하거나 마구잡이로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어의 생명을 존중하고, 단어를 올바르게 사용하는 일, 그것이 어원의 가치라고 할 수 있지요. 



Q 이 책을 특별히 추천하고 싶은 분들이 있으신지요? 



요즘 청소년들은 비속어, 외래어, 줄임말 등 무분별한 언어 사용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버젓이 우리의 말이 있고, 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올바른 말과 글이 사용되지 않아 교육자로서 안타까울 때가 많습니다. 이 작은 책을 통해 지적 성장기에 있는 청소년들이 세상을 좀 더 넓게 바라보기를 바라며, 사소한 것에도 소중함을 느낄 수 있기 바랍니다. 일상적으로 사용되어 무관심의 대상이 되기 쉬운 것에 대해 한번쯤 관심을 기울여보세요. 생각의 크기가 달라질 것입니다.





"언어 빈곤해지면 한국 문화 무너지고 결국 한국인 정체성도 사라져"



Q 독자들이 책을 읽으면서 어떤 생각을 가져보면 좋을까요? 



이 책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면 정말 다행이고 감사한 일입니다. 언어는 결국 문화의 힘이라고 할 수 있어요. 한국어가 없다면 한류가 존재할 수 없듯이 모든 것은 언어가 기반입니다. 영어를 비롯한 외국어를 남용하면 그 자리에 쓰여야 할 한국어가 없어지고, 언어가 빈곤해지면 한국 문화가 무너질 수밖에 없어요. 결국 한국 문화가 무너지면 한국인의 정체성도 사라지겠지요. 자신의 정체성을 잃은 나라는 결코 강대국이 될 수 없습니다. 이 책을 통해 외국어와 외래어들의 정확한 의미를 알고, 사용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단순하게는 나의 언어생활을 돌아보고, 문화생활, 더 나아가 삶 자체를 돌아볼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Q 세계사에 관심이 많은 분들에게도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과거에는 '그들'의 역사로 인식되었던 것이 세계사입니다. 오늘날은 국제화·세계화 시대이기에 모든 사건과 문화가 '그들'의 역사만이 아 닌, '우리'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세계사에 관심이 있는 정도를 떠나 많은 분들이 눈을 좀 더 크게 뜨고 세계사를 바라보았으면 합니다. 



Q 600여 개 단어 이야기를 조사하시면서 교수님께 가장 흥미로웠던 역사 이야기는 무엇인가요? 



사실 모든 이야기들이 저에게는 지적 희열을 느끼게 해줬습니다. 7년이란 시간을 어원에 푹 빠져 살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지요. 그래도 한 가지를 꼽자면, 캥거루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어요. 1770년대에 제임스 쿡 선장이 태평양 일대를 건너가고 있었습니다. 잠시 쉬어가기 위해 오스트레일리아의 어느 강에 정박을 했는데요. 유럽에서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동물이 껑충껑충 뛰어가고 있더랍니다.



그래서 쿡 선장은 원주민에게 "저 동물의 이름이 뭔가요?" 하고 물었어요. 원주민은 "캥거루~"라고 대답했다는 거예요. 난생 처음 보는 동물의 이름이 참 신기하다고 생각한 쿡 선장은 며칠 후 통역관에게 캥거루란 동물에 대해 물어보았대요. 그랬더니 그 통역관이 하는 말. "캥거루는 원주민어로 '모르겠다'는 뜻이에요. 하하." 이렇게 탄생한 캥거루의 이름, 너무 재미있지 않나요?(웃음) 



Q 집필하시면서 특별히 신경 쓴 부분이 있으신가요?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아 60여 개로 추리는 것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출판사에서는 독자들이 좀 더 읽기 쉽고,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고대, 근대, 현대로 단어를 잘 배열해주셨어요. 관심이 가는 시대를 먼저 읽어보셔도 좋고, 궁금한 단어를 먼저 찾아보셔도 좋아요. 그저 편안하게 한 편씩 읽어보셨으면 합니다. 



Q 책에 담지 못한 이야기들이 많은데요. 특별히 더 전하고 싶은 이야기도 있으신가요? 



그렇습니다. 약 600개 단어의 이야기를 알고 있기에 책에 담지 못한 이야기들이 아쉽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 외부 강연을 통해 어원 이야기를 할 수 있지만, 이렇게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것도 의미가 큰 것 같습니다. 향후에 기회가 된다면, 나머지 이야기도 소개해드리고 싶네요.





"말장난처럼 쉽게 쓰는 말 너무 많아... 창조라 생각하면 안 돼" 



Q 앞서 프랑스는 말의 올바른 사용을 중시한다고 하셨는데요. 어느 정도인지 궁금합니다. 



프랑스인의 자기 말 사랑은 유별납니다. 17세기 중반에 이미 국립 학술단체를 만들어 프랑스어를 갈고 다듬었어요. 이러한 오랜 노력이 있었기에 프랑스가 노벨문학상을 가장 많이 받을 수 있었다고 봅니다. 1994년 프랑스의 문화부 장관이었던 자크 투봉(Jacques Toubon)은 프랑스어 보호를 위해 이른바 '투봉법(Loi de Toubon)'을 제시했어요. 이 법은 프랑스 내의 모든 상품이나 서비스 광고(지면, 음성, 영상광고 등)는 반드시 프랑스어를 사용해야 하고 만일 외국어 광고인 경우에는 프랑스어로 번역한 문장을 병행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죠. 그런데 우리나라는 어떤가요? 주변을 한번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Q 우리나라의 외국어와 외래어 남용이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시나요? 



한글날이 무색해질 정도로 극을 달리고 있습니다. 잡지, 광고, 심지어 공영방송에서조차 무분별하게 사용하고 있어요. 우리가 익숙하게 사용하는 '커튼'이란 말도 사실은 외국어죠. 북한에서는 커튼을 '창문보'라고 한다고 해요. 순수 우리말을 우리가 다 죽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또 뜻이 맞지 않는데도 한글과 영어를 합성해서 사용하기도 하고, 흔히 말장난처럼 쉽게 사용하는 말이 너무나 많아요. 그것을 창조했다고 생각하면 안 될 것 같습니다. 앞서 말씀 드렸듯이 언어가 결국 문화의 힘이기 때문이지요. 



Q 그것이 잘못된 것인 줄 알면서도 쉽게 고칠 수 없는 우리 청소년들에게 조언의 한 말씀 해주신다면요? 



청소년들의 언어생활은 외국어나 외래어와 관계없이 매우 우려스러울 때가 많아요. 하이데거의 말처럼 '언어가 사고의 집'이라면 저속한 언어사용은 저속한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청소년들은 이러한 위험을 이해하고 자신의 언어생활을 한번쯤 돌아보세요. 좀 더 품격 있는 언어생활이 더 나은 어른이 될 수 있는 길입니다. 



Q 마지막으로 집필 계획이 궁금합니다. 또한 어떤 교육자로 남고 싶으신지도 말씀해주시죠. 



요즘 제가 공부하고 있는 상호문화교육에 관한 책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한국에 상호문화교육을 도입하고 확산시키는 교육자로서, 건강한 다문화 사회를 만드는 데 일조할 계획입니다.



사진 : 글담출판사 제공


취재 : 인터파크도서 북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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