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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Jun 07. 2016

그녀는 왜 '길의 여왕'이 됐나

상품가치연출 전문가 이랑주  저자 작가인터뷰

                  



'독하다', '세다'라는 표현을 유독 여성들에게만 자주 쓰는 이유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이 있다. 일반적으로 자신의 분야에서 성공한 남성들에게 '독한 남자', '센 남자'라는 표현을 잘 안 쓰지 않나. 특정 분야에서 성공을 했거나 어려움을 이겨낸 여성들을 향해 이러한 수식어를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좋아 보이는 것들의 비밀>의 저자 이랑주 역시 그렇다. 사람들은 그녀의 성공에 '독하다', '세다'라는 표현을 흔하게 붙이곤 한다. 하지만 그러한 수식어만으로 그녀가 ‘비주얼 머천다이저(VMD)’로서 밟아온 발자취를 간단히 압축하거나 요약할 수는 없다. 이즈음에서, 그녀를 들여다보는 조금 더 새로운 현미경이 필요한 이유다. 



[이랑주 들여다보기 하나] 백화점에서 전통시장으로... 23년차 VMD



이랑주는 23년차 VMD다. 매장관리연출전문가 혹은 매장기획자라고도 부르는 VMD, 비주얼 머천다이저(Visual Merchandiser)는 매장의 총체적인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사람이다. 마네킹에 어떤 옷을 입혀서 무슨 자세로 세울지, 백화점의 쇼윈도를 무슨 소품으로 장식할지 등 효과적인 진열 방법을 연구한다. 신상품이 나오면 이에 어울리는 진열을 하고, 잘 팔리지 않는 것을 선별해 판매를 유도하거나 조명의 밝기, 직원들의 의상과 화장까지도 확인한다. 한마디로 매장의 지휘자인 셈이다.



그녀를 처음 맞닥뜨렸을 때, 세련된 외모와 지적인 느낌으로 인해 줄곧 도시에서만 살았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그녀는 포항 구룡포의 작은 시골마을에서 태어나 자랐다. 6남매의 막내로 넉넉지 않은 유년기를 보내기도 했다.



"아버지가 어부였는데 통조림 공장에 손을 대셨다가 집안이 쫄딱 망했어요. 그래서 중학교 때부터 학비를 전혀 못 받았죠. 언니, 오빠들 모두 장학금을 받거나 일을 하면서 학교를 다녔고요. 당시 집 마당에서 돼지를 길렀는데, 저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돼지를 돌봤어요. 새벽부터 일어나서 여물을 먹이고, 돼지 탯줄도 수없이 잘랐죠. 그걸 팔아서 학비를 마련했고요. 돼지가 우리를 탈출해서 안방으로 들어오기도 하고, 태풍이 오면 떠내려가는 돼지를 건져 올린 적도 많아요.(웃음)"



그녀는 상업고등학교를 나와 지방의 전문대를 졸업했다. 이랜드에 계약직으로 들어간 뒤 실력을 인정받아 현대백화점 압구정점에 정직원으로 입사했다. 그 뒤로 10여 년 넘게 백화점에서 VMD로 경력을 쌓으며 대학원에 진학해 박사학위까지 마쳤다. 남부럽지 않은 성공의 길을 걷던 그녀였지만 과감하게 퇴사를 한 뒤 자신의 이름을 내건 VMD 연구소를 차렸다. 이후 교보문고, LG전자, 하이마트 등의 대기업과 대형마트의 컨설팅을 도맡았다. 남편과 함께 세계여행을 떠나 1년간 40여 개국, 150여 곳의 전통시장을 방문하고 돌아와서는 소상공인을 위한 맞춤형 VMD로 변모해, 현재는 한국VMD협동조합의 이사장을 맡고 있다. 





[이랑주 들여다보기 둘] "싸가지 없는" 기센 언니?



그녀는 20대와 30대를 지나면서 한 번도 오늘날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처음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을 때만 해도 그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생존'이었기 때문이다. 당장 먹고사는 게 급했던 그녀에게 일의 의미를 찾거나 세상을 이롭게 하고자 하는 포부는 없었다.



"백화점에 입사했을 때만 해도 제게 있어 최고의 브랜드는 이랜드였어요.(웃음) 그런데 동기들은 해외 명품 브랜드를 입고 출근하더라고요. 누구 아버지는 경찰서장이고, 또 다른 누구 아버지는 은행장이었고, 어쩌다 제가 운이 좋게 뽑혔던 거죠. 정직원으로 발탁이 된 후에도 지방 출신이라는 딱지가 붙어 갖은 놀림과 무시를 당했어요. 저의 존재를 입증할 방법은 오직 실력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정말 열심히 일했죠.



당시 조경득 팀장님(현재 서원대 융합디자인학과 교수)이 쇼윈도의 디자인을 공평하게 선발하셨는데, 지금 생각하면 굉장히 감사해요. 디자이너 열 명이 시안을 제출하면 무기명으로 선발했거든요. 6개월 정도 지나니까 쟁쟁한 선배들을 제치고 저의 디자인이 뽑히더라고요. 열심히 하면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뒤로는 욕망을 향해 달리는 전차처럼 시속 150km로 쉬지 않고 미친 듯이 질주했어요. 속된 말로 싸가지가 없기도 했죠.(웃음)"



퇴사를 하지 않았더라면 백화점에서 탄탄대로 편안한 길을 걸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회사를 그만두고 나온 것은 '지루한 게 싫다'는 이유에서였다. 도전의식 없이 똑같은 디자인을 기계적으로 찍어내는 듯한 자신의 모습에 싫증이 났다고. 그런데 왜 하필 때려치우고 돌아선 곳이 다름 아닌 '시장'이었을까.



"어린 시절부터 시장에 대한 남다른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 같아요. 어부였던 아버지를 따라 시장을 드나들면서 그곳이 얼마나 척박하고 힘든 곳인지 피부로 느끼면서 자랐거든요. 제가 가진 경험과 지식으로 시장을 재미있게 바꿔보고 싶었어요. 주변에서 반대도 심했죠. VMD 업계는 물론 관공서의 공무원들조차도 회의적이었거든요. 처음에는 실수도 많았어요. 백화점에서 사용했던 예쁜 소쿠리를 진열해놨는데 자꾸 물이 닿으니까 곰팡이가 생기면서 금방 썩더라고요. 시장은 백화점과 환경이 다르다는 사실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던 결과였죠. 모든 집기를 제 기준으로만 만들어서 허리가 굽은 할머니를 고생시킨 적도 있었고요."





[이랑주 들여다보기 셋] "10년 이상 굴러야 알 수 있는 비밀을 공개하다니..." 



물건만 좋으면, 혹은 음식만 맛있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그녀는 이러한 의견에 과감히 딴죽을 건다. 좋은 제품을 만드는 시간만큼, 눈으로 그 가치를 드러내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고 말이다. 최근 그녀는 이러한 자신의 노하우를 집약한 책 <좋아 보이는 것들의 비밀>을 펴냈다. 그녀는 색상, 빛, 동선 등을 기준으로 세상의 좋아 보이는 것들에는 치밀하고 과학적인 법칙이 숨어 있음을 밝혀냈다.



책에는 단순히 교과서적인 이론이 아닌, 두 발로 직접 뛰어다니며 현장에서 '답'을 구했던 그녀의 경험이 생생하게 담겨있다. 책을 다 읽고 난 뒤에는 "10년 이상 굴러야 알 수 있는 비밀을 책 한 권에 모두 공개하다니, 그 대가 치고는 책값이 너무 싸지 않은가."라며 추천의 말을 남긴 신창연 여행박사 전 대표의 말에 쉽게 공감할 수 있었다.



"30대에 이런 책을 썼다면 잘난 척하는 책이 나왔을 거예요.(웃음) 30대에는 제가 시장의 상인들을 무조건 도운다는 생각이 컸어요. 하지만 지금은 누가 누구를 일방적으로 돕는 것은 없다고 생각해요. 제가 도움으로써 그분들로부터 기쁨을 얻는다면 서로 돕는 것 아니겠어요? 사실 작년 1년 동안 매주 인문학 공부를 했어요. 그 전까지만 해도 제게 있어 디자인은 상술로서의 기법이었는데 인문학 공부를 통해 마음의 소양을 갖게 됐죠. 특히 나이젤 화이틀리의 <사회를 위한 디자인>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저의 지식과 경험을 좀 더 이롭게 써야겠다는 성찰을 하게 됐죠."





[이랑주 들여다보기 넷] "세상을 이롭게 하지 않으면 어떤 일도 맡지 않겠다"



그녀의 일주일은 무료 상담과 칼럼 기고, 방송 출연, 강연 등으로 빼곡하다. 최근 진행하고 있는 KTV의 '으랏차차 잘 나가게'에서는 <좋아 보이는 것들의 비밀>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어려운 상황에 놓인 소상공인들을 무상으로 도와주고 있다. 그녀가 점잖게 앉아서 이리저리 지시만을 내린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해다. 그녀는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 조명을 교체하고 낙서로 더러워진 벽에 페인트칠을 한다. 현장에서의 일이 힘들지 않냐는 물음에 자신이 가진 재능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다는 게 큰 보람이라는 대답을 건넸다.



"얼마 전 방송을 통해서 소개된 분인데, 손이 없는 조카를 데리고 과일 가게를 운영하는 분이 계셨어요. 상황이 너무 좋지 않아서 마트로부터 기증받은 집기로 가게를 꾸며드렸는데 정말 좋아해주셨어요. 출판사를 통해 사연을 받아 찾아간 곳도 기억에 남아요. 장애인 아이들을 가르치는 특수교사 부부였죠. 아이들에게 바리스타 교육을 시켰는데도 취업이 안 되니까 아예 카페를 차리셨더라고요. 그래서 동선을 바꿔주고 진열에 대한 노하우를 알려드렸는데 너무 감사해 하시더라고요. 그때 정말 보람 있었죠."



최근 그녀는 한국VMD협동조합의 이사장을 맡고 있다. 한국VMD협동조합은 8개의 회사가 모인 지식형 협동조합이다. 집기를 만들고, 온라인 플랫폼을 구축하고, 건축과 인테리어를 전문으로 하는 등 총 8개의 작은 회사가 모여 큰 프로젝트를 공동으로 진행한다. 일종의 지식 품앗이다. 그녀는 백화점이나 대형 마트에서 기증받은 집기를 재활용하는 사회적기업 '스타일 공유'도 운영하고 있다.



그녀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VMD의 일을 일종의 상술로만 바라보는 시각이 많다. 질이 떨어지는 상품을 그저 보기 좋게 꾸미는 일로 오해하는 것이다. 이에 그녀는 자신만큼은 다른 길을 가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소상공인이든 청년기업이든 판매되는 제품이 세상을 이롭게 하지 않으면 어떤 일도 맡지 않겠다는 원칙이 그것이다. 그래서 현재 그녀는 거의 모든 컨설팅을 무료로 진행하고 있지만 사정이 어렵다고 해서 무조건 나서지 않는다.



"몇 해 전 돌아가신 시아버지가 이런 말씀을 해주셨어요. 사람이 너무 바쁘면 성품이 고약해진다고요. 그 말을 듣고 제 재능을 돈으로만 환산하면 슬플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사실 협동조합이나 회사를 통한 이익은 거의 발생하지 않아요. 돈 안 되는 일만 골라서 하고 있죠.(웃음) 무엇보다 제 일의 90%는 거절이에요. 이유는 오직 하나죠. 제품이나 음식이 사람을 향해 있지 않다는 거예요. 돈을 받지 않기 때문에 중심을 지키며 일할 수 있어요. 돈을 받으면 회사가 원하는 대로 끌려다녀야 하거든요. 사실 세계일주를 떠나기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살아왔고요. 이제는 돈이라는 것에 묶이지 않고 제 중심과 원칙대로 살고 싶어요." 



대답 끝에 그녀는 ‘이렇게 사는 사람이 한 명쯤은 있어도 되지 않겠냐’며 환한 웃음을 지었다. 더불어 그녀는 VMD라면 궁극적으로 타인의 불편함과 아픔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제품을 판매하기 위한 설득 과정이 결국 사람을 향해 있어야 한다고 말이다. 그녀는 여전히 길거리를 지나다니면서도 눈에 띄는 공간이 있으면 조언을 서슴지 않는다. 시장 상인들이 왜 그녀를 두고 '길의 여왕'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부디 그녀가 가진 넉넉한 품의 옷자락이 사람을 이롭게 하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는 데 큰 보탬이 되길 바란다.





사진 : 기준서(스튜디오춘)

취재 : 윤효정(북DB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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