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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Jun 03. 2016

"이웃이 이웃을 죽인 것"...

작가 인터뷰 주경철의 <마녀> 이야기



우리는 '마녀사냥'이라는 용어를 신문이나 뉴스에서 접한다. 그러나 이 용어는 그 대상이 정말 마녀라는 존재라고 규정하고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특정 인물이나 무리를 희생양으로 삼는다는 문화적 의미를 지닌다. 그런데 '마녀'라는 이 용어 자체를 생각해보면, 우리는 서구문명사에서 뿌리 깊게 이어져 내려온 여성성에 대한 억압, 혐오, 공포를 읽어낼 수 있다.

그렇다면 유럽문명사에서 중세부터 근대 초까지 자행된 '마녀사냥'은 남성 중심적 가부장제가 여성성 자체를 공격하고 억압해왔던 것이라고 단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을까? 주경철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가 펴낸 책 <마녀>는 이러한 질문에 대해 아주 면밀하게 역사적 행로를 추적한다. 이 흥미로운 제목과 그로테스크한 책 표지는 ‘아주 잔혹한 역사적 사례들과 이야기들을 접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러나 독자들은 이 책이 의외로 상당히 빽빽한 밀도의 자료조사와 연구 분석으로 채워졌다는 사실에 적잖게 놀랄 것이다.

"하하, 그래서 저도 사실은 조금 걱정을 했어요. 사람들이 책 표지를 보고 오해해서 책을 펼쳐보고 실망하지 않을까 했어요. 모두들 굉장히 자극적이고 호러무비 같은 재미를 기대하고 이 책을 펼치지 않을까…. 사실 이건 연구서라서 쉬이 읽히는 책은 아니지요. 상당히 많은 자료를 분석하고 있는 책이라 찬찬히 읽어야 하는 책이긴 합니다. 오히려 마녀라는 키워드를 통해 서구문명의 성격을 다시 들여다보는 계기로 읽어주었으면 합니다."

그러니까 이 책은 마녀사냥의 다양한 사례들을 소개하기보다 '마녀'라는 개념이 어떻게 종교와 국가를 통해 형성되고 실천되었는지 그 역학구조를 따져보는 작업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기독교가 유럽문명을 지배하면서 각종 마술(magic)을 ‘마법(witchcraft)’이라는 사악한 힘으로 규정하고, 가혹한 고문과 처형을 자행했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이러한 마녀 개념의 기원부터 그 개념이 어떻게 논리를 갖추고 사법재판까지 이어지게 되었는지에 집중하고 있다.

"마녀사냥의 사례들은 1차 연구에서 많이 진행돼서, 찾아보면 많이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생각해볼 문제는 '그게 어떻게 가능했는가' 하는 점이에요. 그러한 엄청난 일이 공적으로 행해지자면 가해자, 피해자, 공동체가 어느 정도 그 합의를 공유하고 받아들여야 하잖아요. 단순히 지배층의 판결과 모함만으로 가능하진 않거든요. 그러한 공감들은 정말 오랜 기간에 걸쳐 형성되었어요. 신학적 논리에서 사회적 관행으로 어떻게 완결되었는지를 파악해보자는 겁니다. 마녀라는 것이 종교적 관념, 신학적 논리로 끝난 게 아니라 사법적으로 처형되고, 실행에서 검증된 것이 다시 논리에 피드백 되고 진화해온 과정을 추적해보고 싶었습니다."



"공동체 갈등이 상층 논리와 맞아떨어진 것, 마녀사냥의 시작"

이 책의 부제, "서구문명은 왜 마녀를 필요로 했는가"에서부터 ‘마녀’는 서구 사회가 만들어낸 개념이라는 일련의 전제가 깔려 있다. 그렇다면 정말 그 힘이 악마적인 것이든 무엇이든 간에 마녀, 마법사라는 초월적 힘을 행하는 존재는 없었을까?

"초자연적인 존재가 어떤 사회나 어떤 문명에도 있었어요. 점쟁이, 주술사, 무당과 같은 존재는 원시사회나 불교 문명, 이슬람 문명에서도 있었을 거란 말이에요. 그런데 어떤 문명에서도 유럽 기독교 문명에서처럼 이 존재를 무척 심각하게 적대시 한 적은 없지요. 어떤 사람들을 악마의 하수인으로 규정하고 태워 죽이는 그런 심각한 사례는 없었다는 거지요. 그렇다면 이렇게까지 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답은 '이 문명의 성격 자체가 진지한 악의 규정을 필요로 했다, 즉 어떤 절대적인 선을 규정해야 했고 또 그 만큼 적대적인 악을 규정할 필요가 있었다'로 귀결될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유럽분명에서 유독 악의 세력을 상정하고 또 그것을 제거하려는 강박증이 나타난 이유가 무엇일까? 이러한 강박증의 기원은 313년 로마제국의 기독교화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유일한 합법 종교가 되어 다른 신앙 위에 군림하게 되면서 기존의 이단과 마술 등에 확고한 입장을 표하고 금기시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동안 주술, 마술, 신술 등으로 불렸던 일들은 ‘미신’에 불과한 것으로 치부된다. 그런데 왜 중세에 이르러 기독교과 국가는 '마녀'라는 존재에 위협을 느끼고 극단적인 마녀사냥들을 벌이게 된 것일까?

"마녀라는 개념은 무척 장기간에 걸쳐 형성된 겁니다. 보통 상류 지배층이 민중문화를 공격한 핵심적인 열쇠가 마녀사냥이라고 설명하곤 하는데, 그것은 마녀사냥의 측면을 절반만 설명해줄 수 있어요. 물론 마녀라는 개념 틀을 만들어낸 사람들은 상류층이지요. 그런데 국가기관과 종교가 어떤 사람을 유죄판결 내려 화형 시킨다는 것 자체가 심각한 일이고 아주 정교한 논리가 필요하지요. 기독교와 국가가 개념 틀을 주조했지만, 거기에는 무수한 민중문화적 요소들이 끼워넣어져 있어요. 상류층의 논리가 민중문화, 혹은 공동체 자체를 공격한 일이라라고만 볼 수 없어요.

이 연구를 통해 저도 새롭게 보게 된 것이 공동체라는 존재예요. 우리는 공동체, 민중, 하면 인간적이고 따뜻하단 생각을 하지요. 그런데 자료들을 면밀히 보면 이건 꼭 지배층이나 외부세력이 공동체를 공격했다기보다 공동체 내부의 갈등이 폭발한 것이라 볼 수 있는 지점이 많아요. 이웃이 이웃을 죽인 것이지요. 다시 말해 공동체의 갈등이 상층의 논리와 맞아 떨어져 ‘마녀사냥’이라는 채널로 터져나온 것이라 할 수 있어요."

그렇지만 남성 가부장적 문화와 제도, 그리고 국가권력의 억압이라는 측면이 마녀사냥의 주요한 측면이었다는 것도 사실이다. 책에 따르면 아주 소수의 예외로서 '남자 마녀'를 제외하고 기본적으로 마녀는 여성이었으며, 러시아라는 예외를 제외하면 대부분 지역에서 여성 마녀의 비중이 훨씬 높았다고 한다.

"물론 그런 성격을 띠어가지요. 그런데 중세 전기나 중기까지만 해도 마녀사냥으로 남자들이 더 많이 희생당했어요. 왜냐면 예전에는 주술을 행한다는 것 자체가, 또 나아가 악의 힘을 불러오는 것이 상당히 고도의 지식과 기술을 필요로 하는 일이라고 여겼으니까요. 그런데 14~15세기로 넘어오면서 여성성 자체가 악과 통한다는 통념으로 바뀌게 되지요.

중세 기독교 문명이 갱신과 정립을 거치면서 무엇이 선이고 악인지에 대한 재검토를 하게 되요. 이러한 종교적 진리에 대한 완전한 재검토에서 특징적으로 볼 수 있는 게 '성녀'에 대한 재검토이지요. 그 가장 전형적인 사례가 잔다르크입니다. 우리가 성녀라고 생각했는데, 그녀가 행사하는 힘이 정말 하느님에게서 온 것이 맞느냐, 그거 혹시 악마의 힘이 아니냐 하는 의심과 의혹이 일어나는 거지요."



"우리나라에선 '북한'도 마녀... 사회적 필요에 의해 악을 규정"

정말 궁금한 것은 누군가가 마녀로 몰리게 되면, 사법재판이니 만큼 그에 대한 입증이 필수적이었을 텐데 아이를 잡아먹는다거나 악마와 성관계를 갖는다거나 하늘을 날았다는 증거를 어떻게 입증했는가 하는 것이다. 주 교수는 그런 혐의에 대한 입증이 갇힌 논리 안에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설명한다.

"그런 판결과 처형을 가능케 한 것이 신학적 논리였지요. 그 논리는 나름 탄탄하고 치밀하게 오랫동안 만들어졌어요. 그 논리 밖에서 보면 말이 안 되는 논리이지만, 그 논리가 닫힌 체계 안에서 귀결되기 때문에 논리성 그 자체로는 합당한 것이 되었던 거지요. 이 재판의 증거는 대부분 증인이었어요. 그런데 증인도 결정적 증거가 될 수 없으니 나중에 결정적 증거는 자백이 돼요. 영혼에서 나오는 자백이 신학적 논리에서 가장 결정적 증거가 되고, 그래서 고문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되는 거지요."

이런 닫힌 논리와 자백은 오늘날 '마녀사냥'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일들의 본질을 가장 잘 보여주는 듯하다. 아울러 주 교수가 마녀사냥의 본질로 또 지적하는 부분은 권력의 정당성 확보에 이용된다는 점이다. 이는 근대국가의 형성이 마녀사냥과 역설적으로 맞물려 있다는 점에서 잘 드러난다고 한다.

"마녀사냥은 대체로 15세기 말에 일부 지역에서 모습을 드러냈지만 17세기 전반기에 폭발했어요. 게다가 계몽의 시대, 이성의 시대라는 18세기 초입까지도 유럽과 미국에서 일어났지요. 마녀재판의 실행은 권력이 종교적, 세속적 정당성을 세우는 데 매우 유용하게 이용되었지요.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근대국가가 확립이 되고 나면 지방권력의 구시대적인 마녀사냥은 오히려 중앙정부의 권위 확립을 저해하는 요소가 돼요. 결국 근대국가의 강화가 마녀재판을 종식시키게 되지요. 오히려 이 시기 마녀사냥은 독일이나 스위스처럼 근대국가에 뒤쳐진 지역에서 후진적 현상으로 나타난 겁니다."

오늘날 우리가 마녀라는 말에서 떠올리는 '악마적인 것'이라는 생각은 많이 약화된 듯하다. 영화 '말레피센트'나 '겨울왕국'에서 그려지는 마녀의 모습은 근본적인 악마라기보다는 오히려 다소 상처 입고 억압된 인물들로 인간적인 공감대를 불러일으키곤 하지 않은가. 주 교수는 분명 오늘날 기독교가 '지옥'이나 '악마'를 그다지 강조하지 않는 것처럼 '마녀'라는 개념 그 자체에 악마적인 색채가 약화되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반면 우리 사회에서 메타포로 쓰이는 '마녀사냥'에서 우리는 더욱 확장되고 다양한 악의 개념들을 접할 수 있다고 말한다.

"마녀라는 개념이 원래 기능을 잃은 대신 다른 기능전환을 한 것이라고 볼 수 있지요. 60년대 미국의 매카시즘,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북한, 나치에게는 유대인과 같이 사회적 필요성에 의해 악을 규정하는 기능으로 전환된 것이지요. 또 저는 오늘날 마녀사냥이 어떤 정치적 행태뿐 아니라, 심리적 기제로도 작동한다고 여겨져요. 조심스러운 이야기지만 가령 어떤 사람이나 집단을 단죄하기 시작하면, 공동체의 분노와 갈등을 그 지점에 모아 무섭게 몰아가는 여론에서도 마녀사냥의 일면을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진 : 기준서(스튜디오춘)


취재 : 이진실(북DB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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