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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Jun 09. 2016

정유정 "논란 각오했다… 두려움과 타협 않는 게 작가"

               



정유정 작가의 표정이 한껏 상기되어 있었다. 3년 만에 내놓은 소설 <종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도 쉴 새 없이 이어졌다. 질문이 많았던 탓이다. <7년의 밤> <28> <종의 기원>으로 이어지는 ’악’에 대한 탐구가 어디까지 이어질 것인지에 대해. 이전의 방식과는 달리 이번 작품 속에서는 왜 그녀 자신이 주체가 되어 ’유진’으로서 기능하게 되었는지를. 그리고 극명하게 갈리는 대중의 평가 등에 대해서 말이다. 

정유정 작가 스스로도 그 어느 때보다 깊이 고민했던 소설이라고 했다. 주인공 ’유진’의 내면을 그리기 위해 원고를 다시 쓰는 행위를 세 번이나 반복해야 했고, 한 청년의 내면에서 발현되는 악을 그리기 위한 시도 역시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왜 또 다시 ’악’을 그리게 되었을까. 

 "작가로서 인간 본성은 저의 테마이자 오랜 궁금증이에요. 그중에서도 그림자, 그 어둠의 이면에 굉장히 관심이 많아요. 왜냐면 삶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모두 어두움에 속한 것들이거든요. 이런 감정들이 어떤 것을 계기로 폭발을 해서 우리 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우리 삶을 어떤 식으로 파괴하는지에 대한 관심이 많았어요." 

소설가는 보통 10년차가 되면 신인 티를 벗는다고 한다. 소설을 쓰기 시작한 지 9년이 되었다는 정유정 작가는 그때가 되기 전에 스스로에게 부여한 미션을 완수하고 싶었다고 했다. 말하자면 <종의 기원>은 그녀가 신인의 마지막 경계에서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내던져 완성한 결과물이자, 끊임없이 탐구하고자 했던 어두운 인간 본성에 대한 한 편의 보고서다. 

그녀는 책을 통해 우리에게 뜨거운 화두 하나를 던져주었다.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이제 독자의 몫이다. 호평과 혹평 사이에 놓인 <종의 기원>에 대해 정유정 작가와 이야기를 나눴다. 





"<종의 기원>은 결국 세상을 향한 한 악인의 자기 변론"



Q 원고를 세 번이나 엎고 다시 썼다고 들었습니다. 



올해 소설 쓴 지 9년차가 되는 해인데, 보통 10년차가 되면 신인 티를 벗는다고 그러잖아요. 신인 티를 벗기 전에 제 자신에게 미션을 주고 그걸 완수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종의 기원>은 말하자면 그 마지막 시도인 거죠. <28>이 마치 ’내가 쓸 수 있는 공간의 확장, 인물의 확장이 어디까지인가’를 다루는 거대 서사의 시험이었다면 <종의 기원>은 남들이 상상할 수 없는 정도의 인간 본성 밑바닥까지 내려가 보는 것이었죠. 



<종의 기원>은 한 ’악인’에 관한 이야기인데 초고를 쓰고 보니, 서사 내지는 내러티브에 휩쓸려 버리니까 인물이 살아나지 않고 보편적인 성향을 띄더라고요. 그래서 원고를 두 번째 고치면서는 스토리의 설정을 최소화했어요. 등장인물, 장소, 시간까지. ’유진’에게 주어진 복잡한 설정들을 다 뺐는데 그렇게 수정하고 보니 이야기가 심심하더라고요. ’유진’을 주체적으로 쓰고 있는 제 자신이 악인이 되지 못한 거예요. 이전 작품들 속에서는 객체로서 아주 냉정한 시선으로 ’얘는 이럴 것이다’라고 썼는데, 제 자신이 주체가 되어 쓰다 보니 자꾸만 자기 검열에 걸리게 된 거죠. 유진으로서 생각하고 유진으로서 기능하려고 하는데, 어린 시절부터 주입된 교육들이 힘이 너무 세서 그런 것들을 탈피하는 것이 많이 힘들었어요. 마지막으로 원고를 탈고할 때는 그런 억압들을 깨나가면서도 ’더 깰 순 없을까’ 생각하며 썼던 것 같아요.



Q 주체가 되어 서술했다고 하더라도 작가님의 무의식 속에 자리 잡았을 윤리 의식이나 주관적인 의사들이 완전히 배제될 수 있었는지는 의문입니다. 그런 고민은 없으셨나요? 



그럼요. 그래서 프로파일러를 찾아가서 취재를 했어요. 처음에는 유영철을 만나고 싶었는데, 쓰다 보니 오히려 캐릭터가 망가지는 경우가 생길 것 같더라고요. 대신 프로파일러를 만나서 취재한 것들을 바탕으로 유진에게 입힌 설정들이 있어요. 이건 처음 말하는 건데, 유진이 달리기를 하러 나갈 때나 살인을 하러 나갈 때 듣는 음악인 ’낙원의 정복(Conquest Of Paradise)’은 영화 ’1492 콜럼버스’의 OST예요. 이 음악은 실제로 유영철이 살인을 하러 나갈 때마다 자신의 기분을 고취시키기 위해서 들었던 음악이라고 하더라고요. 또, 흔히 사이코패스는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유영철도 자기 아들을 끔찍하게 사랑했고, 아들에게 자신의 행동을 들킬까봐 굉장히 두려워했대요. 유진에게는 그런 존재가 형 ’해진’이었던 거죠. 그런 부분이 유진에게 적용된 것도 있죠. 



Q 프롤로그가 굉장히 평온했어요. 뒤이어 벌어질 사건의 전주곡처럼 느껴져서 더 불안하게 다가오기도 했고요. 



앞부분에서는 평화로운 가정을 보여주고 싶었죠. 내지는 평범했던 소년. 그 안에 불길한 씨앗을 넣어놓고 싶었어요. 프롤로그에 나온 장면은 천주교에서 행하는 첫영성체 의식인데 ’미카엘’은 대천사를 의미해요. ’지키는 사람’을 뜻하고, ’노엘’은 ’탄생’을 의미해요. 악인의 탄생기를 그리다 보니 그런 상징을 앞부분에 심어놓은 거죠. 그런데 유진은 끝내 첫영성체를 못하잖아요. 형만 하고. 소위 ’냄새 피운다’고 하는데, 도입부에서 그런 걸 알려드리고 싶었어요. 앞으로 불길한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것을. 



Q 이번 ’악’은 이전 작품들 속에서 그려졌던 것보다 폭발적입니다. <7년의 밤> <28>이 독자들을 목격자의 시선으로 안내했다면 <종의 기원>은 독자가 ’유진’의 주체가 되어 ’악’이라는 본성에 극단적으로 몰리는 느낌을 받았다고 할까요. 



작가로서 인간 본성은 저의 테마이자 오랜 궁금증이에요. 인간이 가진 빛과 그림자가 있다면 저는 그중에서도 그림자, 그 어둠의 이면에 굉장히 관심이 많아요. 왜냐면 삶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모두 어두움에 속한 것들이거든요. 이런 감정들이 어떤 것을 계기로 폭발을 해서 우리 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우리 삶을 어떤 식으로 파괴하는지에 대한 관심이 많았어요. 



<7년의 밤>이나 <28>의 경우는 객체로서 오영제와 박동해라는 인물을 그리다 보니 내가 정말 그리고 싶었던 것 ’인간이라는 어두운 숲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가’, ’우리 삶을 파괴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집중할 수 없었어요. 흔히 ’악인’이라고 불리는 사람을 별종이라 생각하잖아요. 저는 그 별종의 내면을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종의 기원>은 ’유진’이란 인물이 세상을 향해 펼쳐 보이는 자기 변론이에요. 중간에 이 소설의 핵심 문장이 나와요. ’도덕이란 말이 되는 그림을 그려 보이는 것이다’라는. 문단 끝에 제가 이 문장을 살짝 숨겨놨거든요. 바로 이 개념이에요. 유진은 자기 마음대로 개념을 만들고, 저는 이걸 토대로 소설을 쓴 거예요. 독자에게 자신의 변론을 위해 본인이 말했던 ’말이 되는 그림’을 이 소설로써 그려 보이는 것이에요. 동시에 독자는 유진이라는 인물을 통해 ’악’을 들여다보고 있는 거죠. 



책에서 총 다섯 번의 살인이 나오는데, 사이코패스로서 저지른 살인은 한 번이에요. 나머지 살인에는 모두 유진만의 이유와 감정, 분노, 상황이 있었지만, 한 번은 감정 없이 자신의 쾌락만으로 죽인 거죠. 마지막에 ’이제 앞으로 시작될 것이다’라고 풍긴 이유는 사이코패스로서 유진이 첫 걸음마를 디뎠기 때문인 거예요. 이 작품 자체가 유진을 통해 악이 어떻게 발현되는 것인지, 살인으로 가는 유진이의 심리적인 매커니즘에 맞추고 있는 거죠. ’유진’이라는 인물에 대한 판단은 독자의 몫이에요. 작가가 판단한다면 그건 문학이 아니라 ’프로파간다’가 되는 거죠. 유진을 통해 그냥 보여주는 거예요, 독자에게. 저는 문학이 그런 것이라고 생각해요. 



Q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은 답이 아닌 화두를 던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작가님의 전작들 역시 그런 자세를 취하고 있고요. 작가님의 작품에는 사회적으로 곪아 있는 문제들이 다양한 형태로 시사되는데요. 의도하신 부분인지 궁금합니다. 



맞습니다. 의도하고요. 한마디로 ’주의’예요. "여기 한 번만 봐줘. 이게 불편하겠지만 그래도 여기 한 번만 봐줄래?" 이거예요. 보는 것과 안 보는 것의 차이는 크니까요. 제 소설이 그런 문제들을 여러 면에서 던질 수 있도록 애를 쓰는 편이고요. 그러나 가장 기본적으로는 독자들에게 이야기적 재미를 줄 수 있어야겠죠. 소설적인 재미를 가져가면서 마지막에 도착하면 작가가 세상을 향해 던지는 메시지와 만날 수 있도록. 독자가 책을 덮고 나서 ’작가가 문제를 던졌다’ 정도가 아니라 스스로가 이 화두를 깨닫게 되기를 원해요.





"왜 하필 사이코패스냐고? 왜 사이코패스면 안 되는지 묻고 싶다"



Q 악을 표현하는 방식에 있어서 왜 하필 ’사이코패스’를 선택했는지에 대한 궁금증도 있었습니다. ’악’의 극단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였을까요? 



악인의 탄생기를 그리고 있고, 유진에게 평범한 삶과 사이코패스로서의 삶을 놓고 선택하도록 만들기 위해서 여러 설정들로 유진을 극단으로 몰고 갔어야 했고요. 물론 "우리 내면 안에도 보편적인 악이 있는데, 그걸 다루면 되잖아"라고 말씀하시는 분도 계시는데 저는 반대로 "왜 사이코패스를 다루면 안 되는 건지"를 되묻고 싶어요. 이미 일상의 악에 대해서는 제가 소설에서 많이 다뤘어요. 극단적 설정을 하는 이유는 자극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고 말 그대로 이 이야기를 끌고 나가기 위한, 유진이라는 순수 악인을 표현하기 위한 콘셉트인 거예요. 



Q 작품에 대한 호평이 이어지는 한편, 아쉬운 목소리도 있습니다. 사이코패스로 행하는 반복적인 사건들은 몰입도를 깨고 작품의 전개를 지루하게 만들고 있다는 의견도 있고요. 다양한 해석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계신지요. 



이런 논란은 각오했어요. 이런 다양한 목소리가 나올 거라고 생각했고요. 어떤 일본의 평론가인지 소설가인지가 말했는데, 문학적으로 옳은 소설은 양쪽에서 다 욕을 먹게 되어 있다고 했어요. 그게 두렵다면 제가 쓰고 싶은 게 아니라 독자가 보고 싶어 하는 것을 썼을 거예요. 그런데 저는 아직까지 독자가 보고 싶어 하는 글을 써본 적이 없어요. 지금까지 제가 쓰고 싶은 소설, 내 욕망이 부글부글 끓는 소설을 썼을 때 독자 분들이 좋아해주셨고. 앞으로도 같을 거라고 생각해요. 독자들이 ’넌 적당히 그런 이야기 좀 하고. 좋은 이야기 좀 해봐’라고 해서 좋은 이야기를 쓰면 독자들이 저를 좋아해줄 것이다? 그런 생각 안 해요. ’얘도 이제 맛이 갔네.’ 그러시겠죠. 이제는 제가 악인만 쓰는 사람이라고 인식되었더라고요. ’넌 왜 그런 사람만 쓰니’ 이런 시선들이 두렵지 않은 건 아닌데 작가의 말에도 썼듯이 ’두려움과 타협하지 않는 것이 작가’라고 저는 배웠고요. 두려워도 어쩔 수 없어요. 그 압박을 견디지 못하면 펜을 꺾어야 해요. 그 압박을 이기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고 봐야죠. 



Q 기억에 남는 독자 리뷰가 있으신가요? 



네. ’저에게 100살까지 살면서 창작욕을 불태웠으면 좋겠다’라고 했던 리뷰가 있었는데 정말 눈물 날 뻔했어요. 저는 외로움을 많이 타요.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작가이기 때문에 욕을 먹어도 호되게 먹어요. 그런데 성격은 또 굉장히 예민해서 굉장히 주눅 들고 위축되죠. 그런 감정들이 마음 깊은 곳에 있다가, 어느 날 소설을 쓰는데 잘 안 풀리면 저 자신에 대한 회의가 오면서 (모든 걸) 딱 꺾어버리고 싶어요. 



그러다가도 생각하는 게 ’아니야, 이러면 안 되지.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데.’ 그게 바로 독자예요. 호되게 야단을 맞는 만큼 사랑도 굉장히 진하게 받아요. 독자로부터 위로를 받고, 세상에 나 혼자 있는 것 같은 밤에는 독자들이 보내준 손편지도 읽고 저 자신을 다시 세우고 의욕을 가지고 그러는 것 같아요. 되도록 흔들리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요. 제 자신이 버티지 않으면 실망하실 분이 더 많기 때문에 안간힘을 다해서 최선을 다해 버티고 있습니다.(웃음) 



Q 한동안 한국 문학의 침체기라는 말이 많았는데 최근 좋은 소식들이 자주 들려오고 있습니다. <7년의 밤>은 독일의 유력 주간지 ’디 자이트가 선정한 2015 범죄소설 톱10’ 8위에 선정됐고, 독일어 번역소설에 주는 ’2017년 리베라투어상’에 노미네이트되기도 했습니다. 최근에는 한강 작가의 맨부커상 수상 소식도 있었고요. 현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고 계신가요. 



일단 한강 작가님께는 박수를 쳐드리고 싶었어요. 조금 이기적이지만, 한국 작가들이 해외로 나가서 인정받을 수 있도록 포문을 열어주신 것에 대한 감사한 마음이 들었고요. 이번 맨부커상 수상으로 인해서 번역이 잘 되기만 한다면 우리 문학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는 사실이 증명이 됐잖아요. 굉장히 자랑스러워요. 개인적으로도 ’리베라투어 상’ 노미네이트 등의 소식이 기뻤지만, 어쨌거나 그런 것들을 해외 성과일 뿐이었고 저에게는 <종의 기원>이 더 중요했던 것 같아요. 모국어로 쓰는, 제 숨소리까지 읽을 수 있는 이 작품을 독자들이 잘 이해해주고 느껴주는 것. 그게 더 중요했어요. 



Q 영화로 만나볼 <7년의 밤>에 대한 기대도 큽니다. 영화 작업에도 참여하셨나요? 



아니요. 저는 영화 작업에는 관여하고 싶지 않다고 말씀드렸어요. 어떻게 진행되어 가는지는 듣고 있죠. ’광해 : 왕이 된 남자’의 추창민 감독님이 연출하시는데 감독님의 성향에 따라서 결말이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오늘(5월 26일) 막 크랭크업을 했다고 들었는데 촬영 기간만 7개월이었대요. 보통 영화 촬영 기간의 두 배인 거죠. 후반 작업도 7개월 정도 걸린다고 하더라고요. 세령호를 구현해야 하고, 물 속 세상도 구현해야 하니까요. 출연하는 류승룡, 장동건씨가 거의 신의 연기를 보여주셨다고 해서 저도 굉장히 기대가 돼요. 



Q ’인간 본성은 나의 테마다’라고 하셨는데요. 악에 대한 탐구가 계속될지 궁금하네요. 준비 중인 차기작은 어떤 이야기가 될까요? 



악에 대한 이야기는 계속 이루어질 텐데 이번에는 한 개인이었지만, 다음 소설은 사회적인 악이 드러나는 재난소설이 될 것 같아요. 약간의 판타지가 가미될 것 같고요. 저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불편을 야기하는 소설을 쓰게 될 것 같아요. 저에게 "어떻게 책임을 지려고 이딴 소설을 쓰냐. 나라가 시끄러운데."라고 하시는 분도 있겠죠. 이 소설이 세상을 바꿀 수는 없어요. 그렇지만 작가는 남들보다 반보 앞서서 이 사회에, 내지는 인간들의 관계 그 밑에서 변화하고 있는 징후를 읽어내서 세상에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 역시 <종의 기원>을 통해 그 역할의 일부를 했다고 생각하고, 앞으로도 그럴 예정이에요.







사진 : 임준형(러브모멘트스튜디오)


취재 : 임인영(북DB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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